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니체가 자신 글이 오해되도록 글을 씁니다. 예를 들어, 아래 인용문만 보면 니체는 감각주의를 비판하고 플라톤적 사유방식을 높이 평가하는 인물입니다.
"실로 물리학은 영원히 통속적인 것일 수 밖에 없는 감각주의가 내세우는 진리 규준에 본능적으로 따르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무엇이 명료한 것이고 무엇이 '설명되는' 것인가? 그것은 보고 만질 수 있는 범위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문제를 이 정도까지만 탐구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고귀한 사유방식이었던 플라톤적 사유방식이 갖는 매력은 바로 명백한 감각적 증거에 저항하는 데에 있었다(BGE 15)"
그런데 그 뒤에 가서는 "감각에 대한 지배는 플라톤이 천민적인 감각이라고 불렀던 다채로운 감각의 소용돌이 위에 창백하고 차가운 회색의 개념망을 던지는 것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라면서 플라톤주의를 비판하고(BGE 15), "감각주의는 발견의 원리라고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규제적인 가설이라고 할 수는 있다"라면서 감각주의를 높이 삽니다(BGE 16).
이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가 '감각주의'라는 동일한 표현으로 지시하고자 하는 대상이 버클리와 칸트라는 점, 니체가 비판하는 감각주의는 버클리이고 높이사는 감각주의는 칸트라는 점을 앞뒤 문장을 읽고 포착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감각기관이 관념론적 철학이 의미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그러한 현상으로서는 감각기관 자체는 어떠한 원인도 될 수 없을 것이다(BGE 15)."
여기서 또 이어지는 문제가 한 철학을 도식적으로 이해할 때 발생하는 문제인데, '니체가 칸트를 비판했다' 정도로 니체를 도식적으로 그리고 나이브하게 이해 및 전제하는 한, 니체가 칸트를 높이 샀다는 점을 쉽게 무시해버립니다.
니체가 철학자인 한 그의 저술도 여느 철학자의 저술 작업처럼 한 단어 한 문장 꼼꼼히 독해되어야 하는데, 그 문체의 특성과 형식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니체는 이미 이러한 사태를 예견한듯이, 니체는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우리"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은근히 돌려서 비판합니다. (물론 이 "우리"라는 표현은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을 칭할 때도 쓰입니다)
결국, 니체가 곡해되어 meme화된 이유 중 하나는, 니체가 말하는 '우리 아닌 자들'이 니체를 읽고 니체의 의도가 아닌 말을 니체가 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