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의 대상인 문장과 기타 후보들

벤슨 메이츠 선생님이 쓰신 <기호 논리학>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 현대 논리학의 표준적인 교과서로 인정받는 만큼 지침서로 두고, 개념을 외우고, 형식언어로 번역하는 기술 등을 익히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시중 유명한 논리학책들이 <비판적 사고>와 엮인 <논리 공학>을 다루는 반면, 이 책은 서문에 나오듯 “논리학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설명이 있습니다.
현대 논리학 체계를 전개하는 데에 밑바탕인 예비적 논의 중 하나인 <논리학의 대상은 무엇이냐>는 논의에서 벤슨 메이츠는 1) 문장 2) 명제 3) 진술 4) 판단 5) 사고로 나열된 논리학의 대상 후보지 중 <문장이 감각적 지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형태를 지닌 대상인 점>에서 논리학의 대상으로 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한국어 문장 <눈이 내린다>와 영어 문장 은 동의적이어도 서로 구별되는 두 대상이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2) 명제는 다른 형태의 문장이 서로 동일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명제가 대상이라면, 앞서 예시에서 '눈이 내린다'와 'it is snowing'은 구별되지 않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에서 <논리적 속성>들을 살피는 작업에 적절하지 않으며, 3) 진술은 명제와 반대로 같은 형태의 문장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문장 '그는 대선에서 당선되었다'에서 '그'는 '문재인'을, '윤석열'을 지칭할 수 있고, 그 결과 동시에 참이나 '홍준표'이면 거짓이구요)에서 논리적 속성을 살피는 데 적절하지 않다고 거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벤슨 메이츠 선생님이 명제, 진술, 문장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만큼이나 <논리학의 대상이 문장이다>는 구별이 일상적인 철학 텍스트에서는 그다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반적인 철학 텍스트뿐 아니라 논리학 텍스트에서도 서술된 문장을 '문장'이란 말을 사용하여 가리키기보다 오히려 '명제', '진술'이란 말로 가리키는 것이 자주 목격되니까요. (논증의 타당성을 따지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조차 이런 구분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말입니다)

질문을 정리하자면, 1) 실제로 전문적인 논리학 논의에서 이런 구분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인지 혹은 2) 자유롭게 진술, 명제, 문장을 서로 대치하면서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별도로 이 후보지들을 다루는 텍스트가 있으면 추천받고 싶어요)

질문이 많이 길어졌어요.. 제 우문에 올빼미분들의 현답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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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생겼던 메이츠 책의 일부분을 올려주셨으면 메이츠의 의도 파악이 좀 더 쉬웠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문장과 명제에 관해 <기호논리학>에서 발췌한 부분을 읽어보니 우선적으로 메이츠는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전제나 마음의 눈 같은 것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구조적인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명제보다 문장이 더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선호할 만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Only reasonably good eye-sight, as contrasted with metaphysical acuity,
is required to decide whether a sentence is simple or complex, affirmative or negative, or whether one sentence contains another as a part.
한 문장이 단순 문장인지 복합 문장인지, 긍정문인지 부정문인지, 또는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그 부분으로서 포함하고 있는지 등을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형이상학적 예리함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괜찮은 시력이다.

명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 같네요.

[Propositions] are so-called abstract entities and, as such, are said to occupy no space, reflect no light, have no beginning or end, and so forth. At the same time, each proposition is regarded as having a structure, upon which its logical properties essentially depend. If we were to study logic from this point of view, therefore, it would be imperative to have a way of finding out in given cases what that structure is. Unfortunately no simple method is ever given.
[명제]는 공간을 점하지도, 빛을 반사하지도, 시작과 끝이 있지도 않는 등 소위 추상적 대상이라 불린다. 동시에 각 명제는 논리적 속성들이 본질적으로 의존하는 어떤 구조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논리학을 이런 관점에서 연구한다면, 그 구조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행히도 그것을 위한 어떤 단순한 방법도 주어진 적이 없다.

쉽게 말하면 명제를 논리학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논리적 속성이 의존하는 명제의 구조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그 방법 자체가 요원하니 명제는 적합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철학자들이 명제가 구조를 갖는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론 소수설이긴 하지만 명제를 가능세계 집합으로 보는 비구조화된 명제론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Robert Stalnaker 같은 철학자들이 그렇습니다)

글쓴이 분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기초적인 수준에서 엄밀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제가 알기론 많은 경우 문장, 진술, 명제를 구분한 뒤에 한 가지를 정해서 기준을 마련한 뒤에 섞어쓰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문장을 논리학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의존적 표현을 포함하거나 구조적 혹은 어휘적 애매성이 개입된 경우는 배제된 진술문 형태의 문장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제한을 가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어떤 입장을 취하든 결과적으로 논리학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관해 교과서적인 수준에서는 대동소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분명히 제가 파악하지 못한 각 입장들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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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찾아서 언급해 주신 대로 벤슨 메이츠는 명제의 논리적 속성을 알기 위해서는 명제의 구조를 알아야 하지만, 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결코 명확하게 주어진 적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근거를 되는대로 짧게 쓰려다 보니 빼서는 안 되는 부분이 빠졌네요 ㅠ 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구조> 개념이 저도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는 것인지, 문법적 형태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그 이상의 개념이 개입되는 것인지를 잘 모르는 마당에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논거를 사용하기가 망설여졌어요).
벤슨 메이츠는 더 깊은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 이상의 논쟁을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군데군데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논리적 속성인 타당성, 귀결 등의 개념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명제, 진술의 애매성(?)>으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는 문제를 문장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피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해 주신 방식대로 구체적으로 공부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문장, 명제, 진술을 논리학의 층위에서 아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수강한 수업의 교수님들께서는 저 구분을 언급하시면서도, 저 구분이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질 필요는 없다고 종종 이야기하셨습니다. 오히려 논리학 자체보다는 언어철학이나 논리철학에서 저 구분이 훨씬 중요하게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수학자들이 '수학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령, 수가 일종의 실재인지 허구인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논리학 자체는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반드시 참이 되도록 만드는 형식적 체계에 대해 탐구할 뿐, '논리학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메타적인 고민은 엄밀히 말해 논리학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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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술어 논리에서 '문장'은 '닫힌식[closed formula]'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하더군요.

From http://encyclopediaofmath.org/index.php?title=Proposition&oldid=29867:

The term "sentence" is used for a formula whose variables are all quantified, as in the examples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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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적 논의라는 지적에 저도 동의합니다. 물론 라쿤 님이 언급하신 대로 후보지 중 택일하는 각 입장들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근본적인 지점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맥락의존적이어서 모호한 표현들이(가령 ‘나’와 같은 egocentric한 표현들) 배제된 진술, 명제를 사용할 경우에는 전제인 문장과 결론인 문장 사이 귀결 관계를 탐구하는 논리학의 작업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당연하게도 후보군 논의뿐 아니라 프레게의 뜻-지시체 이론, 러셀의 역설 등 초기 분석철학의 성과나 연구, 프레게와 반대로 <지시체가 뜻을 결정한다>는 역순을 주장하는 비교적 최근의 분석철학자들(크립키, 퍼트남)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더라구요.
여하튼 논리학 공부가 제 관심을 분석철학과 매개해 줄 것 같단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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