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꽤나 저명한 하이데거 학자와 소통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 "Mental Activity"라고 하는 것이 꽤나 인상깊더군요. 그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매주 컨퍼런스를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그 컨퍼런스가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이든, 아니든, 일단 참석을 한다고 하죠. 그 후에 컨퍼런스의 발표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발표의 논증을 불렛 포인트들로 다 정리를 한다고 합니다. 발표를 들은 후에 그 논증을 다시 머릿속으로 다시 정렬을 해보면서 그 발표를 똑같은 논증의 구조로 다시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시면서 저희에게도 컨퍼런스 발표를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똑같은 방법을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하게 되면 수많은 논증 구조들을 익히게 되고, 그 논증 구조들을 자신의 글에 적용하면 글이 좋아진다고 하면서요.
전 사실 이 조언을 듣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는데요. 사실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 발표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특히 제가 관심있는 철학자/주제에 대한 발표를 하더라도, 웬만하면 잘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이걸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논증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다시 복제해낼 수 있어야한다는 게 꽤나 높은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교수님께서도 수많은 반복 후에 익히신 기술이겠지만, 괜히 벽이 느껴지는 조언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유투브에 헤겔 발표는 많으니, 비교적 익숙한 발표들로 기술을 조금씩 익혀나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이렇게 하면 몇 년이 걸릴진 모르겠지만, 배우는 게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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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야 좋겠습니다만, 사실 학계 초년생에 가까울수록 이러한 조언을 실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조언을 실천할 수 있다면야 굳이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이런 조언이 버거운 분께서는 다음과 같은 좀더 실천적인 지침을 따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1. 학술 발표 하나에서 최소한 "하나만" 건지기
저년차일 수록 학술 발표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고, 그런 심적인 피로는 육체적인 피로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년차 학생이 숙련된 연구자를 따라가는 것은 오히려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꼴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도 봅니다.
오히려 실천가능한건 "내가 다른건 못알아들어도 그냥 포인트 딱 하나만 얻어가자!"인 것 같습니다. 사실 교훈 내지는 아이디어를 하나만 얻어가도 매우 남는 장사죠! 더욱이 이렇게 목표를 현실적으로 잡으면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2. 학술 대회에 참가하면 최소 한번은 질문하기
학술 발표 질의응답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용기를 쥐어짜내 질문을 하는데 막 염소목소리가 나고, 연사가 내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와서 이불킥을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결국 철학 학술 발표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질의응답이고, 결국 업계에 있으면 질의응답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훈련의 대표적 방식은 여러 학술 발표로 이루어진 학술 대회에 참가할 때, 그 중 한놈만 잡아서 최선의 질문을 딱 한번은 던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학술발표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듣는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고, 곧 학술대회에 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게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이라도 성공해서 자신감이 붙으면, 더 자신감에 힘입어 이후 학술대회에선 더욱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게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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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부 특성상 철학 외 주제를 다루는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발표자와 평가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바깥에 있는 참여자로서 <중요한 것>을 얻어갈 수 있는 방법; 요령 같은 게 있을 수 있을까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제는, 발표를 들는 동시에 발화가 지니는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말씀대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마도 청해는 텍스트 독해와 달리 불완전한 기억과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 나머지 쉽게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이런 어려움 때문인지 @wildbunny 님의 주장처럼 일단 초보자인 저로서는 <하나 건져가기> 전략도 좋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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