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유전된 구조다 – 감정의 존재론적 재정의에 관한사유

안녕하세요.
전문적인 철학 훈련을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또한 저는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오만한 사유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덧붙여,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저는 Wilhelm Lange의 원전을 직접 읽은 바는 없습니다.
따라서 기존 이론과 유사하거나 대립하는 지점이 있다면, 이는 우연히 제 사유가 도달한 구조일 수 있으며,
오히려 그 간극 자체가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감정의 본질, 그리고 그 기원에 대해 오랫동안 품어온 사유가 있었고,
최근 하나의 구조적 통찰에 이르러 이렇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정리하자면 제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감정은 해석된 신체 반응이 아니라,
이미 뇌 속에 선험적으로 내재된 정동적 구조이며,
그 구조는 유전될 수 있는 형식이다.

James–Lange 이론은 감정을
외부 자극 → 신체 반응 → 그 반응의 인식
이라는 흐름으로 설명합니다.
즉, 우리는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픔을 인식하게 된다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설명이 감정을 지나치게
후천적, 인식 중심적, 그리고 측정 가능한 심리학적 결과로 환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감정이란 인식되기 훨씬 이전에,
뇌가 이미 알고 있는 구조적 반응 양식,
즉 존재의 작동 조건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아기는 누구에게도 울음을 배우지 않았지만 운다는 점에서,
감정은 문화나 학습 이전에, 뇌 신경망 자체에 내장된 반응 가능성으로 존재합니다.
저는 이것이 곧 감정의 유전성, 그리고 존재론적 구조성을 시사한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감정은
자극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유전적 방식으로 뇌에 형성된 작동 구조 안에서
발생 가능한 정동적 형식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울이 많은 사람은 우울증,
흥분의 임계가 낮은 사람은 조증,
분노 조절 회로가 약한 사람은 분노장애로 연결될 수 있으며,
이것은 외부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설정된 정동 구조가 특정 방향으로 고정되거나 과도하게 발현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특히, 유전적 정신질환이 유년기 이전부터 발현된다는 사실
감정이 단순한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신경학적으로 세팅된 정동 구조 위에 놓여 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감정의 병리적 발현이
특정 경험 없이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감정이 후천적 구성물이 아닌 존재 내장적 형식이라는 주장에 실질적 근거를 더합니다.

물론 감정은 단지 유전적 구조만으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후천적 경험과 환경은 감정의 표현 방식과 빈도, 강도를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의 선천적 구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위에서만 가능한 조절·증폭의 과정이며,
때때로 이러한 후천적 조건이 유전된 감정 구조를 극단화시킬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정신질환 혹은 후천적 병리 상태로 명명하게 됩니다.

감정의 형성이 후천적으로 구성된다는 입장은
양육 방식이나 환경이 감정 구조를 만든다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식적 자아가 형성되는 시점을
생후 4~5세 이후로 보며,
그 이전의 감정 반응은 자각이나 해석 없이 발현되는 구조적 반응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양육 방식이 감정을 구성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미 감정을 반응할 수 있는 선천적 구조가 먼저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내재성은 생후뿐 아니라 태아기의 반응에서도 드러납니다.
예컨대 남아의 경우, 자궁 내에서도 발기 반응이 관찰되며, 이는 자극과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정동 반응을 출력할 수 있는 신경 회로가 이미 작동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흥분이라는 감정의 존재 조건이 뇌 구조 속에 선험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철학적 근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감정은 후천적 해석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 반응 가능성이라는 점이 한층 더 분명해집니다.

