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매리언 영, 『포용과 민주주의』 - 1장

1장. 민주주의와 정의(27-82)

1절. 두 가지 민주주의 모델

■선호 집합 모델

-정의: 민주주의란 공무 담임자 및 공공정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시민들의 선호를 합하는 과정이다. 즉, 민주적 의사결정의 목표는 어떤 리더, 법규칙, 정책이 가장 폭넓고 강하게 선호되는지 경정하는 것이다.

-문제점:

(1) 내용, 유래 또는 동기에 의해 선호의 질을 구분할 척도가 없다. 이에 더해, 선호를 정치 과정 밖에서 그저 주어진 것으로 여기기에, 선호가 타인과의 상호작용 혹은 정치 참여로 인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한다.

(2) 정치적 조정과 정치적 협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없다. 민주주의란 단지 선호를 확인하고 합하는 메커니즘이므로, 시민들은 타인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자신 선호를 바꿀 이유가 없다.

(3) 단지 선호를 합하는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기에, 선호 집합의 결과는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 추론 과정을 거치는 것도 아니다.

(4) 규범적이고 가치 평가적인 객관성을 논하지 않기에, 의사 결정의 핵심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논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옳기에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방도가 없다.

■심의 모델

-정의: 민주주의란 참여자들이 어떻게 최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혹은 최선으로 정당한 필요를 충족할 것인지 등에 관한 방안을 제안하며, 자신의 제안을 타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논리 주장을 펼치는 과정이다. 의사 결정 과정은 어떤 선호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지가 아니라 어떤 제안이 최선의 이유로 지지되는가에 따라 도달한다.

-요구하는 규범적 이상:

(1) 포용: 민주적 의사 결정은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모두가 토론과 의사결정과정에 포용되는 경우에만 규범적으로 정통성을 갖는다.

→도덕적 존중이 요구됨.

(2) 정치적 평등: 의사 결정에 영향받는 모든 사람들은 의사 결정에 명목상 포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조건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모두는 자신의 이익과 근심을 표출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와 유효한 기회 및 서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그리고 서로의 제안과 논리주장에 대해 응답하고 비판할 수 있는 평등하고 유효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지배로부터의 자유가 요구됨.

(3) 합당함: 사람들은 의견일치(합의; agreement)를 지향하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론에 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왜 그들의 생각이 맞지 않은지를 혹은 부적절한지를 설명하려는 타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견 속에 통찰이 있고, 의사 결정과 의견일치는 원칙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열린 자세가 요구됨.

(4) 공공성: 공동의 문제를 다루는 공중은 각기 다른 개인과 집단의 경험, 역사, 의지, 이상 이익 등을 가진다. 따라서 토론참여자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배경의 경험, 이익 혹은 제안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요구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근거를 보여줘야 한다.

→소명이 요구됨.

-모델의 타당성

(1)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목적인 독재자의 횡포에 대한 보호와 개인 및 집단의 이익 신장 및 보호에 부합한다.

(2) 협력 증진, 집단적 문제 해결, 정의를 진흥하기 등과 같은 목적에도 부합한다.

(3) 포용적 평등이라는 상황에서 자신 선호와 이익을 균형 맞춰 나가기에 더 포괄적인 성격의 사회를 구축하게 된다.

2절. 민주주의와 정의의 이상적 관계

민주적 정치 과정, 특히 심의 모델이 가장 정의로운 결과를 자아낼 수 있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정치적 평등과 지배로부터의 자유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과 필요를 가장 잘 표출할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더해, 심의 민주주의는 타인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상호성도 요구한다. 결국, 본인의 이익이나 선호가 정의와 양립한다는 것을 타인에게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개개인은 본인의 이익이나 선호를 표출하려는 동기를 갖는다. 즉, 이들은 타인의 정당한 이익을 무시하거나 뭉개려 하지 않는다.

