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교회: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교회의 정치학』에 대한 단상

"이 책은 기독교 신념의 힘과 진리성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자유주의의 지적·정치적 전제에 도전한다. 간단히 말해, 나는 기독교가 토대주의 인식론(foundationalist epistemology)──즉, 칸트(Kant) 같은 사상가에게서 전형적 예를 찾을 수 있는 종류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 기독교 세계의 사회적 전략에 상응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사회적 전략은, 일반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믿을 만한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뜻밖에도 이러한 전략은 기독교를 자유주의의 그릇된 보편론을 정당화하는 일련의 믿음 체계로 바꾸어 버렸다. 이 책에서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확증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실천의 구현으로서 교회가 중요함을 재확인함으로써 그 전략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1

(1) 하우어워스는 매킨타이어와 함께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윤리학자로 거론되는 인물이자 『타임(TIME)』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America's Best Theologian)'로 뽑힐 만큼 세속 세계에도 영향력을 지닌 그리스도교 사상가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하우어워스의 윤리학적-신학적 입장은 철저하게 교회 중심적이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일반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믿을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의 윤리학은, 세상이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매우 명확한 어조로 선언하고, 교회는 세상을 '점령'해야하다고 주장하며, 교회가 세상에 대해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에 대해 지엽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타협 없는 교회 중심적 윤리가, 역설적이게도, 가치의 문제를 배제한 채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를 '중립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그 어떠한 자유주의 윤리보다도 더욱 강력한 실천적 함의와 설득력을 지닌다고 세속 세계에서조차 인정받고 있다.

(2)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경쟁하는 정치, 경제, 사회의 이념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나도 하우어워스와 유사한 이유로 '자유주의(liberalism)'와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지목할 것이다. 나의 '자유'가 내 행위를 정당화하는 최종 근거로 선언될 경우, 나라는 '개인'이 도덕의 문제를 판단하는 최상의 기준으로 상정될 경우, '나'는 하나님의 위치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내 입맛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만다. "X를 하는 것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내 자유다!"라는 말과 "X를 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라는 말은 모든 도덕적 논쟁을 묵살시켜버리면서 '나'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수사법이다. 이러한 식의 수사법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커녕, '옳음/그름'에 대해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트겐슈타인이 잘 지적한 것처럼, 내 마음대로 결정되는 자의적인 규범이란 애초에 '규범'일 수조차 없다. 도덕을 '자유'와 '개인' 위에 정초시키고자 하는 입장은 사실 도덕에 대해 논의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샌델 같은 소위 '공동체주의' 윤리학자들이 자유주의 사회에서 '도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이유도 본질적으로 여기에 있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개인을 상정한 채 '중립적으로' 정의의 문제를 다루자는 주장은 결국 정의의 문제 따위는 논의하지 말자는 주장과 동일하다.

(3) 교회에서는 엉뚱하게도 자꾸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우리 시대의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언급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를 부정한 채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회의주의', '상대주의', '쾌락주의'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수리물리학적 진리가 다른 모든 진리보다 우위성을 지닌다는 근대철학의 전제에 반대하는 것이지, '진리'나 '신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한다고 거론되는 입장들이야 말로 신앙의 중요성을 그 어떠한 철학적 사조보다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러한 입장들은 우리가 신앙을 통해 받아들이는 '교의', '전통', '가치' 등이 근대의 수리물리학적 합리성에 의존하지 않고서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강조하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적처럼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 중심적 윤리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하우어워스조차 자신의 철학적 근거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격 사조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이론에 두고 있다. 자신들을 '실재론'과 '유물론'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하는 메이야수 같은 최근의 인물들이 비트겐슈타인과 그 동류의 20세기 철학자들을 '신앙주의(fideism)'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더라도 신앙의 문제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가 단적으로 확인된다.

(4) 한 마디로,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대결해야 하는 사조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이지,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다.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와 같은 극단적 표어는 포스트모더니즘보다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훨씬 더 어울린다.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동맹 관계를 맺는 편이 나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도덕의 문제에서 '중립'이라는 상태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전제로 도덕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하우어워스가 바로 이러한 전술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힘과 진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a) 자유주의 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세속 사회가 요구하는 '중립적' 관점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b) 포스트모더니즘 이 강조하는 것처럼, 신앙은 근대의 수리물리학적 합리성을 토대로 삼지 않고서도 그 자체로 자신의 정당성을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다. 따라서 (c) 교회의 사명 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앞세워 세속 사회에 자신의 신앙을 증언해야 한다.

  1.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회의 정치학』, 백지윤 옮김, 2019, 26쪽.
5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