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동기motivation에 대해 설명하는 철학 모델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론은 인간을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보는 반면, 두 번째 이론은 인간이 개인의 이익뿐 아니라 의무 같은 ‘더 높은’ (도덕적)가치를 따라 움직인다 본다. 이런 동기에 대한 이분법은 철학 담론 뿐 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수전 울프는 이런 이원론이 삶을 이루는 다양한 동기와 근거 가운데 많은 부분을 빠뜨리고 있다고 본다. 울프는 이익과 의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범주로 ‘삶의 의미’를 제안한다.
삶에는 단순히 이익이나 의무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얼마간 희생하는 것은 단순히 이익이나 의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얼마간 포기하는 경우가 있으며 사명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한다. 한편 우리는 개인을 초월한 목표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 목표에 담긴 가치가 우리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동기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면 후자의 동기는 ‘(목표의)대상이 가지는 가치’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대상을 사랑하는 모습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과 흡사함으로, 울프는 두 사례에 ‘사랑의 근거’라는 표현을 똑같이 사용하며, 사랑의 근거가 우리 삶에서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주장한다. 울프는 ‘가치 있는’ 대상에 사랑을 쏟아 붓는 행위가 행위자 개인이나 세상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주장한다.
헌데 이런 ‘사랑’이 대체 삶의 의미와 무슨 상관인가? 울프에 따르면, “삶의 의미라는 개념은 가치가 있는 대상을 ‘사랑’할 때 그리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그 대상에 ‘관여’할 때 모습을 나타낸다.”(p.35) 울프의 삶의 의미 개념은 주관적인 요소와 객관적인 요소가 얽혀 있다.
’사랑’은 부분적으로 주관적인 요소로서 ‘태도’(attitude)와 ‘느낌’(feeling)을 수반한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이 ‘사랑할 만한worthy of love’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삶의 의미라는 개념은 객관적인 요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 삶은 의미는 ‘주관적인 이끌림subjective attention’이 ‘객관적인 매력objective attractiveness’을 만났을 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p.36)
만약 우리가 뭔가에 열광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지루함이나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그걸 의미 있는 삶이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런 활동이나 대상 자체가 가치가 없다면(예를 들어 마약에 빠지거나 십자 퍼즐에 중독된다면) 아무리 열정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해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삶의 의미라는 개념은 주체와 객체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며, 객체의 가치에 대한 확인 없이 긍정적 태도만으로는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울프의 삶의 의미 개념은 삶의 의미에 대한 주관주의적 관점과 객관주의적 관점을 종합한 것이다. 리처드 테일러 같은 주관주의 옹호자들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을 하는 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을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 여긴다. 반면 피터 싱어 같은 객관주의 옹호자들은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해야 한다”며 행위자 ‘자신과 독립된’ 가치를 지닌 대상에 기여하기를 주문한다. 두 관점 모두 ‘삶의 의미’라는 용어 속에 포함된다. 우리가 자신의 삶의 의미가 결여됐다 걱정할 때 우리는 주관적인 요소를 다루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이 의미 있느냐를 평가할 때는 객관적인 가치를 다룬다.
울프는 두 관점 중 어느 쪽이 “훌륭한 삶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잘 규정하고 있는지”(p.42) 검토한다. 먼저 주관주의적 관점, 그 중 ‘성취관점fulfillment view’이 많은 지지를 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진심으로 관심 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다”(p.44)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얻는 이 참된 기쁨, 즉 성취감feeling of fulfillment을 느끼고 살아간다 해서 행복한 삶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성취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통과 좌절감, 스트레스 등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감내하는 것을 보면, “성취감이야 말로 우리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분명한 가치”(p.46)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이 성취관점이다.
그러나 울프는 성취관점이 쾌락주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비판한다. 쾌락주의가 말하는 최고의 삶의 기준은 개인이 느끼는 감각에만 달려 있을 뿐이다. 어떤 대상이나 활동을 통해 좋은 감각을 얻을 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마약이나 십자 퍼즐 중독 같은 제 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의미 없어 보이는 일도 (의미를 추구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울프는 리처드 테일러의 ‘성취감을 느끼는 시시포스’의 사례에 빗대어 이를 비판한다. 만약 시시포스가 행복해지는 주사를 맞아 바위를 굴리면서 성취감을 얻는다 해도, 그의 노동 자체는 본질적으로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시시포스의 삶은 의미가 없다.
객관주의적 관점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하라는 이 관점은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에 관여하기를 촉구한다. 여기서 더 중요하다는 것은 가치의 크기가 큰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관점에 따른다면, 만일 사람들의 삶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가정할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헌신을 받는 사람의 가치가 헌신을 제공하는 사람의 가치보다 더 크지 않기 때문에, 헌신을 제공하는 사람은 더 중요한(가치가 더 큰) 존재에게 관여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헌신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특정한 일이나 활동의 경우 헌신에 대해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철학이나 문학 같은 학문, 야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는 대상으로서 우리 보다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서 울프는 더 큰 존재에 관여하라 할 때 ‘크기’에 대한 조건을 좀 더 느슨하게 이해하기를 주문하다. “다시 말해 그 조건의 핵심을 자신보다 더 큰 존재라기 보다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즉, 자신과는 동떨어진, 자신의 ‘외부outside’에 가치의 원천을 두는 대상에 관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p.52) 철학, 문학, 야구, 농구, 도움받는 사람, 마약이나 스도쿠까지, 이런 활동의 가치는 개인의 관심과는 별개로 존재한다. 울프는 주관주의적 관점과 객관주의적 관점을 모두 합친 자신의 ‘연립관점bipartite view’(혹은 수정된 성취관점 fitting fulfillment view)이야 말로 의미 있는 삶을 잘 나타내며, 삶의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주장한다.
더불어 여기에는 ‘객관적인 가치에 대한 관심’을 추가해야 한다. 만일 자신이 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도움을 줬다고 해도, 내가 내 행동이 불러 일으킨 긍정적인 효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이는 자신에게 더 큰 존재에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삶이라 보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징용이나 징병처럼 가치가 있는 일에 참여한다 해도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여기에 ‘삶의 의미’라 부를만한 가치는 결핍되어 있다. 또한 개인의 열정을 발견하고 성취를 추구하는 일에는 특정한 한계가 있어서, 우리는 바위 밀어 올리기나 스도쿠에 지속적인 열정을 퍼붓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가치를 바라는가? 토머스 네이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글은 이를 ‘어디에도 없는 관점view from nowhere으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려는 욕망’이라 정의한다. 나아가 울프는 여기에 더해 인간이 스스로 외부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가치가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자 고독을 멀리하려는 성향에서 기인하고, 나아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가 그 일이 가치 있다 확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