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라는 단어의 상위어

언어라는 수단이 절대적인지에 대해, 언어를 대체할 만한 ,언어만큼 정교한 다른 수단은 없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숫자라는 범주 안에, 1, 2, 3이 있다면,

표현 수단이라는 범주 안에, 언어 , ( ) , ( ) 가 있다고 할 때

(물론 여기서, ’표현 수단’ 이라는 단어의 내포를 정확하게 서술해야 할 것 같은데, 표현 수단이 되기 위해서 ’학문적 토대를 쌓을만큼 정교함‘ 을 충족해야 한다고 합시다.)

그럴 때에 ()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말들이 있나요?

아니면 위와 같은 생각을 다룬 서적이 있나요 ?

언어 철학이라는 분야가 있는 것은 알지만, 언어의 대체물을 찾고 싶습니다. 진정 언어로 뭉개지는 감각을 다른 수단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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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통 ‘메타 언어’라고 말하고, 타르스키의 모형론적 진리 이론을 통해 그 이론적 유용성이 알려졌습니다. 메타언어는 그것이 다루는 언어인 ‘대상 언어’의 표현들을 하나의 대상처럼 다룹니다. 이를 통해 메타 언어는 대상 언어의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그것이 우리의 논리적 모형을 구성하는 어떤 사태에 대응되는지 따위를 진술함을 통해 해명합니다.

다만 메타 언어는 여전히 언어이기 때문에, 실재 자체에 대한 진술을 내놓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다만 모형론은 우리가 참이라고 부르는 문장들이 참이기 위해 어떤 공간이 실재에 요구되는지를 드러낼 뿐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따라서 ‘언어로 뭉개지는 감각’이라는 문제는 메타 언어적 접근에서도 여전히 발생하는 것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언어 없이도 철학적 작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다음의 논제를 그럴 듯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언어적 사고 모든 사고는 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마치 누군가와 말을 하듯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적 사고 논제와 같은 강한 논제를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음 논제가 틀렸다고 믿을 만합니다:

  • 실재적 사고 어떤 사고는 실재 자체에 대한 사고이다.

우리의 모든 믿음은 오류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실재 자체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실재에 대한 오류 없는 믿음을 적어도 하나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이를 믿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실재적 사고 논제를 부정하고 나면, 설령 우리가 언어 외의 수단으로 철학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어떤 다른 도구를 사용해 철학을 하건 ‘뭉개지는 감각’의 문제는 여실히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쯤에서 맥도웰 같은 사람들이 나름의 답을 줄 텐데, 저는 그들의 답에는 회의적입니다.)

나아가, 언어를 통한 철학함은 실용적 측면을 갖습니다. 저는 다음이 그럴듯한 논제라고 생각합니다:

  • 언어적 소통 우리의 모든 소통은 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문적 활동으로서 철학은 하나의 대화 방식, 내지는 소통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학문적 활동으로서 철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찌되었건 철학은 언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원래의 질문과는 벗어나 있는 답변이기는 한데요, 나름의 답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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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메타언어에 대해 한 번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사실 어떻게 질문을 드려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감각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를 장난감처럼 쓰는 이상과 같은 시인들을 보면서, 언어의 형식이나 규격, 또 다른 표현수단, 감각질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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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메타언어에 관한 교본 ? 상세하게 다루는 책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 아니면 타르스키의 괜찮은 저서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 조금 난이도 있어도 괜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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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카르납님이 잘 답변해주실테지만, 하나 언급하자면, 며칠 전에 타르스키 입문서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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