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교 수학 교과서는 '명제' 용어를 어떻게 쓰는가

한국 고교 수학 교과서는 '명제' 용어를 어떻게 쓰는가

두 문서의 내용은 같고, 그 문서를 공유한 플랫폼만 다릅니다.

문장 ‘2는 소수이다.’는 참이고, 식 ‘√2 + √3 = √5’는 거짓이다. 이와 같이 참, 거짓을 명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문장이나 식을 명제라고 한다. (전인태 n.d., 83)

한국 고교 수학 교과서는 명제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참, 거짓을 명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이라는 표현을 왜 쓰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보건대, 이 표현 때문에 한국 고교 수학에서의 '명제'는 현대 철학에서의 '명제'나 증명 보조기로 작성한 코드에서의 '명제'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제가 쓴 윗글에서, 다음 두 문장이 명제인지 아닌지를 논했습니다.

  • 차불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어떤 두 소수의 합이다. (골드바흐 추측)

한국의 초·중등학교 수학과 교육과정을 개정하시거나 그에 따른 수학 교과서를 집필하시는 분들도 '명확하게 판별하다'가 무슨 뜻인지를 명확하게 판별할 수는 없을 듯해요. 그래서 저는 현재 한국 고교 수학이 명제를 딱히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고 문헌

  • 전인태, 김동재, 최은아 등. 게재일 불명. “고등학교 공통수학2.” 천재교과서. 2024년 10월 21일에 마지막으로 접속함. 파일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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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장 어제 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 수학 하 집합과 명제를 배웠습니다. 교육의 당사자죠 ㅋㅋㅋ 때문에 제가 논리학에 대해서 이곳의 다른 분들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는 못할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생활세계에서의 문장(일반적인 의미로서의 문장)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문장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기능을 가지지만 (의문문, 명령문 등등), 사실 후자에서의 논리학은 진술, 곧 그 반대 개념을 중요히 다루지 않기 때문에 논리학에서의 문장과 언어학에서의 진술은 거의 비슷한 개념입니다 물론 술어논리까지 들어가면 명제의 정의는 자유변수가 존재하지 않을 때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는 코어논리학에서 명제는 진술과 문장으로 다룬다고 언급했던듯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논리학이 "일상에서의 정의"를 다루지 않음에서 딸려나오는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밴슨 메이츠 교수님의 기호논리학에서는 주관적인 참에 관한 모든 표현을 지우고 엄밀하게 표현한 문장만을 다루고, 또한 (문장이 참이다, 명제가 첨이다, 진술이 참이다) 모두 서로 동치로 다룬다고 하신바 있으니, 이건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른듯 합니다.

하지만 고1 수학에서 명제를 정의함은 무엇보다도 이의제기가 가능한 내용을 없애고 채점, 문제 제작과정을 쉽게 하는데에 있습니다. (일례로 무한집합, 전체집합이나 df/dx를 정의하지 않는것이 있죠.) 학생의 이해보다는 단순하게 이후의 내용 (특히 평가원 4점 문항) 문제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의만 다루고, 그것이 아니라면 실제로 그게 얼마나 중요하든 건너뛰는 성향이 있는듯 합니다. 수학적 사고력보다 문제풀이 실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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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슨 메이츠 교수님은 문장, 명제, 진술을 서로 어떻게 구별하나요? 저는 잘 몰라요.

@Vesuvius
한 가지 유용한 구분을 알려드리자면
문장은 언어적 대상으로, 적절한 규칙(문법)을 따르는 낱말의 배열,
진술은 특정한 상황에서 사용된 진릿값을 갖는 문장,
명제는 진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 혹은 진술된 문장을 능숙하게 이해하는 청자가 이해하는 바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문장, 진술, 명제를 구분하는 철학적 맥락에서는 대략 이런 구분을 따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 이 구분은 철학자들의 구분이긴 하지만 일상적인 의미의 용어들과 매우 동떨어진 자의적인 용어 설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논리학 교과서 같은 데서 문장, 명제, 진술을 구분하지 않는 이유는 형식화된 언어에서는 명제를 표현하지 않는 문장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외연 일치를 시킬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연언어에서는 모든 문장이 명제를 표현하지는 않죠.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철학자다'는 문장이지만, 특정한 맥락에서 발화되지 않는다면 명제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저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철학자다'라고 말한다면, 즉 "저 사람은 철학자다"라고 진술한다면 그제서야 그 때 사용된 그 문장은 명제를 표현하게 되고(Raccoon은 철학자다) 참 또는 거짓값을 가질 겁니다.
좀 더 극단적인 예로는 '색깔 없는 초록색이 사납게 잠잔다' 같은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문법적으로 맞는 한국어 문장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즉 표현하는 명제가 없는 문장이죠. 진릿값도 당연히 갖지 않습니다.
문장이 표현하는 바가 있긴 한데 그게 뭔지 불분명한 것도 있겠죠? 예컨대 '우리 학교 운동장은 평평해' 같은 문장은 '평평하다'라는 말의 모호함 때문에 그 명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따라서 화맥에 따라 제한되지 않는 한 진릿값을 판별할 수 없거나 미결정된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chabulhwi
사실 저는 저 교재의 정의에서 '판별'이라는 용어 때문에 누군가가 진릿값을 판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명제인지 아닌지 결정되는 것처럼 들려서 그게 좀 마음에 안 듭니다. 엄밀히 따지면 문장과 명제를 동일한 종류로 취급하는 것도 잘못된 거긴 하구요. 명제를 '진릿값을 가질 수 있는 문장이 표현하는 바' 정도로 쓰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학생들에게 더 쉬운 설명일지는 미지수네요.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문제삼을 만한 부분인가 싶기도 합니다.
어차피 고등학교 수학교재에서 명제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장황하게 펼칠 수도 없을 테고,
저렇게 설명하는 것도 위에서 제가 든 예시들 같은 경우를 제외시키고 수학에서 다루는 명제들이 어떤 성격인지를 알려주는 정도로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큰 흠결인 것 같진 않습니다.

