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텀페이퍼 쓰느라 모호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흔히 말하는 언어적 모호성이라는 게 조금 거슬렸습니다. 언어적 모호성이라는 건 모호성의 근원을 개념으로부터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머리의 모호성은 대머리라는 개념에서 오는 것, 즉 우리가 대머리라는 개념을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모호성입니다. 이런 언어적 모호성의 개념을 보면서 저는 불편해하고 반대를 하고 싶었는데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메릭스는 "Varities of Vagueness"에서 1장에 모호성 종류들 소개한 후에 2장에 바로 언어적 모호성 반박을 너무나도 깔끔하고 단순하게 꽂아버리네요. 보면서 5분동안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knock-down argument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수준의 주장인데, 너무 쉽게 해버려서 더욱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재밌네요.
그런데 한 가지 꼬투리를 잡자면 (1)의 주어는 "'Bald'"이니 엄밀히 말하면 대머리의 개념에 관해 말하는 게 아니라 'Bald'라는 글자에 관한 문장입니다. 아주 까탈스럽게 굴자면 (1)은 약간 이상한 문장입니다. describe의 주체가 글자라는 말이 되니까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언어적 모호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 반론을 좋은 반론이라고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한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문장이 "하나의 명제를 표현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언어적 모호성을 지지하는 쪽에서 보기에는 부당한 가정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모호성이 근본적으로 개념의 모호성이라면 모호하게 대머리인 해리를 대머리라고 말하는 description 자체가 determinate한 명제를 표현하는데 실패한다고 주장할 것 같거든요. 명제가 결정되지 않았으니 진릿값도 당연히 부여될 수 없는 것이구요.
(1)
앞장에 나온 설명이 대신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포스팅에서 보실 수 있듯이, "'Bald' describes Harry"가 singular proposition을 표현한다는 가정 하에 진행된 주장입니다:
Grant, for the sake of argument and temporarliy, that (1) expresses a single proposition. (I discuss supervaluations below.) (my emphasis)
(1) 이 single propsoition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주장 (맥락상 supervaluations) 은 이 발췌에서 다뤄지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라는 게 정확히 뭔진 모르겠습니다. determinate한 명제 말 그대로를 말씀하신 거라면, 당연하게도 "'Bald' describtes Harry" 는 determinate한 명제입니다.
개념 자체의 모호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Bald' describes Harry" 는 determinate한 명제입니다.
이 말에 동의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명제를 개념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모호한 개념이 명확한 명제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개념적 모호성을 주장하는 쪽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개념적 능력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개념 자체가 언제나 뚜렷한 적용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호한 영역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쓰고보니 이게 메릭스가 의도한 "언어적 모호성" 견해의 입장에서 반론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군요 ㅎㅎ;
이 견해가 메릭스가 반박하고자 하는 입장입니다. 근데 명제를 저렇게 쓰게 되면, 결국 determinate하거나 vague한 진릿값을 부여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형이상학적 모호성이나 인식론적 모호성의 restatement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가 메릭스의 주장이지요. 이 포스팅에 메릭스가 언어론적 모호성을 설명하는 부분도 발췌했으면 더 전달이 잘 됐을 것 같네요.
아무튼 언어론적 모호성에게 자비의 법칙을 부여한다면, 결국 명제의 진릿값 부여 자체를 거부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determinate/vague 한 진릿값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죠. 근데 그래도 결국 명제의 진릿값 부여를 거부한다는 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명제 자체가 의미없는 명제라고 하기에는, 해리가 풍성하다면 저 명제는 거짓이고, 해리가 빼박 대머리라면 저 명제가 참이겠지요. 그리고 언어론적 모호성 옹호론자들은 해리의 모발양이 애매할 때만 저 명제의 의미가 없어져야한다는 해야되는데... 그렇다면 명제의 의미 여부가 세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론적 모호성 옹호론자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