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토끼가 하얗다는 속성을 가진다‘라는 문장은 적어도 제 언어적 직관에 의해서는 몹시 이상해 보입니다.
‘토끼가 하얗다’는 어떤 속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명제처럼 보여요.
물론 토끼가 하얗다라는 속성을 형식적으로 정의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x는 토끼가 하얗다는 속성을 가진다 iff 토끼가 하얗다
라거나
토끼가 하얗다는 속성을 가지는 대상들의 집합을
{ x | ∀y(토끼y -> 하얗다y) }로 정의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토끼가 하얗다는 것이 전혀 x라는 대상과는 별개로 성립할 수도 있다는 것은 몹시 이상해 보입니다.
자기 자신과 전혀 관계없을 수도 있는 속성을 가진다니요...
저는 이런 반직관적인 속성들을 배제하기 위한 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건이 x의 속성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최소한 그 조건은 variable x를 포함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 제약을 받아들이면, x가 토끼는 하얗다는 속성을 가지기 위한 조건인 ∀y(토끼y -> 하얗다y)는 variable x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토끼가 하얗다는 속성‘ 따위는 없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특히 보편자 실재론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은 뭐든 어떤 말로 표현되기만 하면 다 속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어떤 것들만 속성이 된다고 주장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제가 다소 뜬금없이, 어쩌면 이처럼 당연해 보이는 속성에 대한 제약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Kit Fine의 논문 Essence and Modality에 등장하는 사례들 때문입니다.
Fine은 본질적 속성이 필연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이런 반례를 들더라구요.
“소수는 무한히 많다”는 필연적으로 참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소수는 무한히 많다는 속성을 가진다“도 필연적으로 참이다.
그러므로 ’소수는 무한히 많다‘는 속성은 소크라테스의 본질이다.
저는 ’소수는 무한히 많다‘라는게 애초에 속성이 될 수 없기에 이 반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이 양상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건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 반례가 적절하지 않아 보이는 거죠.)
이 논문이 굉장히 널리 받아들여지고 인용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어쩌면 ’소수는 무한히 많다는 속성‘ 따위의 속성들 역시 철학자들에게 속성이 맞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굉장히 의문스럽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제시한 아주 기초적인 속성에 대한 제약이라도 이미 속성에 대한 논의에 존재한다면, Fine의 반례는 단순히 명제를 속성으로 착각한 범주 오류에 불과할텐데요...
제가 얕게나마 조사해본 바로는 속성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러한 제약들은 찾기 어려웠는데요. 이처럼 반직관적인 속성들을 배제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미 존재한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없다면, 최소한 “어떤 조건이 x의 속성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최소한 그 조건은 variable x를 포함해야 한다”라는 제약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