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테일러 ,『윤리학의 기본원리』, 「가치와 사실」

요약한 분량이 3000자를 넘기고 싶지않았는데, 결국 한~참 넘겨버렸네요. 특히 처방주의 부분은 이해가 아직 아리까리해서인지, 핵심 요지들만 더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을것 같은데...(처방주의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확신이 안가네요)

8장 - 가치와 사실

규범윤리학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행위하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떻게 행위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하는가를 탐구한다. 이 장에서 다룰 세 가지 중요문제는 (1) 사실과 가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2) 가치와 사실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3) 가치판단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다.

사실판단 이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사건과 대상에 대한,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진술이다. 가치판단이란 인간이 행해야 하거나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 또는 어떤 것이 좋거나 바람직하거나 혹은 옳다는 진술이다. 사실판단을 할떄 우리는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며, 이러한 판단의 참과 거짓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의 가치를 평가하고 측정하는 가치판단의 참 거짓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상이한 대답을 내놓는 두 이론이 있다.

자연주의자는 사실판단과 마찬가지로 가치판단도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가치판단은 일종의 사실판단이다. 자연주의에 따르면 모든 가치술어(악하다,옳다)는 사실술어(빨강이다,딱딱하다)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속성을 지칭한다. 경험적 속성의 존재유무를 경험적으로 조사하여 사실판단을 검증하는 것처럼, 가치술어도 경험적으로 조사하여 검증할 수 있다. 예를들어 자연주의의 한 분파인 주관주의적 자연주의자들은 'x는 그르다'라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이 사회의 사람들이 x를 싫어한다'라는 사실판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비자연주의자(직관주의)들은 '그르다' '옳다'와 같은 가치술어는 경험적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가치속성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가치속성의 존재여부를 따지는 가치판단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고 교육받은 사람의 직관을 통해 참 거짓이 검증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x라는 행위가 '그름' 혹은 '옳음'이라는 가치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특이한 이론처럼 보이는 비자연주의가 몇몇 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도덕판단을 하고 또 도덕문제를 논의할때는 분명히 참이나 거짓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즉 도덕언어는 일견(prima facie)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첫째로, 우리는 누군가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거짓으로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하여 그가 계속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의 믿음은 객관적으로 틀린 것이다. 둘째로, 일상의 도덕적 담론에서 우리는 항상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제시(ex: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한 수정과 반박,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받아들일만한 원칙에 대한 호소 등등)하고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자신들의 개인적 취향과 기호에 대한 담론은 논쟁할 수 없지만 도덕적 담론은 논쟁할 수 있다.

자연주의의 오류

<윤리학의 원리>를 저술한 무어 교수는 자연주의자들이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비자연주의 이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주의적 오류란 정의주의적 오류와 연역적 오류라고 부를 수 있는 두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정의주의적 오류란 '가치술어의 의미는 순수한 사실적 용어로 완전히 환원 될 수 있다(=가치판단은 경험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다)'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다. 연역적 오류란 '주어진 사실로부터 독자적으로 가치판단을 도출해낼 수 있다'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은 예를 들어 ''옳다''라는 술어는 ''우리 사회에서 인정된다''를 의미하고, ''나쁘다''라는 술어는 ''다수에 의해 혐오되는''을 의미한다고(주관주의적 자연주의자들의 경우임) 말한다. 이렇듯 가치술어가 사실술어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참이라면, 가치술어가 문장에서 나타낼때 우리는 그 술어를 똑같은 의미의 사실술어로 바꾸더라도, 두 문장은 똑같은 의미를 가져야한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우리의 일상적인 도덕적 담론에서 실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많은 문장이 이해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두 문장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가치술어의 의미는 상호교환 가능한 어떤 사실술어의 의미와 다르다.

(1)이 행동은 나의 사회에서 승인된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가?

(2)이 행동은 나의 사회에서 승인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사회에서 승인되는가?