둘째, 심의 민주주의의 규범적 요구에 따르는 토론은 모든 사회적 경험을 반영하고 또한 만약 모두가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할 수 있는 토론이다. 이러한 토론에 참가하는 자들은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의 근원에 대한 집합적 설명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며, 또한 이들은 문제에 접근하는 대안적 행위가 야기하는 가능한 결과를 예견하는 사회적인 지식을 발전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집합적인 비판적 지혜는 원칙상 규범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경험적이고 이론적으로 건강한 판단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여한다.

3절. 자기 결정과 자아 발전이라는 이상

사회 정의라는 이상은 자아 발전과 자기 결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듯하다. 이 둘은 정확히 무엇인가?

■자아 발전

-자아 발전과 사회 정의의 관계: 자아 발전, 즉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서는 억압이 없어야 한다. 자아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제도는 다음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1) 모든 사람이 사회가 인정하는 배경에서 만족스럽고 발전성 있는 기량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는 조건 (2) 모든 사람이 타인과 즐기고 소통하며 혹은 타인도 같이 듣게 되는 사회적 삶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관점을 표출할 수 있는 조건

-자아 발전과 분배의 문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황과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단지 소득과 재화를 평등하게 분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타인과 평등한 수준의 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해 더 많은 재화 혹은 다른 종류의 재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분배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권력, 위상, 소통, 제도적 조직화의 문제도 자아 발전이라는 정의를 위해서 다뤄져야 한다.

■자기 결정

-자기 결정과 사회 정의의 관계: 자기 결정, 즉 자신 행위와 행위 조건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결정을 위해서는 사회제도는 다음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1) 타인이나 타 집단은 어떤 사람이 행위하는 조건을 서로 간의 상호성 없이, 직접적이든 혹은 이들 행위에 따른 구조적인 결과에 의하든 결정할 수 없다.

-자기 결정과 제도의 문제: 자기 결정은 타인의 선택과 행위를 제약할 수 있는 차별적 권력을 부여하는 제도적 관계에 의해 영향받는다. 진정으로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는 이러한 지배적인 제도가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제도는 지배적 권력을 제약하고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행위를 규제하고 간섭해야 한다. 이에 더해, 지배를 막기 위해 집합적 규제를 설계하고, 이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절. 부정의한 조건 속의 민주주의 이론

[생략]

5절. 심의 민주주의의 한계들

■논리적 주장 우대: 심의 모델에 따르면 모든 토론자들이 받아들이는 몇몇 가정과 이슈를 프레이밍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적·규범적 틀이 없으면 심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즉, 상호적으로 받아들이는 전제와 틀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전제와 틀에 기반한 논리적 주장이 심의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1) 인간 삶의 이질성과 상호작용의 복잡성을 염두에 두면, 공유된 담론적 틀에 따른 논리 주장은 특정한 필요, 이익, 부정의로 인한 고통의 표출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 (2) 심지어 심의 참가자들 모두가 특정 담론적 틀에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도, 심의 이론이 강조하는 ‘논리정연함’과 ‘감정적이지 않음’은 일부 사람을 배제하는 위험이 있다. 이 두 가지 규범은 문화적으로 특수한 것이다. 그러한 규범을 잘 따르는 사람은 대개 사회적으로 우대받는 사람이다. (3) ‘감정적이지 않음’과 같은 규범적 요구는 이성과 감정이 상반된다는 점을 전제한다. 하지만 감정적 언어는 이성적 언어처럼 합당한 설득과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의견과 경험이 공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하는 수단으로서 포용을 강조하는 토론에 기반한 민주주의는 정통성 있는 정치적 소통의 개념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일체성 우대: 심의 모델은 공동성(혹은 일체성)을 심의의 우선 조건으로 상정하거나 추구해야 할 목표로 이해한다.

