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 철학사(한국프랑스철학회 저)에 대한 질문

현대 프랑스 철학사의 내용 중 사르트르의 사상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위의 책 중 사르트르에 관한 글에서,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로 대표되는 자신의 초기 철학이 존재론을 겨냥하고 있음을 표명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후에, 인간 실존의 요소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실존적 정신분석을 제시하는데, 저는 이 두 부분을 통해 사르트르가 인간존재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실존적 정신분석을 사용하고 있다고 파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인간이 대자존재로서 존재함과 동시에 타자는 인간 자신을 시선을 통하여 대상화하는 방식으로서만 바라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사르트르의 인간존재 분석을 위한 실존적 정신분석 역시 인간을 타자화, 대상화함으로서 바라본다는 한계에 부딛힐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사르트르가 이 점을 견지하고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 것인가요, 혹은 제가 위의 글에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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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전공자가 아니라 대답하기 어렵지만 아는대로 말해드리자면, 일단 '실존적 정신분석'은 사르트르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대체하기 위해 제안한 것입니다. 유아기 시절 부모와 나의 관계가 현재의 나를 규정한다는 '심리적 결정론'의 특성을 띄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달리 실존적 정신분석은 개인이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 간다 주장하며 결정론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런 실존적 정신분석 역시 사르트르가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정신분석과 마찬가지로 사르트르는 개인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현재에 이르렀는지 그 역사를 분석하기 위해 실존적 정신분석을 사용합니다. 반면 말씀하신 타자와 대상화의 경우, 이 둘은 사르트르가 자신의 방식대로 전유한 현상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데요.

사르트르의 현상학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이 대자존재로서 스스로를 선택해 나가는, 고정된 본질이 없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자존재와 대자존재가 만났을 때 입니다. 대자존재들은 서로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인정받으려고 투쟁하지만, 사르트르는 이런 시도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고 주장합니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든 대자 존재들은 평등한 관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것이 대자존재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고, 시선 속에서 대자존재들은 서로를 자유롭지 않은, 고정된 본질을 가진 무언가로 격하시켜버리는, '대상화'가 이루어진 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누군가가 나를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나는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선은 나를 경멸스러운 존재로 고정시키려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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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는, 의식이 자기-의식성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현상학에서는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의식 역시 대상화되는 방법으로 일어나지요.

하지만 사르트르에게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 따르면, 의식이 스스로를 의식하는 작용은 자신을 대상으로 둠으로써 반성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의식이 대상을 바라보는 어떤 행위를 할 때 비반성적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상 의식은 항상 비정립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식을 수반하게 되며, 현상의 존재로 말해지는 대상 의식과 존재의 현상이라고 말해지는 자기 의식은 의식에서 동일시되게 됩니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본다면 의식은 특별히 자신을 대상화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작용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죠.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하여’ 다른 것들을 무화시키면서 존재하고,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하는 대자, 즉 의식의 본성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에 따르면 사르트르의 실존적 정신분석이라고 하는 방법론은 어떤 대상을 가지는 대상 의식이 아니라 자기 의식을 생각하는 방법론이 되므로, 지적해주신 한계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타인을 볼 때에는 이러한 자기의식성은 발현될 수 없습니다. 타인이 곧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윗분께서 지적해주신 것처럼 항상 타인은 나의 자유, 무화 작용을 부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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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좁디 좁은 식견으로 드린 질문도 다들 이렇게나 친절히 대답해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짤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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