만약 감정이 신체 반응의 해석이라면,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사람은 감정을 느낄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여전히 기뻐하고, 슬퍼하고, 공포를 느낍니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심지어 식물인간 상태로 분류된 환자조차도 특정 자극에 대해 뇌의 감정 관련 영역(편도체, 전전두엽 등)이 활성화된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감정이 단순한 신체 반응의 해석이 아니라, 신체 반응 없이도 뇌 내 정동 작동 구조에 의해 작동 가능함을 보여주는 강력한 반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감정은 단지 해석된 상태가 아니라
존재에 내장된 반응 가능성의 구조이며,
그 구조는 유전될 수 있고,
후천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하게 발현됩니다.
이 관점은 스피노자의 정동 철학, 니체의 생리주의,
그리고 현대 신경과학의 일부 흐름과도 일정 부분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감정의 존재론적 재정의’라는 사유를 중심으로
제가 품어온 의문을 정리해본 것입니다.
부족한 제가 철학적 언어를 정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AI의 도움을 받아 사유를 구조화하고 다듬었습니다.
그러나 글의 핵심 내용과 문제의식은 모두 저의 것입니다.

부족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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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나 성향도 유전될 수 있다는 주장이 흥미롭기는 합니다. 만약 이런 '심리학적'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어떤 '철학적' 함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야겠죠. 가령, "감정도 유전의 영역이라면, 감정을 통제하라는 스토아 철학의 윤리적 요구는 정당한가?" 같은 물음이 떠오르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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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선천적 구조라면, 감정을 통제하라는 윤리적 명령은 '절대적 의무'가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선택 가능한 '제한된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곧 자유의지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며,
스토아적 자기통제 개념 역시 '구조 내부의 선택지' 안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재해석될 여지를 남깁니다.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조차 확신 없이,
단지 이 방향이 맞다면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조심스럽게 글을 남겼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사유마저 24시간내에 어떤 평가나 생각을 얻지 못했다면
저는 철학에 대한 생각을 아예 접고,
철학서를 처음으로 펼 일도 없었을 것같습니다.

제게 이 글은 철학이라는 길 위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본 네 번째 사유이자,
막 시작된 철학이라는 취미를 아직 붙잡고 있는 작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 불안한 지속을 지켜봐 주시고, 이어가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신체적 반응이 감정이나 인지와 무관하게 발생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신경회로와 관련지어 이를 감정 조건이 내재되어 있다고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는 무조건반사를 비롯한 감정과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반응이 존재한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대뇌와 무관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감정의 존재 여부와는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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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무조건반사에 대한 지적,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제가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 제 입장을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감정을 단순한 신체 반응이나 반사 회로로 본 것이 아니라, 뇌가 형성될때
이미 뇌 안에 선천적으로 내장된, 감정을 가능하게 하는 작동 양식으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무조건반사는 대뇌를 거치지 않고 척수 수준에서 일어나는 비감정적 생리 반응인 반면,
제가 말한 감정의 구조는, 단순한 반사처럼 자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이 아니라,
감정을 일으킬 수 있도록 뇌 깊은 곳에 선천적이며 유전적으로 짜여진 반응 체계를 뜻합니다.

