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철학의 겉을 열심히 핥고 있는 철린이입니다.
저는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이 후자가 전자를 포함하는 포함관계인 줄 알고 있습니다.
둘은 어떻게 다른지, 단순히 중요도를 주관성/객관성에 두냐의 차이인지, 아니면 질적으로 완전히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철학의 겉을 열심히 핥고 있는 철린이입니다.
저는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이 후자가 전자를 포함하는 포함관계인 줄 알고 있습니다.
둘은 어떻게 다른지, 단순히 중요도를 주관성/객관성에 두냐의 차이인지, 아니면 질적으로 완전히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라는 명칭을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고 계시는지, 혹시 어떤 철학자나 저작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 설명해주시면 다들 답변을 드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철학의 전반적인 역사를 훑어보면서, 중요했던 사조들을 이항대립적으로 구성해보고 있었습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을 지나 칸트의 관념론에 이르렀는데, 관념론은 객관적 관념론과 주관적 관념론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완전 대립적인지, 아니면 그냥 중요도를 어디에 두었냐의 차이 정도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관련 철학자로는 칸트, 피히테, 셸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이 주관적 관념론(정)과 객관적 관념론(반)을 합하여 나온 관념론이라고 이해했는데, 이것도 적절한 이해일까요?
마지막으로 관념론 자체의 이항대립적 위치에는 보통 유물론을 위치시키면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주관적 관념론'이나 '객관적 관념론'이라는 말들은 적지 않은 애매함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사실 주관적 관념론의 계보는 버클리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언급하신 피히테와 셸링을 각각 (오랫동안 그렇게 불려 왔듯이) 주관적 관념론, 객관적 관념론으로 다소 무리하게나마 분리시키고 규정해서, 과연 그 용어들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답변이 다소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관념론 항목에서 직접 발췌 번역한, 피히테에 관한 설명들입니다.
칸트 이후의 철학자 중 최초로 자신이 지식/인식 및 행위의 조건으로 삼고 특정한 자기의식 개념을 바탕으로 한 동적 관념론적 현실(reality) 개념을 구체화하는 프로젝트에 명시적으로 착수한 사람은 1794년부터 1799년까지 예나에 있는 작센 바이마르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던 요한 고틀립 피히테(1762-1814)였다. 그는 학문론(1794/95)과 학문론 제1서론 및 제2서론(1797)에서 자기정립의 원초적 행위가 지식/인식 및 행위의 대상인 한 모든 현실의 기초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출발점은 이러한 인식론적 질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객관적 실재성을, 즉 규정적인 관계에 있는 시공간적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그 실재성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가? 이러한 객체, 관계, 특히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런 것들에 대한 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회의적인 의심의 대상이 아닌 객관적 현실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피히테 또한 인식론의 근본적인 문제들, 즉 인식의 가능 조건과 그 확실성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사상가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칸트의 체계는 (라인홀트의 언급을 따라) 토대명제 내지 제1명제(Grundsätz)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음이 문제로 보였고, 그래서 피히테는 그 근거명제를 "자아"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벌써 왜 주관적 관념론이라는 표현으로 피히테를 이해하고자 하는지가 짐작되긴 합니다. 결국 피히테는 모든 것(인식, 지식, 행위)을 '나'라는 '주관'에서 시작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는 자기의식 또는 자아가 자기 자신을 실존하는 것 또는 존재로서 산출 또는 정립하는 자발적(무조건적) 행위라고 주장한다(ein Akt, der im Vollzug sein eigenes Sein schafft). 그 자신의 존재와 실재성을 낳는, 자기 정립하는 행위(act)로 이해된 이 자아를 피히테는 '실행'(deed-act)으로 특징짓는다. 행위(Act)로도 번역되는 이것(Tathandlung)은, 우리가 실재하거나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통해야만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피히테가 그의 "추상적 반성"의 출발점으로서 선택한 명제는 완전히 확실힐 것으로 생각되는, 즉 어떤 다른 근거도 필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본래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A=A"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동일성의 논리적 법칙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그 어떤 다른 근거들 없이도 어떤 것을 확실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피히테의 용어로 말하면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정립하는"(etwas schlechthin zu setzen) 역량(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에 대한 반성은 피히테에 따르면 동일성의 완전한 확실성은 자아의 정립하는 활동, 즉 정립된 것을 동일한 것으로 요청하는 데에서 성립하는 정립 활동에서 근거지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 활동은 실재적이지 못할 것이고, 어떤 존재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넌지시 보여지듯이, 결국 피히테의 주관은 모든 존재의 제일 근거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이런 '주관이라는 절대적 시작점'이 인식론의 기초가 되는 한에서, 이를 주관적 관념론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히테를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 즉 모든 것을 단지 주관적인 표상으로 보고 그 실재를 부인하는 독단적 관념론자로 해석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버클리와 다르게, 피히테는 자아가 실재를 '정립'한다고 하지, 실재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우리는 동일성 법칙의 확실성 조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아가 자아에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정립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아에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위치시킬 수 있으려면 자아 자체가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자아 절대적인 정립작용이 존재를 정립시키는 활동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이미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한다"가 그 조건으로서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려면 자아를 자신의 정립 활동의 산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은 다시 말해 자아를 활동적인 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립하는 활동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야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셸링을 대개 '객관적 관념론자'라고 부릅니다. 이 이유를 우리는 그에 대한 설명에서 암시적으로 알아챌 수도 있습니다.
