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전에 그분에게 존경한다는 말씀을 개인 메시지로 드렸는데, 다행히 제가 그분에게 보낼 메시지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겠네요. 설마 뭔 일이 또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죠.
저는 증명 보조기를 이용해 형식 과학과 자연 과학을 학습하기 위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증명 보조기를 이용하는 한국인의 공동체를 이루는 데 이바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다시 시도하고 그의 두 번째 친위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저와 다른 분들의 노력이 허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계속 국회의사당 앞에 가서 집회에 참여하겠습니다.
어젯밤의 집회에서는 선호 외계인 보호협회[Good Alien Protection Society]와 푸른 광선검을 봤습니다.
저 역시 스스로가 외계인이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시민으로서 광장에 나가는데 동의합니다.
철학에서도 20세기 이후 계속 다뤄오던 사회철학에 대해 미국이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않는 이유는 바로 미국내의 정치사회적 보수성과 관련이 깊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가령 니체를 철학자로 간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가로 간주하고 , 쇼펜하우어의 경우에는 칸트에 비해 이류 철학자로 보고 있는데, 이럼에도 비록 그들이 분석철학자들은 아니지만, 니체를 연구하는 철학자들이 있고, 이들은 미국적 풍토 속에서 나름대로 대륙철학을 연구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철학이 미국 철학의 주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럼 여전히 뉴스쿨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이 주류가 아닌 것은 미국의 정치, 사회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겠지만, 그럼에도 촘스키 같은 경우는 철학자 이상의 지식인으로서 그 이상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영미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작업을 학술적인 것에 한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철학, 정치철학에 무관할 것처럼 보이는 논리 실증주의자들도 사실 거의 좌파입니다.
아마 이들은 사회, 정치적 문제와 철학적, 학문적 문제를 날카롭게 구분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로티의 주장으로 알고있지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라. 지식인의 문제는 기껏해야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주장하는 사회, 정치적 주장들이 우연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