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왜 필요할까요?

없으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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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머신인 동물도 감정을 느끼는데, 이산적인 데이터쪼가리 집합도(AI) 감정이 필요하다면 탑제할수있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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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또는 무엇에 감정이 없으면 안 되냐고 질문하신 것인가요?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인공 지능을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만들 수 있더라도, 저는 그런 인공 지능을 실제로 만들지 않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자를 사람이 굳이 더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존재자가 사람이든 기계이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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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은 정론입니다만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누군가는 ai를 친구로 대하고 있고, 누군가는 ai가 내 일자리를 뺏지 말았으면 하고(감정관련 노동자), 등등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요.
개인이 할수 있는게 점점 많아지면서 ai를 친구로 대하는 사람이 본인을 위해 ai에 감정을 탑제하는것을 100% 막는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해요.
막을 수 없다면 감정을 느끼는 돼지와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 감정을 느끼는 ai에 대한 고찰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것 같네요
인간이 필요하면 살리고(개) 불필요하면 죽이는게(돼지) 자연의 섭리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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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현재로서는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인공 지능을 어떻게 만들지 아는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애초에 그런 인공 지능을 만든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밝혀 줄 사람도 없는 듯하고요.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기보다는 우리가 여태껏 그렇게 살아온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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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철학 전공은 아니라 가지고 과학적 관점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인간에게 감정이 없으면 안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해하고 쓴 답변입니다.
신체는 외부의 자극을 인지기관으로 받아들이면 신경계를 통해 행동을 보입니다. 감정도 그러한 행동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화재가 발생하면 눈은 시뻘건 불을 보고 코는 연기를 감지하며 귀는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피부는 뜨거움을 느낍니다. 종합적으로 이러한 자극이 뇌로 전달되면 뇌는 위기를 감지하여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신체가 빨리 그곳에서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반적인 과정에서 신경계가 중재하며 감정도 호르몬을 통해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화재에 대한 공포 등이 되겠지요. 다시 말해서 감정이 없다는 것 혹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외부 자극에 대해 신체가 매우 둔감해지거나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이 감정이 없으면 안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반점을 앞뒤로 한 두 문장도 서로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AI에게 감정을 탑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전공자로써 의견을 얘기하자면 저는 지금도 AI가 감정 체계를 충분히 모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고도로 발달한 언어 모델을 사람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튜링 테스트와 중국어 방에 대한 내용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네요. 다만 앞선 답변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을 만드는 것이 인류에게 유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정에 대해 평소 해오던 생각을 두서없이 병렬적으로 적어봅니다.

감정은 자기보존에 위협적인 것에 대한 즉각적인 부정적 반응입니다. 여기서 위협적인 것은 내 생명/내 정신적 및 육체적 건강/내 물질적 복지/내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에서 인간적인 것/도덕적인 것/정상적인 것에 대한 나의 강력한 확신에 안티를 거는 것에 이르기까지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생물적 개체이자 사회적 개인으로서 내가 나와 동료 인간들과 사회에 바라는 이상적 상태와 반대되는 것을 상기시키는 모든 것도 포함됩니다.

건강/복지/지위/인간적인 것/도덕적인 것/정상적인 것/이상적인 것 - 이것들에 대한 나의 믿음이나 개념은 부분적으로만 자연적으로 구성됩니다. 즉 부분적으로는 사회문화적으로, 그리고 개인사적으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바퀴벌레나 구더기 같은 동물들에 대해 즉각적인 혐오감정이 생기지만 그런 혐오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남성의 외모가 상당히 남아있는, 여장과 화장을 한 트랜스 젠더 여성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한 얘기는 완전히 반대로도 할 수 있습니다. 즉 감정은 자기보존에 기여하는 일체의 것에 대한 즉각적인 긍정적 반응이기도 합니다.

감정이 즉각적이라는 것은 감정이 내리는 데 상대적으로 노력/시간이 덜 들거나 거의 들지 않는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덜 들거나 거의 들지 않은 것은 감정이 이미 문제의 상황/대상에 대해 오랫동안 해온 판단들의 즉각적 호출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 판단을 다시 시간을 들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기보존에 유리합니다.

감정은 선취적이기도 합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감정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적/인식적 판단이 최종적으로 내려지기에 앞서 내려지는 그 판단의 결정적 부분 - 자기보존에 좋은가/나쁜가 - 입니다. 이 경우의 감정은 어렴풋한 편이지만 그래도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는 윤곽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인간적이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행복감과 불행감이 그 자체로 행복이고 불행은 아니지만 행복감과 불행감 없이는 행복과 불행도 없습니다. 행복감과 불행감은 감정의 일종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창작 활동을 하기 전 다른 모든 정신적 및 지적 능력은 그대로인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만 잃었다면 그래도 여전히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불쌍함을 느끼는 감정 능력이 없는채 다치고 굶주린 생물개체들에게 충분히 잘 해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니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는 자기보존에 유리하지만 그것은 개개인들보다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인간종에 더 해당되는 사실이고 너무 감정적인 개개인들은 그로 인해 자기보존에 불필요한 고통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감정은 크게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자는 즐거움과 기쁨을 줍니다. 따라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없어지면 삶의 활력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감정에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면과 개인사적으로 구성되는 면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적으로 구성되는 면이 있다는 것조차 감정이 무조건 옳은 것일 수는 없음을 가리킵니다. 사회문화, 즉 문명은 자연을 변형하는 것이고 개인사는 부당하게 특권화되는 개인적 경험을 낳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문화는 이상적 완성태로 현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나 옳은 이성을 감정에 대립시킬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감정적으로 초연한 이성은 있을 수 없고 이성의 논리적 형식이 아무리 타당해도 그 형식에 맞춰 내려져야 하는 판단에 들어가는 지식, 개념은 온갖 유한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반세기 동안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기도 해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과학적 조명이 이뤄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갖춘 인공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이 신과 같은 존재로 획기적으로 진화하지 않는 한 영원히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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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라는 말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을 보니, 감정에 관한 철학을 다른 분야, 특히 심리학, 신경 과학, 진화 생물학과 분리해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고 저자가 말했군요. 첫 문단의 마지막에서 둘째 문장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e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