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도, 위대한 야망도, 돈도(...) 그 이유가 아닙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 해본 것 중에서 가장 즐겁고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에 계속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음악일 수도, 요리일 수도, 혹은 게임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에겐 그게 학문, 특히나 철학이 그렇습니다.
작성자님께서 말씀해 주신 "옳은 것" "사랑" "욕망" "쾌락" "자유"와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저는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기에, 그걸 알고 싶다는 마음 또한 공부를 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저는 철학을 항상 "Why"의 학문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중학생때 읽은 윌 듀런트의 The Story of Philosophy에서 철학을 "When"에 답하는 학문이라 하는 것을 읽고, 큰 혼란에 빠졌다 결국 철학은 행동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Why"와 다르게 "When"은 행동이 뒤따름을 내포하거든요.
이걸 뉘우치고 나서 철학이 더욱 즐거워졌습니다.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이 비로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요.
어린 시절에는 로봇 공학자가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었습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학교 과목 중에서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분야들을 좋아했고, 실제로 성적도 좋았어요. 수학 동아리도 하고, 도서관에서도 항상 과학 코너에서 책을 보았고, 『과학소년』이라는 월간지를 구독해서 열심히 읽기도 하였고, 거기서 주최하는 과학논술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하였거든요.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수학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요ㅠㅠ)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무렵이 되었을 때, 과학적 지식들이 뭔가 제가 고민하던 문제들에 답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특히, 저는 종교적 성향이 굉장히 강한데, 종교적 고민에 답을 찾거나 종교적 진리를 해명하는 데는 과학이 무기력하다는 인상을 점점 받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가 과학이나 역사학으로 검증이 되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따라 참/거짓이 판별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그 두 가지 영역이 서로 손쉽게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가령, 성경의 창세기도, 흔히 진화론 같은 과학적 이론과 충돌한다고 오해되는 것과 달리, 고대 근동의 우주관과 신관을 비판하기 위한 대안적 서사를 제시하는 책이더라고요. “(a) 바빌론 사람들은 세상이 신들의 전쟁에서 생겨난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만, 우리 히브리인들은 세상이 야훼의 말씀에서 생겨난 아름다운 장소라고 믿는다. (b) 바빌론 사람들은 해와 달을 신들로 믿지만, 우리 히브리인들은 해와 달을 단순한 천체라고 믿는다. (c) 바빌론 사람들은 인간이 신의 노예라고 믿지만, 우리 히브리인들은 인간이 신의 대리인이라고 믿는다. (d) 바빌론 사람들은 왕과 귀족들만 ‘신의 형상‘이라고 믿지만, 우리 히브리인들은 모든 인간이 ‘신의 형상‘이라고 믿는다.“와 같은 상반되는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를 곳곳에 사용하고 있는 책이 창세기라서요. 그래서 이런 책들이 말하는 내용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평가하려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범주의 오류‘를 범하는 셈이더라고요.
이렇게 과학이 제가 궁금해 하던 문제들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난 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은 스티븐 로의 『철학 학교』라는 책 덕분에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세계관, 가치관, 인간관, 신관 같은 ‘관점(view)’에 대한 논의는 인문학에서 이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에서도 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하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