(2)의 문장은 단순한 동어반복이지만, (1)의 문장은 특정한 실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 가령 성차별이 승인되는 중동의 국가에 사는 여성은 (1)의 문장을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의문가능성 논증)

ㅡ연역적 오류 생략ㅡ

비인지주의(noncognitivism)

그러나 자연주의와 비자연주의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인지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비자연주의와 자연주의 모두 언어의 단정적 기능(주장하고, 믿음을 표현하는 기능)에만 집중하여 가치판단의 참과 거짓을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자연주의는 경험과 과학의 방법으로 가치판단을 검증하고, 비자연주의는 직관의 방법으로 가치판단을 검증함) (또한 비인지주의자들은 자연주의의 오류에 관한 무어의 지적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치판단은 믿음을 표현하고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태도)을 표현하고, 듣는 이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어떤 것을 권장하거나 비난하기 위하여 사용되기 때문에(가치판단의 역동적 기능) 가치판단의 참 거짓을 따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덕은 외견상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우리의 직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분명히 우리는 일상의 도덕 담론에서 항상 자신의 주장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비인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 제시 행위는, 자신의 주장이 참임을 보이고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정보를 제시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사실(ex:특정한 경제정책의 결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지 않고서도, 부정확한 인식을 가진 것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것(특정한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가질 때가 있다. 그러한 태도를 바꾸고 싶은 누군가는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여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처방주의(prescriptivism)

비인지주의는 20세기의 많은 철학자에 의해 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암묵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제 많은 도덕적 논의에서 우리는 충실하게 근거를 제시하기보다 '이것은 나의 v개인적 의견v 일 뿐이다' 라는 식으로 간단히 논의를 종결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60년대에 R.M.hare 교수는 처방주의 이론을 제시한다. 이것은 자연주의, 비자연주의, 비인지주의 모두를 거부한다. 인지주의 이론들, 즉 자연주의와 비자연주의에 대한 비인지주의의 비판은 옳다. 가치판단은 단지 믿음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표현하고 특정 선택을 권장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또한 자연주의자들은 추가적으로,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비인지주의자와 달리 (테일러가 소개하는) 헤어는 첫째, 가치판단의 역할은 '특정한' 선택을 권장하고 비난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을 권장하거나 비난하는(가치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암묵적으로 특정한 기준과 원리들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는 (특정한 선택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선택들 또한 권장하고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치판단은 정당화가 가능하고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치판단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1가치판단의 대상이 가지는 속성은 특정 원리와 기준을 충족해야하고, 2특정 원리와 기준은 그것이 우리 삶에 적용되었을때 바람직한 효과와 결과를 가져와야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하기 때문이다.