피히테의 관념론에 대한 역동적인 개념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1775–1854)에 의해 거의 즉시 받아들여졌다. 셸링은 그의 철학 경력의 첫 번째 시기에 이러한 혼합된 관념론의 가장 노골적인 옹호자인 피히테의 다음 인물이 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지식/인식 및 행위의 조건 분석을 통해 피히테의 현실에 대한 자아-중심 접근 방식을 일원론적 존재론의 관념론적 버전으로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는 헤겔의 뒤를 따랐다. 피히테가 주로 자기 정립하는 자아에 대한 자신의 활동 기반 개념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반면, 셸링은 자기를 구성하는 활동 측면에서 우리로부터 독립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자연에 대해 훨씬 더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피히테의 접근 방식을 보완하려고 한다. 셸링이 관념론적 세계관을 제시하면서 자연을 중심 주제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그의 입장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객관적 관념론"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현실을 현실 내의 모든 특정 항목을 부분적, 불완전하거나 또는 현실 전체의 가장 기본적인 동적 대립의 일방적인 표현, 표현 또는 해석으로 볼 수 있도록 내적으로 차별화된 대립의 근원적 일자(urspürngliche Einhe) 또는 근원적 전체(urfängliche Ganzheit)로 생각해야 한다. 초기 셸링이 스피노자의 단일 실체 존재론과 매우 명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현실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분명히 관념론으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다: 자연주의적인 해석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원론적 존재론을 관념론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개념적 구조를 부여해야 하는 정신적 또는 영적 요소를 가진 세계 전체의 헌법에서 작용하는 활동을 어떻게든 식별해야 한다. 이것은 셸링이 그의 철학 경력의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그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그의 저서 "자연 철학의 이념"의 첫 번째 판(1797)에서 "자연의 체계는 동시에 우리 마음의 체계이다"(IP 30; SW 1, 134)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념론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 주장은 자연과 마음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와 그들의 특징적인 특징, 즉 셸링에 따르면 물질과 개념에 따라 자연과 마음, 물질과 개념이 서로 독립적으로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자연과 마음, 물질과 개념이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하나는 그 반대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확실히 셸링은 피히테와는 다른 노선을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피히테가 자아중심 접근을 했던 반면, 셸링은 스피노자에게 영감을 받아 일원론적인 객관적 접근으로부터 인식론을 개진합니다. 결국 피히테는 '자연=정신'이라는 (다소 무리하게 도식적인 이해일지라도) 얼핏 보면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을 말하는 듯한 테제를 제시합니다. 다만 출발점의 차이는, 셸링은 그것을 '자연'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보기에,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의 차이는 인식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하는 것의 차이로 보입니다. 이건 '중요도'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조금 의미상의 차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헤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나, 헤겔이 이 둘을 일종의 '변증법적으로' 합일시키려 했다는 것은—그의 피히테와 셸링 비판에도 불구하고—어느 정도 맞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헤겔이 '자기 내로의 복귀'라는 개념을 통해서, 근원적 일자인 정신이 분화하고 다시 자기 내로 돌아가는 변증법적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이것은 피히테의 자아중심적 관념론과 셸링의 자연=정신의 관념론을 합일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요.
제 설명이 많이 미흡했던 것 같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설명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면 누구나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쓰신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도저히 고등학생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답변 같지 않습니다ㅎㄷㄷㄷ;;;
친절한 설명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과학적 인식으로 훈련되어 있으니 피히테나 셸링의 관념론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철학사에서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저도 보았습니다.
본인들은 복잡한 사유를 했지만 우리는 두 사람을 단순화시켜 해석하여 보면 피히테는 창조주 역할을 했다고 저는 봅니다. 창세기에 여호와는 이름대로 대상을 만듭니다. 정신이 물질이 되는 과정이죠. 피히테도 신대신 자신이 호명하여 세상을 만들었다는 망상에 빠졌지요. 피히테는 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무신론자로 교수직에서 물려났습니다.
셸링은 존재론 보다는 인식론에서 활약했지요. 칸트는 물자체를 알 수없다고 했지만 셸링은 자아도 자연도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므로 물자체를 알수 있다고 보았지요. 동일한 원리는 객관적일 수 밖에 없지요.
헤겔은 동일한 원리로 모든 대상을 같다라고 보는 셸링철학은 구별성을 상실한 철학으로 비판했지요.
대신에 헤겔은 변증법적으로 동일성을 단계 단계 획득하는 관념론을 완성했지요.
철학사적으로 흥미있는 주장이지만 모두가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사고의 폭은 넓혀 주는 효과는 있습니다. 현재의 존재론이나 인식론은 이런 분들의 노력 덕분에 더 정교해졌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