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왕 가다머 이야기

잡념 카테고리에 맞는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에 독일 부퍼탈 대학교에서 열린 가다머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가다머가 생전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주요 논문들은 대부분 10권짜리 가다머 전집에 수록되어 있지만, 다른 학자들과 사적으로 주고받은 서신들이 상당히 많아서 이것을 현재 아카이빙하는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고 하네요. 수집된 서신의 일부나마 digital edition으로 조회가 가능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해당 사이트 주소를 첨부합니다.

https://www.dla-marbach.de/forschung/editionen-und-digital-humanities/digitale-edition-der-korrespondenz-hans-georg-gadamers/

이 날 발표중에 Roman Yos 박사가 소개한 가다머와 게르하르트 크뤼거(Gerhard Krüger)의 서신교환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워서 일부 번역해서 공유합니다.

  • 확인된 바로는 가다머는 크뤼거에게 73통의 편지를, 크뤼거는 가다머에게 56통의 편지를 보냈다.
  • 이 두 사람이 서신을 주고받은 기간은 1924년부터 무려 1970년까지이다. 참고로 크뤼거는 가다머보다 2년 늦은 1902년에 태어났지만, 가다머보다 먼저 1972년에 세상을 떠난다.
  • 일부 서신은 실제로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 1930년대와 40년대에 가장 서신 왕래가 활발했다.
  • 종종 서로의 배우자가 편지나 엽서를 첨부해서 같이 보내기도 했다.
  • 처음 편지를 주고받은게 1924년이었지만, 이들은 서로 존칭(Sie)을 썼고, 10년째 서신을 주고받고 나서야 서로 비존칭(du)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국과 다르긴 합니다만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 말을 놓기까지 10년이 걸린건데 그것도 저는 뭔가 재미있는 포인트였고, 저렇게나 오랜 기간, 성인이 되고 나서 거의 평생을 지적 교류를 하는 우정이라는게 잘 실감이 되지 않네요. 크뤼거의 철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지만, 가다머에 대해 날선 대립을 보인 데리다나 가다머의 해석학을 충실히 계승한 그롱댕도 가다머와 꽤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추후에 아카이빙이 어느 정도 되고나면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생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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