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장의 메타윤리스러운 논의를 위한 예비적인 내용을 다루는 챕터라서 책의 내용이 좀 부실한 감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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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규범윤리와 (약간의) 메타윤리를 다룬다. 규범윤리학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불변의 범문화적인 도덕체계가 있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의 분과이다. 그러나 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견해 중 하나는, 세상의 여러 문화권은 그들만의 자체적인 표준과 규칙이 있고, 도덕적 옳고 그름이란 그 표준에 맞게 행동하는것에 대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규범윤리학은 먼저 이러한 윤리적 상대주의의 이론을 검토해야한다. 윤리적 상대주의적 입장에는 기술적 상대주의, 규범윤리적 상대주의, 분석윤리적 상대주의가 존재한다. 윤리적 상대주의라는 말은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입장의 전부나 또는 그 중의 일부를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기술적 상대주의
기술적 상대주의에 의하면 모든 문화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규범은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하여 각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견들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이것은 규범적 이론이 아닌 사회학적, 역사적 주장이다.
기술적 상대주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세 가지 사실을 정리볼 수 있다.
ㅡ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사실
한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관습,금기,종교,도덕은 문화권이 존재하는 지리적 위치와 시간대, 그리고 그 사회안의 계층에 따라 다르다.
ㅡ도덕적 신념이나 도덕률의 기원에 대한 사실
최근의 심리학적 발견을 고려하면, 많은 사람들의 도덕적 신념은 단지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윤리적 제재(sanctions)가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것이다. 어린 아이는 부모와 선생들에게, 무엇을 하고 하면 안되는지 상벌을 통한 가르침을 받는다. 따라서 더 이상 주변인들이 아이를 나무랄 수 없을 때가 오더라도 철저히 학습된 인간은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부모와 선생들은 대개 사회의 전통과 관습에서 권위를 빌려오므로, 개인이든 사회이든, 논리적 추론이나 객관적 방법을 사용해서 도덕적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ㅡ자기민족 중심주의에 대한 사실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은 대개 객관적 도덕원리는 하나이고 이러한 진실된 도덕이 바로 자신들의 도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며, 다른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도덕체계는 단순히 오류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민족 중심주의는 흔히 불관용과 독단주의에 이르게 된다.
기술적 상대주의에 대한 반론
그러나 모든 문화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규범이 없다는 기술적 상대주의의 주장은, (a)구체적인 도덕적 표준과 구체적 규칙, (b)궁극적인 도덕원리 사이의 구분을 혼동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도덕적 표준이란 개인의 성격이 도덕적으로 좋은가 나쁜가를 판단하고 또한 특정한 성격을 계발하기를 권하는 기준으로, 용기,믿음직함,친절함 등등의 표준이 있을 수 있다. 구체적 행위규칙이란 어떻게 행동해야 하거나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것에 대한 규정이면서 또는 옳고 그른 행동을 판별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궁극적 도덕원리란 개인의 성격이나 행위에 대해 어떤 구체적 표준이나 규칙을 적용하기위하여 반드시 성립되어야할 조건에 관한 보편적 명제나 진술이다.
이러한 원리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같는다: 임의의 표준 s 또는 규칙 r은 조건c가 충족될 때 오직 그때에만(if and only if) 한 개인 또는 행위에 적용된다
궁극적 도덕원리의 한 예로, 4장에 가서 탐구되는 공리주의 원리(유용성의 원리)가 있다. 유용성의 원리는 '임의의 표준 s 또는 규칙 r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증진할때 오직 그때에만 한 개인 또는 행위에 적용될 수 있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1
이러한 구분을 받아들일때, 우리는 모든 문화권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행위규칙이나 표준들은 서로 매우 다양할지 몰라도, 그들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궁극적 도덕원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력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두 문화권을 생각해보자. 극도로 빈곤한 A사회에선 경제적인 생산에 공헌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행동으로 여겨지지만, 빈곤하지 않은 B사회에선 가능한 한 부양하는 것이 옳은 행동으로 여겨진다. 두 문화권은 같은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도덕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유용성의 원리라는 궁극적 도덕원리를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 보편적인 궁극적 원리가 있다면 도덕률 간의 실제적인 차이는 단지 각 사회 간의 물리적 환경이나 구체적 문화와 관습의 차이때문에 벌어지는 것일 수 있다.
