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는 실패한다

논리학에 올리자니 아주 뻘소리인데 어디에 올려야할지 고민하다가 잡념에 올립니다. 잡념 수준도 아닌 글이지만요. 아무튼 "라면 먹고 갈래?"라는 것이 논리학적으로 보기엔 참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통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논리학적이지 못하군요!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어떤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논리학을 좋아하는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논리짝남 또는 논리썸남이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그녀는 용기를 내서 그에게 "라면 먹고 갈래?"라고 말해봅니다. 이는 의문문이지만 이를 진술문으로 바꿔서 의미를 보자면 "라면 먹고 & 집에 가라" 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논리썸남에게 하필 이런 말을 하다니요?! 그는 여기서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고 듭니다.

"라면 먹고 집에 간다"라고 하면... !
당연히 기초 논리학 따위는 우스우신 분들이시니 알겠죠?
경우의 수는 4가지가 되겠군요.

여기서 '라면 안 먹고 집에 가는 상황'이라 합시다. 논리썸남은 이런 부당한 상황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진술문이 부정확하다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라면 먹고 집에 안 가는 것'도 거짓...
라면 안 먹고 집에 안 가는 것도 거짓...

유일하게 타당한 상황은? 라면 먹고 집에 가는 상황! 그래서 라면 먹고 그냥 집에 가버립니다! 얼른 집에 가서 성스러운 교수님이 내주신 논리퀴즈를 풀어야 하니깐요! 아 '쉽지 않네'라고 생각하는 짝녀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므흣한 상황은 라면 먹든 안 먹든 집에 가지 말라고...! 겠지만 논리썸남에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요. 논리적으로는 거짓입니다! 그걸 참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 여자는 포기를 모릅니다. 그녀는 짝남이 논리학을 사랑한다는 걸 잘 알고 그녀도 배우기 엄청 싫었지만 사랑의 힘으로 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이제 썸(?)남의 논리학으로 절여진 뇌를 잘 작동시키는 일만 남았군요!

그렇다면 "라면 다 먹으면 집에 갈래?(=라면 다 먹으면 집에 가)"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럼 항상 타당성을 추구하는 논리썸남은 다음과 같은 경우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우선 논리적으로 라면 다 먹고 집에 가버리는 생각을 먼저 해버리는 논리썸남...! 아, 역시 만만찮아요! 근데 이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게 제일 타당해보이니까요! 하지만 논리썸남은 다른 타당한 고려사항들이 있으니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그가 만약 라면을 다 먹었는데 집에 안 간다면?! 아뿔싸 타당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번에도 썸녀는 실패하고 말겠군요...

만약 논리썸남이 라면을 안 먹었는데 집에 간다면? 전건이 거짓인데 후건이 참이군요! 아뿔싸! 또 썸녀는 실패했습니다. 쉽지 않네요!

그럼 만약 내가 라면을 안 먹었는데 안 간다면? 이건 성공했네요! 그나마 조건언의 경우에는 성공의 가능성이 있었군요! 하지만 이거 썸녀 기준에선 너무 성공확률이 없는 거 아닙니까?

논리썸남을 휘어잡고 싶었던 썸녀는 이걸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수법으로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정교하게 말을 바꾸는 것이죠.

"그냥 갈 거라면 라면 먹을래?"

이게 뭔 소리죠? 그냥 가는 거면 가는 거지 무슨 라면을 먹습니까?! 하지만 논리썸남은 이 말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말이 매우 거슬립니다. 진술문의 타당성을 지켜야 하거든요!

효과는 대단했다!

논리썸남은 이제 갈 거였어도 라면을 먹어야 합니다. 적어도 전건과 후건을 참으로 만들어서 저 말의 타당성을 지키고 싶어하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라면썸녀가 그가 집에 못 가게 막습니다. 논리썸남은 함정에 빠진 겁니다. 이러면 진술이 타당해서 논리썸남이 그녀의 말을 따라줄 수 있어요!

순진한 논리썸남이 갈 거라면 라면 먹고 가란 말만 믿고 그녀의 집에 들어왔지만, 이제 그녀가 라면을 안 끓여주면 할 말이 있지만, 썸녀의 머릿 속에는 그런 상황은 없을 것 같네요. 뭐가 됐든 라면만 먹이면 성공하거든요!

썸남에게 있어서 저 말이 거짓이 되려면 그냥 갈 거였는데 라면 끓여주지 않을 상황 뿐이네요. 근데 썸남이 그냥 가버리면 썸녀는 라면 안 끓여줄 거잖아요! 썸남은 그런 부당한 상상을 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지혜로운 그녀는 논리썸남과 관계가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해피 엔딩이네요~

하지만

사실 논리썸남은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았고 "그냥 갈 거'라면 라면' 먹을래?"이라는 말에 꽂힌 거였습니다. '라면 라면'이라는 거에 흥미를 느껴서 깊은 고뇌에 빠지다가 그렇고 그런 상황까지 간 거였지요. 한 문장에 라면이 두 개나 들어가다니! 역시 라면은 2개부터 시작아니겠습니까?

예, 뭔 왈왈소리냐면... 새벽에 라면 한 개 끓일까 두 개 끓일까 하다가 정신줄을 놔버렸습니다. 그러다 이 개소리를 하다보니 수치심에 라면 끓일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0개 끓이고 무사히 제 뱃살을 지킬 수 있었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죠.

근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애초에 나에겐 라면 끓여줄 썸녀 따윈 없으니 배드엔딩인 것 같네요. 눈에서 물이 주륵... 흘릴 거라면 차라리 라면이라도 끓여서 입에서 물이 주륵 흐르도록 할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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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언제‘ 가는지를 명시화하지 않았으니, 언젠가 가기만 하면 처음 두 명제(“라면을 먹고, 집에 간다.“와 “라면을 먹으면, 집에 간다.“)도 참이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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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엔 반어법에 해당하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이랑 고려대한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해당 문장에서 가장 가까운 "-고"의 뜻은

  1. 동사의 어간이나 선어말 어미 ‘-으시-’의 뒤에 붙어, 앞 절의 일이 일어난 뒤에 뒤 절의 일이 순차적으로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사전)

같습니다. 저 뜻에 비추어 본다면

라면을 먹는 것과 집에 가는 것 사이에 무언가 시간이 있다기보단

글자 그대로의 뜻이 더 적합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결국 썸녀는 썸남에게 정말로 라면을 먹고 집에 가라는 것이냐? 진짜 라면 끓여줘놓고 집으로 보내주면 그렇긴 하죠....하지만 @YOUN 님의 말씀대로 "언제"에 해당하는 시간에 무엇인가를 했다면, 그리고 그 무엇인가가 썸녀의 진의였다면 실제 말과 다른 행동을 한 것이므로 "라면 먹고 갈래"나 "고양이 보고 갈래"는 반어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어법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다른 분들이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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