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어 문제에서의 오류?

Most philosophers accepted Plato’s definition of knowledge as justified true belief until the 1960s, when Edmund Gettier showed that it didn’t always provide a satisfactory explanation.
He came up with several instances where we instinctively realize that someone doesn’t really know something, even though that person’s belief is both true and justified. For example, I have arranged to meet my friend Sue at her house, and when I arrive I see her through the window sitting in the kitchen. In fact, it is not Sue that I see, but her identical twin sister — Sue is actually in another room. My belief that Sue is home is true, and I have good reason to believe it because I am sure I have seen her, but it is wrong to say that I knew she was at home — I didn’t know. Examples such as this became known as “Gettier problems,” and have prompted philosophers to ask if, in addition to belief, truth, and justification, there is a fourth criterion for knowledge. Gettier had cast doubt not only on Plato’s definition, but also on whether or not it is possible to define completely what knowledge is.

(고등)학교에서 내신 영어 지문을 공부하며 정당화된 참된 믿음과 게티어 문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아 질문 올립니다. 위 글에서 sue 쌍둥이 예시를 들면서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 지식이 안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sue가 집에 있다'는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 아니라 잘못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기에 지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1. 정당화된 참된 믿음에서 정당화는 어떻게 될 수 있나요?
질문2. sue 쌍둥이 예시에서 'sue가 집에 있다'라는 화자의 믿음이 'sue가 집에 있는 것을 봄'이라는 거짓된 지식으로부터 형성이 된 것인데 이게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나요? (‘sue가 집에 있는 것을 봄'이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질문3. 잘못 정당화된 참된 믿음은 당연히 지식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게티어가 잘못 정당화된 참된 믿음을 정당화된 참된 믿음으로 보아 생긴 문제 아닌가요?
질문4. 여러분은 지식이란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게티어 문제에 대해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해결하고 싶습니다!

1개의 좋아요

놓쳤다기보다는 epoche님이 제시하신 입장이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당화'는 철학에서 여러 가지로 논란과 논쟁이 많은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믿음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혹은 어떤 믿음을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 믿음이 정당화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저 지문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그것을 믿을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I have good reason to believe it)"라는 것이 "그것은 정당화되었다."라는 말과 거의 동치라고 할 수 있죠.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주목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 정당화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epoche님처럼 위의 사례가 제대로 정당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a) 거짓으로부터는 정당화가 되지 않는다는 '거짓 접근 방식'이나, (b) 믿음을 상쇄하는 다른 요인들이 없어야 정당화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무상쇄자 접근 방식'이 이 입장을 취하죠.

또 다른 입장에서는 애초에 '정당화' 자체를 지식의 조건에서 제거하려고 합니다. (c) 참을 만드는 사실로부터의 인과적 연결에 의해 획득된 믿음이라면 별도의 정당화 없이 지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과적 접근 방식'이나, (d) 참을 생산하는 성향이나 기계 등으로부터 획득된 믿음은 정당화가 불필요하다는 '신빙성 있는 지표 접근 방식'이라는 것이 이런 입장이죠.

말하자면, epoche님의 입장은 게티어 문제에 대한 '거짓 접근 방식'에 가깝습니다. 마침 인터넷을 뒤져 보니 이 입장을 만화로 정리한 포스트가 있네요!

7개의 좋아요

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정당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당화 조건에 참이 들어가야한다고 하죠. 이 경우에는 지식의 필요조건이 참과 정당화가 아닌 정당화 하나만 있어도 되겠지요. 반대로 한 믿음 p가 정당화되려면 꼭 p가 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 경우에는 p가 정당화되지만 거짓일 수가 있겠지요. 게티어 논문은 두번째 경우의 수에 반박을 하는 걸로 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