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20대 직장인입니당

유튜브에 올라온 철학 강의, 김영건 선생님과 이기상 선생님의 블로그,
그 외 한국어로 된 논문이나 학자들의 연구서, SEP 등를 도구 삼아
미약하지만 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kocw를 통해 고대 그리스와 스콜라 철학의 개괄 강의도 들었고요.
또 근대도 같이 출발하는 게 좋을 듯싶어, 성찰도 동시에 잡았습니다.
현재는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1차자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강의들도 조금씩 듣고 있고요.

또한 공부를 하는 와중에 논리학도 공부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호논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보는 논리학 강의는 논리학 공부가 필요한 학부생을 위한 강의입니다.
일단 논쟁의 여지가 있는 지점들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다루지 않고,
보편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논리학을 수업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처럼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에 비해 시간에 쫓기는 상황은 아니다 보니
조금 천천히, 그리고 어느 정도 짚어가며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목표를 놓고 공부할 때, 제가 참고할 수 있는 공부 자료를
추천 받고 싶습니다. 2차자료는 오히려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ㅠㅠ

----------주로 공부하고 싶은 내용은 이런 것들입니다----------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참인 명제가 필연적 참이다."
: 강의는 앞서 정의한 '필연적 참'에 해당되는 명제를 실용적으로 분류하고
솎아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저는 추가로 공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Q1. '필연적 참'은 미리 합의된 개념을 순환하여 표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물인가? 수학에선 분명 공리계를 바꿀 수 있고... "A는 B이다"라는 논증의 A가 B의 다른 표현이라면 그것 역시 정의된 것이므로 순환 아닌가...?

Q2. 만일 '필연적 참'이 특정 체계 내에서만 가능하다면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참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Q3. 논리적 구조와 수학적 구조 역시 합의를 통해 정의를 만들고, 그 정의 속에서만 작동되는 프로세스인가? 논리적 참과 수학적 참은(아직 둘이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 세계에서 참인가?

Q4. 논리적 참이면 필연적 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왜...? 논리적 참은 논리적 참에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Q5. 수학과 논리가 인식보다 앞서 존재할 수 있나? 그게 모든 가능 세계에서의 필연적 참이 될 수 있나? 그냥 인식 이후에 생긴 체계 내에서만 필연적인 게 아닌가?

Q6. 필연성이라는 것은 우리 경험과 독립적으로 그 상황 자체가 가능하다는 말인데... 근데 그 상황 자체가 가능한 게 아니라, 논리적 규칙을 근거로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면 그 지점에서 이미 우리는 필연적일 수 없는 거 아닌가?
모든 언어로 하는 행위는 필연적 참을 밝힐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드는데, 마땅히 질문만 생기고
그것을 뚫어가면서 공부하기엔 제 지식이 0에 수렴하더라고요

그래서 논리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토대에 대한 논의가 담긴
2차자료를 같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이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이 있다면 알려주심 감사합니다!!!
영어자료면 훨씬 더 좋습니다. (너무 비싸...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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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양상 논리는 https://builds.openlogicproject.org/courses/boxes-and-diamonds/bd-screen.pdf 을 가끔 보기도 하고 최근에 나온 https://builds.openlogicproject.org/courses/boxes-and-diamonds/bd-screen.pdf 을 보기도 합니다.

Q1-4을 보면 Definition에 대해서 생각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nominal vs real definition 구분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Definition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Q5-6은 가능세계 자체에 대해서 반박을 할 때 가끔 쓰는 주장과 비슷해보입니다 (어떤 논문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가능세계를 설정할 때 relevant/nearby possible worlds를 정하는데 이때 가능세계를 어떻게 정해야하는지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때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순환논리가 나오겠지요.

제가 보기에 가능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가능세계 전반에 대한 기초는

van Inwagen - Two Concepts of Possible Worlds
Merricks - Truth and Ontology Ch 1, 2, 5

정도로 시작하시면 좋지 않나 싶습니다.

작성자님은 가능세계에 대한 회의감을 어느 정도 갖고 계시고, 제 생각엔 정당한 회의감 같습니다. 가능세계를 공격하는 다음 글들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Fine - Essence and Modality
Leech - Essence and Mere Necessity
Vetter - Recent Work: Modality without Possible Worlds (특히 이 페이퍼가 논의들을 잘 요약해놨습니다.)
Jacobs - A powers theory of modality: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reject possible worlds
Vetter - Potentiality Ch 1, 6

아, 그리고 Anna's Archive라는 게 있습니다. 구글 검색해보세요.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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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ㅠㅠ 추천해주신 것들 전부 열심히 공부해볼게요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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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세계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분이 계시군요. 철학사를 쓰면서 크립키를 마지막으로 두었는데 양상논리학이 적용되는 가능세계 개념을 듣고 면담을 포기했습니다. 크립키는 수학자지만 저는 과학자이거든요. 가능세계 개념은 잘못 도입된 것으로 느꼈습니다. 가능경로는 과학적으로 맞습니다.
저는 바로 포기했지만 다른 분들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성과 있으면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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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키에게 '가능세계' 개념은 '가능한 경우의 수' 정도의 의미만을 지닙니다.

“[……] 우리가 학창 시절에 36개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내 앞의 물리적 대상에 대응하면서도 꿈나라에 존재하는 35개의 다른 실체들이 있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또한 <그러한 유령 실체들이 현실적인 개별 주사위의 ‘상대역’counterparts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차원’에 똑같은 개별 주사위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현실적인 것 하나를 포함한 36개의 가능성들이란 주사위의 (추상적) 사태이지 복합적인 물리적 실체는 아니다.” (솔 크립키, 『이름과 필연』, 정대현·김영주 옮김, 필로소픽, 2014, 31쪽.)