(테일러가 소개하는) 헤어의 첫번쨰 논증부터 살펴보자. 어떤 것이 좋거나 옳다, 그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 사람에게 ''무엇이 그것을 좋도록 하는 것인가?'' ''그것의 무엇이 좋단 말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이렇듯 가치판단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행위나 사람,사물 등을 좋게 만드는 속성(good-making characteristic)이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가치판단의 필수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물이 가지고 있는 여러 속성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좋게 만드는 속성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가치판단이 암묵적으로 호소하는 평가의 기준과 원리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내 앞에 보이는 이 좋은 연필을 좋게 만드는 속성은 '필기감이 부드러움' '쉽게 부러지지않음' 등등이 있을 것이고('갈색임', '어제 구매했음' 등등은 좋게 만드는 속성이 아니다), '좋은 연필은 필기감이 부드러워야한다 or 쉽게 부러지지않아야한다'라는 평가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즉 헤어에 따르면, 가치판단이란 '대상이 가지고 있는, 대상을 좋거나 나쁘게 만드는 특정 속성이/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기 때문에/ 대상을 권장하거나 비난하는 것' 이다. 1) 또한 헤어에 따르면 '가치판단은 암암리에 보편적이다'. 2) 나는 이 연필이 좋다는 가치판단을 내림으로써 평가의 기준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3) 그 기준은 이 연필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연필을 선택할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선택의 지침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인지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가치판단은 정당화가 가능한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도덕적 논쟁에서 우리의 이유제시행위에 대해 비인지주의자들이 해석한 것이 참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판단을 위해 어떤 사실이든지 제시할 수 있다.(상대방의 태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실이라면 말이다) 이유로 제시된 사실과 우리의 가치판단이 맺는 관계는 논리적 관계가 아니라 단지 우연적이고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령 '다윗은 좋은 왕이었다'라는 가치판단을 내리기 위해 '다윗은 백성들을 잘 이끌었다'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윗은 얼굴이 잘생겼다'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다.4) 그러나 우리는 평가의 표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속성(ex:다윗의 인성과 행적에 관한 사실)만이 가치판단과 관련있는 이유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은 가치판단을 정당화함에 있어서 첫 단계(해당 사람과 사물/행위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평가의 표준을 충족한다)일 뿐이다. 누가 그러한 평가의 표준(원리) 자체에 도전한다고 해보자. 즉 누군가는 ''나는, 만약 (당신이 지금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 대상을 a,b,c라는 표준들에 의해 판단한다면 좋은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x,y,z라는 표준이 아니고 a,b,c라는 표준을 사용해야하는가?' 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가치판단을 정당화하는 두번째 단계이다. 헤어는 특정한 원리를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원리가 적용된 결과가 얼마나 좋은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원리는 우리 삶에서 선택과 결정을 지도하는 '선택의 지침'으로 사용되는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선택의 지침을 적용한 결과에 따라 선택의 지침을 선택하고 거부하고 수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숙고된 선택과 결정을 내릴때 항상 '어떤 사물이 좋은 것인가' '어떤 행위가 옳은것인가'를 말해주는 원리를 기준으로 내릴 수밖에 없으며, 원리가 문제되는 상황은 항상 이러한 선택의 상황이다. 또한 결과의 '좋고 나쁨' 이라는 판단 또한 가치판단이기 때문에, 특정 원리를 적용한 결과의 좋고 나쁨은 결국 또 다른 표준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삶의 방식(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정의 전체 묶음)을 결정하는 모든 원리가 총망라될때까지 계속된다.5)

P. foot의 기술주의(descriptivism)

생략

  1. 원문의 정확한 정의를 그대로 가져오자면 이렇다. ''가치판단이란 어떤 주어진 비교의 부류에 속하는 한 대상을 같은 부류에 속하는 다른 대상들과 비교할 떄 그 비교의 부류에 속하는 모든 대상들을 평가하기 위한 표준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기준을 그 대상이 어느정도 만족하거나 또는 만족하지 못하는 ''좋게 (또는 나쁘게) 만드는 특성들''을 지니기 때문에 그 대상을 권장 또는 비난하는 것이다.'' (폴 테일러 2018, 288면)

  2. 위의 책, 289면.

  3. 가치의 표준은 우리에게 어떤 사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말해주고, 행위의 규칙은 어떤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말해준다. 헤어는 이 둘을 합쳐서 '원리(principle)'이라고 부른다. (ex: 정직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거짓말하는 행위는 그르다.)

  4. 비인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가치판단의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판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있는(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총이 있으니, 나의 가치판단에 동의하지 않으면 너에게 폭력을 행사하겠다'라는 사실을 이유로서 제시하는 것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권장되는, 훌륭한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상식에서 심각하게 벗어나있는 결론이다.

5.헤어는 특정 표준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삶에 표준을 적용한 '결과'의 좋고 나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헤어는 행위 혹은 행위의 규칙이 가져오는 결과의 좋고 나쁨에 따라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목적론자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쾌락 공리주의자들같은 목적론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의 잣대(ex:쾌락,행복)으로 모든 행위의 결과를 측정하고, 거기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헤어의 이론에서는 어떤 도덕원리도 그 원리를 삶에 적용한 결과의 좋고 나쁨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 가령 '모두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라'라는 공리주의 도덕원리도 이 원리가 다른 원리에 비추어보았을 때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지에 따라 채택되거나 거부될 수 있다.(공리주의에 대한 닳고닳은 반례처럼, 원형콜로세움에 그리스도인을 가두는 행위를 허용해야한다면 결국 공리주의 원리는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마라'라는 이미 확립된 도덕원리에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와 거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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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노잼 전공시험 전 마지막 철학독서가 될것같습니다 흑흑

이 다음에는 좀 굵직한 책들을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강의파일과 함께)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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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추천드려요

2개의 좋아요

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