규범윤리적 상대주의
도덕규범(도덕판단의 기준)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만 옳게 적용된다. 그들의 행위는 오직 그들이 속한 사회가 선택한 도덕규범으로만 판단될수있고, 지도될수있다. 남편이 한명 이상의 아내를 두는 것은 그른가, 옳은가? 규범윤리적 상대주의자에 따르면 그것은 그 남자가 어느 사회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사회의 남성이라면 옳을 것이고 아니면 그를 것이다. 만약 규범윤리적 상대주의자가 자기의 입장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그는 다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할 수 있다. 그는 규범윤리 상대주의를 지지하는 논거로 기술적 상대주의를 택하거나, 분석윤리학적 상대주의를 택할 수 있다. 후자는 잠시 미루고 전자부터 살펴보자.
서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규범을 받아들이기 때문에(기술적 상대주의)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규범은 없다(규범윤리적 상대주의)
그러나 앞의 내용에서 의문시되었던 기술적 상대주의가 설사 참이라고 해도 규범윤리적 상대주의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사실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규범을 받아들인다 해도, 여전히 그러한 신념들 중에서 어느것이 참이라고 믿을 더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것이 더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가능할 수 있다. (만약 합리적인 추론방법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기술윤리적 상대주의 말마따나 우리의 많은 도덕적 신념은 사회환경에서 유래된다. 그러나 우리는 도덕적 신념 못지않게 경험적인 신념을 사회로부터 배운다. 화학이나 물리에 대한 신념을 학교에서 어느정도 강제로 배우지만,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인 추론방법의 결과로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다. ''도덕적 신념의 기초가 되는 태도가 모두 사회환경에서 배운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은, 주어진 행위나 사회적 관습에 대해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견문이 넓은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는 문제를 미해결의상태로 남겨둔다''2
이번에는 분석윤리학적 상대주의의 한 유형인 방법론적 상대주의를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추론방법을가지고 도덕판단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똑같은 행위가 한 문화권에선 정당화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론을 위해 제시된 이유들 중 무엇이 더 좋은 이유인지 판별하는 기준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그러나 몇몇 도덕철학자들은, 어느 문화에 속하든 도덕문제에 관해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실상 전제하고 있는 논리적 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뒤에서 이러한 시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몇가지를 알아볼 것이다.
윤리적 절대주의
윤리적 상대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애매하게 쓰이는 것처럼, 윤리적 절대주의도 두가지 뜻 중 하나를 의미한다. 어떤 도덕규범은 범문화적 추리방법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규범은 모든 인간의 행위에 올바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보편주의적인 절대주의는 앞에서 언급했던 모든 상대주의를 부정한다.
두번째 의미에 의하면, 도덕규범이 절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예외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그르다'라는 규칙이 두번쨰 의미에서 절대적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결코 어겨서는 안된다.
우리는 첫번째 의미의 절대주의를 택하면서도 두번째 의미의 절대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특정한 행위를 명령하는 규칙(살인하지 말라)은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적용된다는 것은 두번째 의미의 절대주의이다. 그러나 정말 특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어떤 규칙은 합당한 예외(정당방위)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예외는 범문화적인 추리방법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은 첫번째 의미의 절대주의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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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테일러가 도덕원리는 '궁극적'이라고 할때 그는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고있거나, 혹은 평범한 사람들은 도덕원리를 인식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신의 무반성적인 도덕추론을 정당화하려 시도할때
근거로서 참조하는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뿐이다.
2.폴 테일러 2018, pp.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