이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1)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때 우리가 호소할 수 있는 어떤 이해가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원화됐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원주의 환경 아래에서 자칭 공유된 이해에 대한 호소는 전적으로 공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호소는 일부 사람들 혹은 집단을 배제하거나 주변화할 수 있다. 공동성 에 대한 이 같은 전제는 밀폐된(enclosed) 정치적 공중을 구성한다. 즉, 이 전제는 외부인들을 우리와 구별하기만 한다면, 우리 서로는 협력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2)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목표로 상정하는 것은 흔히 배제의 수단으로 복무한다. 게다가 어떤 공동선을 추구해야할 목표로 상정하면, 심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아젠다가 협소해지고 결과적으로 일부 관점을 침묵시킨다.

→ 공동선보다 차이를 노정하려는 환경이 진지하고 열린 공적 대화를 더 부양한다. 골이 깊은 갈등을 빚어내는 이익의 구조적인 갈등이 엄연한 곳에서, 정치적 소통의 과정은 일치라기보다 치열한 겨루기에 가깝다.

■면대면 토론을 전제: 심의 모델에 따르면 심의는 소규모의 시민 모임에서든 의회에서든, 심의자들이 서로를 직접 대면하는 공론장에서 행해져야 한다.

[잠정적으로 생략]

■질서 있음을 전제: 심의 모델은 심의를 무질서적이고 소란스럽고 방해적인 정치적 소통방식을 배제할 수 있는 좋은 방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당 모델은 심의를 위한 시민성을 언급하곤 한다. 성숙한 시민성이라는 아이디어가 그 예이다. 이 아이디어는 심의하는 사람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시위적이고 방해적이고 소란스러운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을 극단적인 사람으로 딱지 붙인다.

이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1) 극단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실상 그들 견해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배제하는 행위다. (2) 시위는 반대와 비판을 표명하고 힘 있는 행위자들에게 소명책임을 묻는 가장 중요하고 유효한 방식이다. 불리하고 배제된 부문들은 과정이 공정해지기를 기다릴 여력이 없기에, 또한 대개 경합적인 이익과 이슈는 너무나 많기에, 억눌리고 불이익받는 집단은 불평등한 조건 아래에서 더 큰 정의를 위해 치열한 겨루기 말고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 경합적 모델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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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내용에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만,
심의 모델이 선호 집합 모델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 이론이라는 맥락에서 대비되고 있는 건가요?
어쩐지 제가 보기엔 기술적 측면과 규범적 측면을 포괄하는 민주주의 모델로서는 둘 다 사정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아서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를 보자면 선호 집합 모델에서는 각 개인들의 선호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비교, 구분할 척도가 없고 이 모델은 각 사람들의 선호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통해 바뀔 수 있는지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 비판점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호 집합 모델을 지지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1) 각 개인들 간의 선호에 질적 우위가 있다는 것이 단순히 전제되고 있다는 점,
(2) 개인들의 선호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통해 바뀔 수 있는지가 반드시 민주주의 모델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는 점, (이는 선호 수정(preference revision)에 관한 다른 철학적 문제) 그리고
(3) 심의 모델 역시 어떤 안건이 "최선의 이유로 지지된다"는 것 및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해 제거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을 생각해보면 선호 집합 모델보다 심의 모델을 더 낫게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도, 민주적 의사결정을 모델링하는 관점에서 개인의 선호를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고 하여도 그로부터 개인이 자기 자신의 선호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 따라 나오진 않는 것 같구요. 선호 집합 모델이 정확히 무엇을 겨냥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선호 집합 모델을 수용한다고 해서 시민들 간의 심의 과정 및 그로 인한 선호 수정을 배제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애초에 그래야 할 이유가 없죠)
그보다는 어떤 심의 과정을 거쳤든 간에 특정 시점에서의 민주적 의사결정은 결국 개개인이 부여하는 선호 체계를 사회적 차원에서 합산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정치철학적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그보다는 심의 모델에서 다루고 있는 바로 그 심의 과정이긴 하지만, 상술된 이유만으로 선호 집합 모델보다 심의 모델이 더 나은 이론이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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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덧붙이자면, 이건 영만의 특이한 생각이라보다는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2>