제 생각엔 예시로 들어주신

차불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라는 문장도 명제의 본성을 n-튜플로 보는 특정한 견해'사랑하다'의 의미가 명확하다는 전제 하에서는 참, 거짓값을 갖는다고 하겠지만,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야?"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면 저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판별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게 단순히 우리가 판별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한다'의 의미가 모호해서 진릿값을 갖는지 아닌지도 결정되지 않은 것인지 그건 또 다른 철학적인 문제겠지요.

저라면 "수학에서는 저런 종류의 문장은 다루지 않을 것이고, 의미가 명확해서 참인지 거짓인지 딱 알 수 있는 문장만 다룰 건데 그걸 우리는 '명제'라고 부를거야"라고 설명할 것 같은데 이게 학생들이 대략적인 감을 잡는 데 기여한다면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유용한 측면은 있는 것 같습니다.

** 쓰고 보니 역시 명제에 관한 글은 정확하게 쓰기 어렵네요ㅎㅎ.. 제 글은 대략적인 느낌으로 그냥 참고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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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수학 분야에 들어가는 골드바흐 추측이 진술하는 바가 명제인지 아닌지를 한국 고교 수학에서는 따지기가 어렵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2025년에 갑자기 누가 이 추측이 참임을 증명하거나 거짓임을 증명하면, 그때부터야 이 진술이 비로소 명제가 된다고 여겨야 할까요?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명제에 대한 이런 관점을 저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고교 수학에서의 명제 개념은 제가 이용하는 증명 보조기에서의 명제 개념과도 대립하다 보니, 제가 해명해야 할 사항이 늘어나요. 솔직히 말해서 짜증 납니다! :rofl:

흠, 아랫글을 보니, 진술을 비롯한 문장 말고 명제가 진릿값을 가진다고 말하는 듯해요.

From https://philosophy.stackexchange.com/a/10896/58836:

제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두 문서의 내용은 같고, 그 문서를 공유한 플랫폼만 다릅니다.

작년에 수학 (하) 배우면서 선생님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결국 수학 (하)에서 배우는 중요한 내용중 하나가 집합 단원인데 수학 (하) 에선 집합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정 조건이 명확하여 그 대상을 분명하게 정할 수 있을 때, 그 기준에 맞는 대상들의 모임"

그런데 수업 중에 선생님이 말하기를 '이는 집합의 특징이고 집합의 정의는 이가 아니다. 집합의 정의는 없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궁금해서 더 찾아보았더니 수학적 공리계의 기초는 집합론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집합의 정의를 따로 하지 않는다 라는 결과까지 찾아서 작년에 발표한 기억이 나네요. 근데 발표 준비하면서 이런 세세한건 굳이 고등학생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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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부분에 오히려 동의합니다. 예전에 제 친구하고 과연 고등학교 교육(크게 보면 공교육)은 어디까지 가르쳐야하는걸로 굉장히 크게 언쟁했었는데 이것도 그렇게 논점이 비틀어질까봐 우려됩니다만 저 정도만으로도 고등학교 교육 수준에선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더불어서 명제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관련된 수학 교육과정을 확충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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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판단인 명제는 수학에서 거의 안 다루니까 이를 고교 수학에서 명제로 여기지 않는 것은 그리 큰 문제점이 아니에요. 그러나 제가 이미 말했듯이, 골드바흐 추측이 명제인지 따지기가 어렵다는 점은 꽤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가치 판단도 명제로 여길 수 있다는 '증거'를 제가 직접 찾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찾은 증거조차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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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들은 고교 수학 인터넷 강의에서 "무정의 용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강사님이 무엇이 무정의 용어라고 설명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잘못 기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담을 조금 할게요. 저는 2013년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난 뒤, 정주희 교수님이 쓴 "수리 논리학과 집합론 입문"을 읽다가 4장에서 멈췄습니다. 극소수의 고등학생은 일차 논리, 집합론, 유형론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배울 의향이 있지 않을까요?

