백훈승, 「헤겔과 절대자」, 3장 요약




3 [절대자와 무한자]


3.1 [위무한과 가무한] - 가假무한 vs. 진眞무한

(1) 가무한(schlechte Unendlichkeit): 유한과 대립만 하는 '직선적 무한'으로, 유한자의 부정에 머문다.

(2) 진무한(wahrhafte Unendlichkeit): 유한을 자기 내부에 포함·초월하는 '원(circle)' 이미지로,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른다.

"부정적 무한은 유한성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이며, 진정한 무한은 유한성을 자기 안에 포함·지양함으로써 초월하는 것이다. Die negative Unendlichkeit ist das Abgesondertsein von der Endlichkeit; die wahrhafte Unendlichkeit aber hebt die Endlichkeit auf, indem sie sie in sich enthält."〈Enz. § 95〉

가무한/악무한(이하, 가무한)에 대한 간단한 비유로는, 프뢰벨Fröbel의 "n+1 연속 반복"이 있다. 수학적 무한열(예: 1, 2, 3, ...)에서 '다음 항'을 항상 "n+1"로만 생성하는 과정이 결코 '끝'에 도달하지 못하듯, "n+1 연속 반복"은 "항상 유한(현재 n)에게로 돌아가면서 다시 n+1을 생성"하되, 절대적 완전체(무한)를 결코 실현하지 못하는 순환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이 반복은 모순을 지양하지 못하고 유한과 무한의 대립에 갇히므로, '진무한’(참된 무한, 유한을 품는 원형적 전체)으로 진전되지 못한다. 따라서 Hegel은 이를 '가무한'(거짓 무한, 유한을 품지 못하는 무능)이라 부르며 배제한다.

이 "n+1 반복"이라는 비유의 철학적 의의는 '가무한'과 '진무한'을 구별하게 해 주며, 진무한이란 "부정(유한) 위에 부정을 수행하여 새롭게 통합"하는 '부정의 부정'임을 강조한다. 즉, 가무한이란 '부정의 부정'이 없는 교착된 상태의 무한인 셈이다.


3.2 [오성과 이성, 그리고 절대자 인식]

칸트적 오성Verstand과 이성Vernunft 구분을 계승하나, 헤겔은 이를 무한성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 무한자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성이 아닌 이성이다. 인간은 절대정신을 "정신 안에 내재한 신적 이성"으로 인식하며, 이는 단순 신앙이 아닌 변증법적 통찰을 필요로 한다. 논문에선 헤겔에 대한 현대 여러 학자들의 해석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닫힌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파악하였다.

요약문에선 이를 토대로 변증법적 함의와 정치철학적 함의를 동시에 확보하고자 한다. 이를 현대 학자들의 의견과 비교하여 다음처럼 비교해서 그 의미를 명확히 하고, 더 나아가 실천적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겠다는 것이 본 요약문의 논지이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카스카트Cathcart(2019)는 절대정신의 주체성은 "항상 자기모순을 재생산"하므로, 주체를 고정하지 말고 운동하는 절대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우드Wood(1990)는 절대정신 주체를 "완전 통제 주체"로 보지 않고, 분열과 연대의 역동성으로 파악해야 비판적 잠재력이 유지된다고 보는데, 이 경우 2.3의 '세계창조=자기 계시' 해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3) 지젝Žižek은 여러 저서에서 절대정신을 "닫힌 주체"로 읽으면 현실 모순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발생한다고 여기며 따라서 열린 체계로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1), (2)는 논문과의 연계를 통해 절대자의 정신이 '열린 구조'임을 보다 공고히 하고, (3)은 이를 정치철학적·실천적 영역으로 확장한다.

3.3 [절대자와 자유]

자유는 정신의 본질이며, 절대정신은 스스로 구속 없이 ‘타자 속에서 자신 곁에 머무르는’ 구조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드러낸다. 추상적·부정적 자유는 악무한에 해당하며, 진정한 자유는 외화를 부정·복귀시키는 순환적 자기운동 속에 구현된다. 추상적 자유와 구분되는 구체적 자유는 타자와의 공존을 통해 나타나는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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