물론, 형이상학자들 중에서는 데이비드 루이스처럼 가능세계 실재론을 옹호하는 인물들도 분명히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a) 이 철학자들이 가능세계에 대한 논의에서 주류는 아닐 뿐더러, (b) 가능세계 실재론이 참인지 거짓인지의 문제는 과학과 무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존재론적 개입(ontological commitment)이라는, 말하자면 하나의 이론 체계가 어떠한 암묵적 가정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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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 가정을 고려한다는 해석은 저도 수긍이 됩니다. 암묵적 가정하에서 가능한 세계가 있을 겁니다. 1+2=4라는 가능세계는 없을텐데 이는 수학적 공리라는 가정에 위배되기 때문이겠지요. 암묵적 가정이라는 것은 결국 수학공리나 과학적 원리로 귀결 된다면 가능세계 개념은 새로운 개념이 될 수없고 양상논리도 허상이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과학적 소설세계도 과학적 원리를 위배하므로 가능세계가 될 수 없고요. 저가 양상논리를 보면서 처음 느낀 인식이니 사람마다 해석은 다를 겁니다. 암든 암묵적 가정이라는 해석은 조금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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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능세계에 대한 회의"라고 했을 때 가능세계의 존재의 회의을 말한 게 아니었어요. 윤유석님께서 지적하신대로, 가능세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데이빗 루이스 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심지어 "How to be a modal realist"를 쓴 시안 도어도 자신은 modal realist가 아니라고 못박고 시작하지요. 대신, 제가 "가능세계에 대한 회의"라고 했을 때, 저는 가능세계의 형이상학적 역할 (metaphysical role)의 회의를 말한 거였어요. 특히 제가 말한 킷 파인은 가능세계의 존재를 논한다기보다는, 가능세계와 본질의 기반 관계성에 대해 논하지요. 리치는 가능세계와 본질은 서로가 서로를 기반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요.

첨언하자면,

현대 형이상학, 특히 어느 정도 지지를 받는 현대 형이상학 이론들은 물리학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물리학으로 반박이 가능하면 지지를 받기가 힘들거든요 (출판이 가능한 건 둘째치더라도요). 그나마 터너 같은 사람이 현재주의가 물리학과 양립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마코시안, 에머리, 지머맨, 부일러스 등에 의해 반박됐지요. 그래서 현대 형이상학을 하실 때 웬만하면 물리학과 양립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읽으시는 게 더 얻는 게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일 물리학 지식을 철학에 이용하고 싶으시다면, 물리철학이나 물리철학과 형이상학의 연관성을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자는 Maudlin 의 Philosophy of physics 가 입문으로 유명하고, 후자는 Lewis - Quantum Ontology가 유명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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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키에게 있어 '가능세계'란 선험적이고 필연적일 수 있는 체계(수학, 논리)가 뛰어놀 수 있는 장에 불과한 것일까요? 일단 '가정'할 수 있다면 가능세계라는 개념 위에 또 다른 철학적 개념들을 올려놓으면서 시험하는 느낌이 들어요.

"가능세계는 단지 가능한 경우의 수"라는 표현이 되게 단순해보이는데, 어찌보면 자유도가 높으면서도 체계를 올려놓은 이후의 전개 마저 수월할 거 같다는 직관이 드네요. 파괴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직 그가 사유하는 박자를 못 찾았지만, 그럼에도 '지시'라든지 '가능성', '필연성' 등의 개념이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잘 정의된 개념처럼 보여요. 특히 '지시'라는 개념이 가장 매력적이네요. (철학도 well-defined 라는 걸 쓰나요? 수학에서는 well-defined을 약간 강력한 추상적 개념을 뽑아낼 수 있는, 생산성이 기대되는 체계를 표현할 때 쓰는데.. 물론 도구의 느낌이 강합니당)

첫 글을 쓴 이후로 잡다하게 공부하고 있는데, 서강올빼미에 질문을 쓴 제가, 그렇지 않은 또 다른 가능세계의 저보단 똑똑할 거 같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3일 동안 기호논리학 강의는 커녕 칸트랑 언어철학, definitions만 붙잡고 있네요.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David Lewis는 칸토어가 집합론을 ‘수학자들의 낙원‘이라고 표현한 것을 비틀어, 가능세게를 ‘철학자들의 낙원‘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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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질문들을 보면 언어철학 개론 교과서를 가볍게 보시고 기초를 다지신 뒤 @YOUN 님이 인용하신 이름과 필연을 숙독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학부 수업에서 쓰이는 커리큘럼이기도 하거니와, 양상 말고도 여러 현대 철학의 토대 개념들에 대한 기초를 쌓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yhk9297 님이 말씀해주신 문헌들은 이름과 필연에서 확립된 고전적 견해를 숙달한 뒤에 보다 잘 맥락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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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저도 이 논문들을 읽기 전에 모달리티 입문 서적을 먼저 읽게 했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교수님께서 Plantinga - The Nature of Necessity의 첫 두 챕터를 먼저 읽게 하셨네요. 그걸로 먼저 기초를 쌓고 킷 파인을 읽었었네요. 크립키는 아직 안 읽어봐서 드릴 말씀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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