증명 보조기에 관심이 많은 가상의 고등학생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굳이 수리 논리학을 독학할 이유를 제가 하나 들자면, 증명 보조기의 작동 원리를 잘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이에 비해 제 학습 진도가 늦어진 것이 매우 아쉬워요.

저보다 나중에 태어난 학습자들은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제가 겪은 시행착오 없이 수리 논리학이나 증명 보조기를 배울 수 있도록 제도권 안팎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제 인생의 상당 부분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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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줄립 챗에서 케빈 버저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매우 흥미롭네요.

Kevin Buzzard said:

@chabulhwi said:

That's true. Nevertheless, we agree that 0 = 1 is false but still a proposition in Lean, as the following code shows:

#check 0 = 1 -- output: Prop
#eval  0 = 1 -- false

So, I think mathematicians are well aware of the two different meanings of the term 'proposition' in mathematics.

I don't think this is true. Mathematicians see the word Proposition meaning "easy true statement" in all their courses. There might be one exception -- for example the unique and optional logic course which I attended as an undergraduate used Proposition in the same way as lean does. But this "weird" use of the word is the first thing I cover in my lean course.

위 말씀의 내용이 철학 스택 익스체인지의 어느 분이 쓴 다음 댓글과 상충하는 듯하거든요.

Conifold said:

Mirriam-Webster also has 2a and is not controlling for mathematical uses anyway. √2 + √3 = √5 and the like are propositions in English mathematics, and not just of school kind, see e.g. Dolciani's text: proposition is a statement that is either true or false, but not both true and false. Mathematical terminology is one of the most internationalized.

위 댓글에 사전 링크를 추가했습니다.

@Vesuvius @Koonickzuk 두 분에게 질문드립니다. 고교 수학 교사분들은 (1) 주관적 가치 판단이나 (2) 진릿값을 아직 모르는 수학 진술을 명제로 여길까요? 린 줄립 챗의 여러 연구자가 한국의 고교 수학 교과서에서 정의한 '명제' 개념은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의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한 2022 개정 고교 수학 교과서는 '99는 큰 수이다.'가 명제가 아니라고 설명했어요. (전인태 n.d., 98) 그래서 한국 고교 수학에서는 (1)이 명제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교 수학 교사분들이 (2)도 명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실지는 약간 불확실하네요.

혹시 이 댓글을 본 수학 교육학 전공자분이 계시면 의견을 남겨 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제가 교사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제겐 그럴 권한이 없어요.

저도 이 글 읽고 나서 궁금해가지고 학교 수학 선생님 두분께 물어봤습니다. 아직 저는 일개 고등학생이고 철학 찍먹에 수학 젬병이기 때문에 저는 잘 모르겠네요 :) 수학 선생님 두분 모두 공통적으로 (1)은 명제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2)에서 의견이 갈렸습니다.

한분은 (2)에 대해서 진리값을 모르더라도 참과 거짓을 판별 '할 수' 있기 때문에 명제라고 하셨고, 한분은 '국어적으로' 해석한다면 판별 가능한게 맞지만 '수학적으로' 해석한다면 진리값을 모르는 진술은 명제가 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선생님한테 '국어적인', '수학적인'의 의미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3분 남짓 남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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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의 의견이 갈리는군요!

답변이 늦어졌네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의 명제의 정의가 바뀔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골드바흐 추측처럼 언젠가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될 증명되지 않은 수학적 추측들이 현행 교육과정에선 명제로 다뤄질 수 없네요. 어떻게 보면 현행 교육과정에서 참과 거짓이 결정되지 않은 수학적 추측을 다루지 않겠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골드바흐 추측이나 콜라츠 추측 등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행했다면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도 포괄하는 쪽으로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는 바엔 공감합니다.
여담으로 제가 이 내용을 임용 준비중인 수학교육과 친구에게 보여주니 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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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교 수학 교육과정에서의 '명제' 개념이 미래에 일부 바로잡히더라도, 그날이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듯합니다. 제가 더 많은 문헌을 조사해야 되고, 한국 수학자와 고교 수학 교사들의 의견도 수집해야 할 테니까요. 이 일에 관심이 있는 논리학자나 수학 교육학 전공자분들이 계신다면 그분들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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