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서의 논증

철학을 하는데서 논증은 어느정도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과연, 논증은 학문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걸까요?

어떤 이는 말합니다. "논증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리하고 설명하는 수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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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없는 철학은 성립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논증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철학이 아닌 무언가를 하면 되지요. 문학이라던가, 음악이라던가 하는 것들이요.

너무 많은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겠다만, 어찌됐든 논증을 할 수 없으면 철학에서 받아들일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문학이나 예술쪽에서 받아들여질 수는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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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그의 강한 주장에 비해서, 뚜렷한 논거는 제시하지 않는 철학자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의 전반적인 핵심적인 통찰(?)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왠지 그를 보면 철학에서 논증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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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지요. 애초에 질문이

이거였는데 제가 잘못 이해를 했네요. 제가 보기에 논증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음 예시를 보시죠:

전제1: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전제2: 모든 인간은 죽는다.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완벽한 논리입니다. 저는 완벽한 논증으로써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것을 보였죠. 하지만 이럼에 있어서 저는 철학에 대해 기여를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에 논증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하나의 예시겠네요.

그렇다면 철학에서 논증빼면 뭐가 있는가? 라고 하면,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얼마나 그때 당시에 풀고 있던 철학적 문제들을 잘 풀어주느냐 인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 같은 경우는 고통의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지요. 그 당시 사람들은 세상이 하나의 좋은 목적을 가진다고 생각했지요. 세상은 그 하나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가는 것이며 그 목적은 뭔가 좋은 목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이런 설명은 우리의 고통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이런 고통을 가진다는 것이 이런 목적성적인 사상에 반례가 된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인의 철학을 전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 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욕망을 해소해야하지만, 그 욕망을 해소함으로써 얻는 더 큰 목표는 없는, 그런 개념이 나오게 되지요. 반면 위에서 제가 제시한 논리는 그 어떤 문제들도 풀어주지 않기 때문에 딱히 중요하진 않지요.

그렇군요.

논증 이외에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어떠한 감정적 요소들을 배제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다양한 글들을 읽고,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즉, 마음가짐이 기본적으로 dry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풍경님이 강조하셨기도 했죠.

제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크게 공감하고, 그를 대단한 철학자로 생각하는 이유는 "의지" 개념에 있는데, 이 의지라는 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깃들어 있으며, 따라서 의지라는 관점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견해를 펼친 최초의 철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Spinoza says (Letter 62) that if a stone thrown flying through the air were conscious it would think it was flying of its own will. I only add that the stone would be right (WWR 151; WWV 150).

번역하자면: 스피노자는 돌이 날라갈 때, 그것이 의식이 있었으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돌이 맞을 것이라는 것만 더하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데카르트 네번째 성찰, 그리고 스피노자의 E2p49c, E2p49s, E3p6를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쉘링도 비슷한 내용으로 많이 다뤘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처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철학적 문제들을 풀어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관점에서는 논증은 그 이상의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논증 자체가 즉, 어떤 새로운 핵심적 주장을 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하는 것 또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작업이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봅니다.

아 그렇습니까? 쇼펜하우어 본인이 저서에서 자신이 그 견해를 펼친 최초의 철학자라고 말했던 부분이 있어서요.

그런가요? 저는 지금 나가봐야해서 대화를 오래 못할 것 같지만, 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인용구를 보면 그래보이진 않습니다. 실제로 의지가 19세기 독일 신-스피노자주의에서 가장 큰 개념 중 하나기도 했고요. 쇼펜하우어가 그 얘기를 한 부분이 있다면 인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똑똑히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못해드리고, 시간 될 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나온 말인 듯 한데, 그 조차 아니라면 제가 조금 착각한 부분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니, 어쩌면 이서규의 글에서 본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