진지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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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지만, 다만 한가지 걸리는 점은 [우울이 많은 사람을 우울증] 이라 규명하기에는 조금 비약이 있을 듯 합니다. 비유에 해당하는 구절이였다면 비판할만한 대상이 아닐 것 입니다. [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울증이나 강박증과 같은 많은 수의 정신적 장애의 경우 우울을 일으키는 호르몬/강박을 일으키는 호르몬이 각각 구별되어있다기 보다는 주로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을 위시로 한 세 가지 호르몬의 복합작용으로 대다수의 정신적 질환/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르몬들관의 연관관계를 고려하였을 때, 특히 특정 호르몬이 단일적으로 감정에 작용하는 사례보다는, 세 가지 호르몬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이 작용하여 감정적 변화와 신체적 흥분(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우울증의 경우 주로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져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점은 각각의 감정이 명확히 구별되어있다기 보다는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낮아짐/높아짐에 따라 말씀하신 다양한 감정들이 발생한다는 것 입니다] 만 이 점을 제외한 [신경학적으로 세팅된 정동 구조] 와 [존재 내장적 형식] 이라고 설명하신 부분은 인상 깊은 구절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감정이 신경학적으로 세팅된 정동 구조 위에 놓여있다고 가정하였을 때, 감정의 구조가 단순히 후천적 구성물이 아닌 존재 내장적 형식이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해 보입니다. 감정은 선천적으로 그 구조가 결정될 수 있지만, 후천적으로도 구성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학대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 별아교세포가 시냅스를 과도하게 제거해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Stress induces behavioral abnormalities by increasing expression of phagocytic receptor MERTK in astrocytes to promote synapse phagocytosis] 이러한 점으로 보았을 때, 유아기의 신경계의 발달 과정에 문제가 생겨 감정의 역치나 이의 강도에 이상이 생길 수 있지만, 이가 아닌, 후천적인 경험으로도 감정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다만 이러한 감정의 구조가 유전될 수 있음을, 혹은 이가 선천적으로 결정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만,
이렇게까지 진지한 답변을 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제 사유가 어느 정도 의미 있었던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처음에 댓글이 없었을 땐, ‘내 생각이 너무 모순된 건 아닐까’ 하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토론적인 반응을 받아보니,
제 생각이 혼잣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감각 자체가
저에겐 정말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본론과는 조금 다른 서론으로 시작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문적인 용어까지 함께 말씀해주셔서, 그만큼 기뻤던 마음에...

본론으로 들어가면, 제 글에는 부족한 표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우울이 많으면 우울증”이라는 구절은 당시엔 도식적 비유로 쓴 표현이었지만,
말씀해주신 것처럼 지나치게 단정적인 문장이었던 것 같고,
지금 돌아보면 오해나 과도한 일반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도 그 부분은 분명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정이 단순히 후천적 자극이나 해석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뇌가 형성될 때부터 선천적이며 유전적으로 짜여진 반응 체계,
즉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 구조 안에서 발현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곧 고정된다는 의미는 아니고,
감정이라는 구조가 후천적 경험과 환경, 관계 속에서 변화하거나 조절될 수 있음은 저도 깊이 동의합니다.

저는 인간이 먼 과거로부터 유전과 진화를 거쳐,
태어날 때마다 고유한 재능을 품고 오늘까지 이어져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재능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거나 발현되는지는
결국 어떤 환경(후천적)에 놓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감정도 선천적으로 받은 구조 위에서 후천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드러나는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랑게 이론에 의문을 품게 된 이유도,
감정을 전적으로 후천적 해석의 결과로만 본 접근이
제 감정에 대한 감각과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글에 넣으려다 빠뜨렸던 제 생각 중 하나는,
감정이 단지 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뇌 안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꺼내는 방식을 알지 못할 뿐인 구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기자들이 실제 자극 없이도 울 수 있는 것도,
뇌가 감정의 구조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들도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 표현을 배우진 않았듯이,
인간은 지적 존재로서 감정을 의식적으로 호출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감정은 단순한 자극이나 반응이 아니라,
타고난 구조와 삶의 환경이 맞닿는 지점에서 드러나는
열린 작동의 방식이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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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투르게 지나쳤던 의견 중 하나는,
앞서 본문에서 제가 “우울이 많은 사람은 우울증”이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해
다소 도식적이고 오해의 여지가 있는 서술을 했던 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비판을 통해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말씀드리는 내용이 비슷한 감각의 예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의미상으로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드리는 말씀임을 조심스럽게 덧붙이고 싶습니다.

감정이 유전된 구조 안에 자리한다고 생각할 때,
때로는 그 구조 자체가 너무 민감하거나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가 특정한 외부 자극 없이도,
내부에서 감정이 불균형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존재 구조 안에서 일정한 패턴으로 작동하는 정동적 형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감정 구조의 고정성을 말하고자 했지만,
지금은 그 구조가 자극 없이도 스스로 과잉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전 글에서는, ‘우울이 깊게 유전되면 우울증’이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제 스스로도 그 모순적인 선을 잠시 밟았던 것 같습니다.

진지하게 읽어주시고,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눠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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