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거나 감탄하시면서 읽으신 책들 있다면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철학 관련해서 관심을 가진지는 얼마 되지않아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어도
철학관련 서적들은 읽을 때마다 엄청 감탄했었던 거 같습니다.

구토, 이방인, 철학의 저편 셋 다 너무 흥미롭고 감탄하면서 봤었는데 관련해서 추천해주실만한 책들이나 혹은 개인적인 경험에서라도 추천해주고싶은 책들이 있다면 이름만이라도 말씀해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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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아서 추천하기가 어려운데, 한 가지만 들자면 키에르케고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언급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어의 초기 작품이에요. 주로 심미적 삶과 윤리적 삶 사이의 대비가 등장하죠.

이 작품은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제1부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익명의 인물 A의 입을 빌려 심미가의 입장으로 심미적 삶의 즐거움을 찬양하면서, 그 삶이 지닐 수 있는 쾌락의 극단을 보여주고자 해요. 그런데 키에르케고어가 보여주는 심미가는 단순한 색욕가나 술주정뱅이가 아니에요. 키에르케고어의 심미가는 삶의 쾌락을 가장 풍부하고 완전하게 평가하며 누릴 수 있는, 고도의 지성을 지닌 인물이거든요. 그렇지만 그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비평하고, 연인 간의 사랑이 지닌 열렬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삶이 지닌 권태로움과 절망감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죠.

반면 제2부는 앞서 나온 심미가를 비판하는 인물인 B(빌헬름 판사)의 편지로 이루어져요. 판사는 윤리가의 입장에서, 윤리적 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지는 매일의 일상과 싸워나가는 과정임을 주장해요. 이 삶은 결코 심미가의 생각처럼 단조롭고 겉치례만 있는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게 판사의 강조점이에요. 오히려 판사는 윤리적 삶이 굉장한 노력과 열정으로 가득차 있을 뿐더러, 심미가가 추구하는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도 훨씬 심오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특별히, 심미가와 윤리가 사이의 대결은 주로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져요. 키에르케고어는 이 주제를 놀라울 정도로 깊이 있게 다루죠. "결혼이란 단지 사회적 제도일 뿐 연인의 열렬한 사랑을 방해하는 겉치레인가?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랑은 단지 한 순간의 감정에 불과할까?" 같은 주제들 말이에요.

키에르케고어는 이 책에서 심미가와 윤리가 사이에 어느 쪽의 편을 들거나 인생에 대한 답을 내려주지 않은 채 우리에게 '이것이냐, 저것이냐' 사이에서 실존적으로 선택할 것을 요청해요. 하지만 가정을 지키고 결혼한 아내에게 충실하기 위해 힘겨운 삶 가운데서도 애쓰는 가장의 모습이, 온갖 예술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면서도 권태에 빠지는 심미가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대단히 인상적으로 보여주죠.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이 책에서 배운 사랑 개념 덕분에 대학교 2학년 시절부터 한 사람과 12년을 연애하였고, 지금은 결혼까지 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철학이 일종의 '실용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저에게 증명해준 작품이라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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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언어의 성사》를 참 인상깊게 읽었는데 간만에 다시 읽어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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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쓰신 논문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신경써서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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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관련된 내용 조금 찾아봤는데 말씀하신대로 흥미로워보입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가 참 읽기 편한 것 같아요. 기하학적 방법론을 사용해서 전개를 해나가는데, 보면 되게 수학책 같거든요. 그래서 말 그대로 정석 예제 풀 듯이 하나하나 읽어나가면 돼요. 물론 쉬울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철학책을 접근하는 방법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접근하기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그와 별개로 스피노자가 굉장히 특이한 주장들을 많이 해서, 내용도 재밌을 것 같네요. 특히 현대 형이상학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는 결정주의, 실체 일원론 (substance monism), 평행주의 등이 있습니다. 만일 읽으시게 되면, 데카르트 Principles I (한국어로는 법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락 54-56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데카르트가 거기서 쓰는 용어들을 스피노자가 그대로 가져다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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