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원 의미론에 대한 노트

후배 중에 이번 학기에 양상 인식론 관련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차원 의미론이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얘기를 들어서 도움을 줄 게 없을까 하다가 일전에 쓰다 만 메모를 좀 개정해서 파일로 만들어 봤습니다.
써 놓고보니 크게 도움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러나 저러나 이해하기 까다롭기도 하고 저도 관련 전공자는 아니라서 핵심을 찌르는 이해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혹시나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찾아가시고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블로그 페이지에 PDF 파일도 있습니다: 너구리 곳간 : 네이버 블로그)


0. 동기

  • 이차원 의미론(Two Dimensional Semantics; 2D Semantics)은 가능세계 의미론을 확장한 버전의 의미론 중 하나로, 궁극적으로는 한 진술의 진릿값이 세계가 어떠한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에도 의존한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 우선 “홍길동은 한국인이다”라는 진술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진술이 참이 되는 가능세계, 즉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한국사람인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 예를 들어 홍길동이 미국인인 세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자를 W1, 후자를 W2라고 하면 우리는 위 진술에 대한 진리표를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습니다.

    W1 W2
    T F
  • 이 진리표는 (가능세계 의미론에 따른) “홍길동은 한국인이다”의 명제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한 가지가 가정되어 있습니다. “홍길동은 한국인이다”라는 진술의 명제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이차원 의미론은 “홍길동은 한국인이다”와 같은 개별 진술이 무엇을 표현하는지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둡니다. 아래에서는 좀 더 확실한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1. 지표사의 의미론

  • “나는 한국인이다”와 같은 진술은 ‘나’라는 맥락의존적 지시표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누가 이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해당 진술이 표현하는 명제가 달라진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 이제 다음과 같은 가능세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각 가능세계는 홍길동, 제이슨, 파트리샤라는 세 사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W1에서는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진술을 홍길동이 했고, 홍길동은 한국 사람, 제이슨은 미국 사람, 파트리샤는 독일 사람입니다.
    • W2에서는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진술을 제이슨이 했고, 제이슨은 독일 사람, 홍길동과 파트리샤는 미국 사람입니다.
    • W3에서는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진술을 파트리샤가 했고, 홍길동과 제이슨, 파트리샤는 모두 한국 사람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진술의 진릿값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보기 위해서 이 진술이 어떤 상황에서 제시된 것인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W1 W2 W3
    W1 (1) (2) (3)
    W2 (4) (5) (6)
    W3 (7) (8) (9)
  • 이 그림에서 세로줄의 가능세계들은 이 문장이 누구에 의해서 발화되었는지를 결정합니다. 가로줄은 그런 상황에서 발화된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 평가하는 가능세계입니다. 똑같이 Wn으로 썼지만, 세로줄에서는 Wn에서 누가 발화했는지만을, 가로줄에서는 발화된 진술의 명제와 관련된 사실들만을 고려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1)에 들어가는 진릿값은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진술을 홍길동이 했을 때(W1), 홍길동이 한국 사람, 제이슨이 미국 사람, 파트리샤가 독일 사람인 가능세계(W1)에서의 진술의 진릿값이 됩니다. 그러면 (1)에 들어가는 진릿값은 T가 되겠죠. 같은 방식으로 표를 채워보겠습니다.

    W1 W2 W3
    W1 (1) T (2) F (3) T
    W2 (4) F (5) F (6) T
    W3 (7) F (8) F (9) T
  • 이로써 우리는 ‘나’라는 지표사를 포함하는 진술이 표현하는 명제를 조금 복잡하지만 가능세계 의미론을 확장함으로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때, 이 표 자체를 2차원 내포(2D-intension)라고 하고, 표의 가로줄을 제 2 내포, (1)-(5)-(9)의 대각선 줄을 제 1 내포라고 합니다.

    제 2 내포는 각 Wn이 현실세계라고 가정했을 때, 즉 해당 진술이 표현하는 바가 결정되었을 때 각 가능세계에서 어떤 진릿값을 갖는지를 보여주고,

    제 1 내포는 각각의 진술이 사용되는 맥락에서 그 진술의 진릿값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보여줍니다.

2. 철학적 해석

  • 이차원 의미론을 통해 철학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고, 제가 그걸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이차원 의미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후험적이고 필연적인 참과 선험적이고 우연적인 참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차원 의미론이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데이빗 차머스(David Chalmers)나 프랭크 잭슨(Frank Jackson) 같은 철학자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철학 방법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차머스와 잭슨의 해석은 인식론적 해석(epistemic interpretation)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후험 필연적인 문장으로 알려진 “샛별=개밥바라기별”을 가지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2.1 후험적-필연적 명제: “샛별=개밥바라기별”

  • 우선 가능세계를 다음과 같이 세팅해보겠습니다.

    • W1에서는 사람들이 ‘샛별’이라고 부르는 별과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부르는 별이 모두 금성입니다.
    • W2에서는 사람들이 ‘샛별’이라고 부르는 별은 금성이지만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부르는 별은 화성입니다.
    • W3에서는 사람들이 ‘샛별’이라고 부르는 별은 화성이고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부르는 별은 금성입니다.
    • W4에서는 사람들이 ‘샛별’이라고 부르는 별과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부르는 별이 모두 화성입니다.
  • 아까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16개 칸을 가진 표를 그릴 수 있습니다.