(1)에 대해. 단순히 전제되어 있지만, 저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다른 내용은 모두 동일한데 정책 A가 정책 B보다 더 포용적일 때, 정책 A가 아닌 정책 B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2)에 대해. 개인들의 선호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통해 바뀔 수 있는지가 민주주의 이론에서 반드시 설명되어야 할 점이 아니라는 점에 잘 동의하기 힘드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더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닌 모델보다 낫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오컴의 면도날). 군주정과 민주주의가 다른 점은 전자에선 시민들 간의 상호작용이 정치적 의사결정과 거의 무관하지만 후자에서는 그렇지 않고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면, 시민들 사이의 상호작용 및 그에 따른 입장 변화는 설명되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3)에 대해. 정확히 어떤 의도로 말씀하신 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3>

선호 집합 모델의 핵심은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투표로 대표되는 결과 값에 둔다는 것입니다. 심의 모델의 핵심은 반대로 말씀하신 '시민들 간의 심의 과정 및 그로 인한 선호 수정'이라는 절차적 과정에서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찾는다는 것이구요. 말씀대로 선호 집합 모델이 시민들 간의 심의 과정 및 그로 인한 선호 수정을 배제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해당 모델이 집중하는 것은 분명히 결과 값이고, 절차적 과정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심의 민주주의자들의 비판이에요.

심의 모델 이론가들도 '투표'로 대표되는 선호 합산 과정을 심의 모델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아요. 다만 선호 모델은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호를 합하는 메커니즘'인데, 단순 합산이기에 이 합한 결과(투표 결과)와 다른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그에 따를 좋은 이유가 없어요. 반면 심의 모델에서 이루어진 투표에 대해, 나와 다른 선호가 결과 값으로 정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이루어진 심의 과정 때문에 그것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그 나름의 마땅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어 따를 좋은 이유를 갖게 되요.

쓰고 나니 좀 두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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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최근에 제출한 논문 서두에 선호 모델과 심의(=숙의) 모델의 차이점이 적혀있는데, 그 일부를 좀 옮깁니다.


숙의 민주주의 이론은 대의 민주주의 이론의 한계를 짚으며 등장했다. 우리의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직관에 따르면, 한 사회는 모든 인민의 의견을 잘 반영할 때 민주적인 사회이다. 이러한 포용의 가치를 대규모로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 이룩하기 위해 대의제가 도입됐는데, 대의제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이론을 구축하는 경우 정치적 의사는 공공선이 아닌 사익과 선호의 양적인 집합으로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선호 집합적 모델(Aggregative model)’에 속한다. 그런데 이 선호 집합적 모델은 크게 두 가지 의미에서 배제의 문제를 겪게 된다. ①투표에서 승리한 하나의 선호에 따라 정책 등이 결정되어 소수의 의견은 소외된다는 문제 ②인민들의 역할은 단지 투표자로 국한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선호 집합적 모델은 인민들 사이의 심사숙고 없이 단순 투표로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면 엘리트나 여론 주도층에 의해 대중 여론이 호도되어 ‘인민에 의한(by the people)’ 민주주의는 아니게 된다는 문제도 지닌다.

민주적 정당성을 양적인 선호 집합에 기초하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의 정치적 정당성을 따지는 요소로 ‘숙의’ 개념을 도입하는 이론적 시도를 ‘숙의적 전회(Deliberative turn)’라고 부르고, 이 시도에 동조한 이론을 숙의 민주주의 이론이라고 부른다. 숙의 민주주의 이론은 그 내부의 이론적 쟁점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분화되지만, 적어도 한 사회 및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결정하는 요인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대표적으로 드라이젝은 다양한 이견을 갖고 살아가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 속 정치적 의지 형성과 의사 결정의 정당성은 “문제가 되는 결정에 지배받는 모든 이의 진정한 숙의 참여를 통한 반성적 합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스쿠더는 “민주적 성질과 정당성은 시민 사이의 평등하고 포용적인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증대된다”라고 주장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숙의 민주주의는 투표 중심의 이론이 아니라 투표 전후로 이루어지는 ‘숙의’라는 특수한 행위에 중점을 둔 대화 중심의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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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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