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에서 선형대수학 과제로 참 특이한 주제를 교수님이 주셨습니다. 수학에서 증명이 필수 불가결이란 것을 알지만 한 번도 "왜 증명을 공부해야하는가"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과제를 제출해야 할지 모르곘습니다. 저는 수학적 증명이 너무 자명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며칠을 고민해도 잘 모르겠더군요. 해서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은 철학/수학에서 왜 증명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뻔한 답 같지만 논리의 명약관화가 목적 아닐까요. 증명은 자명해보이지만 결국 그 증명이 자명하다는 걸 납득 시키기 위해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적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증명 과정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두고 논하는게 학문의 발전에 양분이 될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수학은 잘 모르지만,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조금 읽어본적 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의 저작들과 다르게 <에티카>는 스피노자가 수학에서 모티프를 따와 자명한 공리와 정의들을 전제하고 자신의 주장이 공리와 정의에서 뒤따라 나옴을 '증명'해 나갑니다. 하지만 몇몇 증명은 그것이 과연 올바른 증명인지 후학들 사이에서도 해석의 차이가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해석의 차이를 두고 서로 논박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학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겠죠.
- 어떤 정리의 증명을 잘 이해하면 그것을 다른 정리를 증명하는 데 응용할 수 있습니다.
- 정말 드문 일이지만, 증명을 공부하는 누군가가 그 증명에 있는 오류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 증명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수학적 대상입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진술만 이해하는 사람을 그 증명까지 '전부' 이해하는 사람과 비교할 때, 뒤의 사람이 수학 지식을 훨씬 더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수학에만 국한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모든 논의를 원자 단위로 쪼개고 다시 합쳐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의 토대가 증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공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연결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멀리 떨어진 추상적인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게 되는 과정 자체가, 증명을 통한 원자 단위 개념들의 연결을 통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아주 미시적인 개념들을 촘촘히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연결하는 과정이 증명이고, 그렇기에 증명을 이해함으로써 수학이라는 한 체계 안에서 여러 개념들이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학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증명을 공부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리는 이미 증명되었고 전문 수학자들에 의해서 잘 검증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사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제와 결론만 잘 이해한다면 증명없이 정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가능합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공학 수업에서 증명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수학 수업보다는 증명을 하라는 문제가 더 적은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증명을 공부하면 몇몇 교육적 효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증명은 필연적으로 그 하부 정리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에 배웠던 정리들을 복습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연습이 됩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응용할 때에도, 그 정리를 사용하는 게 어려울 듯합니다.
공학적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공학에서 널리 통용되는 케이스 테스팅은 실제 문제를 감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인 방법론입니다.
수학에서 통용되는 논증 방식은 (증명자 혹은 검증자의 휴먼 에러가 없다면) truth임을 보장하지만, 반대로 truth라고 해서 꼭 간단히 증명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비관적인 방법론입니다.
골드바흐의 추측 같은건 슈퍼컴퓨터 동원해서 이미 어지간한 스케일에서 다 테스트는 되었어요.
하지만 그게 truth인지는 모르죠...
앎의 추구를 낙관적으로 하건 비관적으로 하건 그건 자기 성향이고 거기에 어떤 좋고 나쁨은 없어요.
수학은 자명한 공리에서 시작하여 엄청난 구조물을 쌓았습니다. 구조물의 자재는 바로 증명입니다. 공리가 5개 정도 있다면 증명된 정리는 수천개가 넘습니다. 정리는 변화지 않는 진리이며 결코 자명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증명이 되지 않는 가설들이 많습니다. 증명이 되지 않은 가설은 현대 과학에 사용될 수 없습니다. 수학의 증명은 엄밀성을 요하기 때문에 증명을 하다가 미쳐 버리는 수학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