    W1 W2 W3 W4
    W1 (1) (2) (3) (4)
    W2 (5) (6) (7) (8)
    W3 (9) (10) (11) (12)
    W4 (13) (14) (15) (16)
  • 인식적 해석에 따르면 세로줄의 가능세계들은 현실(actual)세계라고 생각될 수 있는 가능세계들, 즉 우리의 인식적 가능성들(epistemic possibilities)입니다. 가로줄의 가능세계들은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한 세계들(metaphysically possible worlds)을 나타냅니다.

    • 좀 더 부연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가능세계를 떠올릴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로 간주할 수도 있고 그저 있을 수 있는 가능세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평평한 가능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가능세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단지 그럴 수도 있는 가능세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인류는 지구가 평평한 가능세계를 현실 세계로 생각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인류 역시 지구가 둥근 가능세계를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 이런 점을 미뤄볼 때, (5) (6) )(7) (8)은 각각 W2가 현실세계로 간주할 때 주어진 진술이 표현하는 바가 가능세계 W1, W2, W3, W4에서 갖는 진릿값이 채워질 것입니다.
  • 그렇다면 각각의 칸에 채워지는 진릿값은 샛별과 개밥바라기별이 같은 별인 세계를 현실세계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샛별=개밥바라기별”이 표현하는 명제가 각 가능세계에서 가지는 진릿값이 될 겁니다. 그런데, 가령 (1)의 상황에서 “샛별=개밥바라기별”은 두 대상이 동일하다는 동일성 진술이므로 참이라면 필연적 참일 것입니다.

    W1 W2 W3 W4
    W1 (1) T (2) T (3) T (4) T

    마찬가지로 다른 줄에서도 “샛별=개밥바라기별”은 동일성 진술이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참이거나 필연적으로 거짓입니다. W2와 W3에서는 자기들이 사는 세계가 두 별이 다른 별이라고 생각하는 세계일 테니, 이 진술은 거짓, 그것도 필연적으로 거짓일 겁니다. 이런 식으로 채워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W1 W2 W3 W4
    W1 (1) T (2) T (3) T (4) T
    W2 (5) F (6) F (7) F (8) F
    W3 (9) F (10) F (11) F (12) F
    W4 (13) T (14) T (15) T (16) T
  • 인식적 해석에 따르면 어떤 명제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필연적인 제 2 내포를 갖는다는 것이고 어떤 명제가 선험적이라는 것은 필연적인 제 1 내포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샛별=개밥바라기별”은 후험적이고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말하자면 우리는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의 현실세계가 어떤 가능세계인지를 밝힌 것이고 그것과 무관하게 “샛별=개밥바라기별”은 필연적 (참 혹은 거짓) 명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2 선험적-우연적 명제: “미터 원기 S의 길이=1m”

  • 이번에는 “샛별=개밥바라기별”과 함께 제시된 크립키의 유명한 사례인 “미터 원기 S의 길이=1m”라는 진술을 살펴보겠습니다.

  • 가능세계는 미터 원기의 길이가 조금씩 다른 경우를 상정하겠습니다. 즉, W1에서는 S가 미터 원기, W2에서는 그보다 긴 막대가 미터 원기, W3에서는 그보다 작은 미터 원기인 경우로 가정하겠습니다. (모두 각자의 세계에서 미터 원기는 ‘S’라고 부릅니다)

    W1 W2 W3
    W1 (1) (2) (3)
    W2 (4) (5) (6)
    W3 (7) (8) (9)
  • 인식적 해석에 따르면 각각의 칸에 채워지는 진릿값은, S가 미터 원기인 세계를 현실 세계라고 간주하는 상황에서 “S의 길이=1m”가 표현하는 명제가 각 가능세계에서 갖는 진릿값이 될 겁니다.

    • 그럼 (1)에는 T가 들어갈 테지요.

    • (2)는 어떨까요? W1이 우리의 인식적 상황이라면, 1m라는 길이는 W1의 S의 길이로 고정된 값입니다. 그런데 W2에서 S는 그것보다 긴 막대이지요. 따라서 W2에서 “S의 길이=1m”는 거짓인 진술입니다. W3도 마찬가지이죠.

    • (4)의 경우 W2가 우리의 인식적 상황이고, 따라서 1m라는 길이는 W2의 S의 길이로 고정된 값입니다. 그렇다면 W1의 S는 그것보다 짧은 막대일 것이고 따라서 거짓값이 들어가야 합니다. (5)는 다시 T가 되죠. 이런 식으로 채워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W1 W2 W3
      W1 (1) T (2) F (3) F
      W2 (4) F (5) T (6) F
      W3 (7) F (8) F (9) T
  • 인식적 해석에 따르면 이 명제의 제 2 내포는 우연적이고 제 1 내포는 필연적이므로 선험적이고 우연적인 명제입니다.

    • 표를 보면 선험성은 내가 어떤 가능세계를 현실로 간주하건 그 세계에서는 참이 되는 속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만일 인식적 해석을 따르게 되면 인식적으로 가능한 세계와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한 세계가 일치하게 되는데 이것은 선험적인 철학적 분석을 통해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할 수 있다는 거대한 주장의 한 동기가 된다고 합니다. (이게 근거를 구성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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