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여우, 갈매기: 세 가지 철학자 유형

카렌 그린이 쓴 『마이클 더밋의 언어철학』이라는 책에 재미있는 비유가 나오네요. 철학자들의 유형을 동물에 비유한 내용입니다. 단일한 사유 체계를 일관적으로 전개하는 철학자는 '고슴도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제들을 끊임없이 뒤쫓는 철학자는 '여우', 일정 영역을 주로 감시하면서 다른 자리를 넘보고 자기 자리를 방어하는 철학자는 '갈매기'라고 하네요.

아이지어 베를린(1979)은 소위 '고슴도치' 형의 사상가와 '여우' 형의 사상가를 대비시켰다. 전자의 경우는 그 저작이 철저하게 계산된 하나의 기본 사상에 의해 지배되는 반면, 후자는 다양한 사고의 길을 따라서 많은 사상을 설명하는 자이다. 이 은유를 따르면서 더밋은 자신을 기꺼이 "그 하나하나에 대해 조금씩만 아는 여러 가지 것들 주위에서 코를 킁킁거리는 여우"라고 기술하였다(1994a, 318쪽). 그리고 더밋의 저작을 그토록 어렵게 만드는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때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거나 빙빙 돌기도 하면서 냄새가 나는 곳은 어디든지 그 냄새를 쫒는 여우와 같은 경향성이다. 이것은 특히 철학을 향한 태도가 고슴도치나 여우의 것이라기보다는 갈매기의 태도를 가진 자들에게도 성립한다. 갈매기는 영토를 감시하되 아직 남이 차지하지 않은 자리를 찾으면서, 울음과 몸짓이 어떻든 간에 그것이 효과적일 경우 그것을 가지고 그 자리를 방어한다.

카렌 그린, 『마이클 더밋의 언어철학』, 이윤일 옮김, 북코리아, 201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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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철학 버전 동물 관상학인가요? 스피노자는 뻐꾸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대통령은 악어상이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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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에 대해 잘 모르고 번역을 하신게 아닌가 싶네요. 아이지어 베를린이라니... 아무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에서 고슴도치 유형과 여우 유형의 철학자의 구분이 나옵니다.

찾아보니 관련해서 정리해 둔 노트가 있어서 짧게 인용합니다. 다시 보니 재미있네요.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는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자마다 해석이 다를 정도로 모호한 말이긴 하지만 여우가 온갖 교활한 꾀를 부려도 고슴도치의 한 가지 확실한 호신법을 이겨낼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상징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이 말은 작가와 사상가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 넓게 말하면 인간 간의 차이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모든 것을 조직화하는 하나의 보편 원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느낀다.
다른 한 부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표들은 흔히 서로 관계가 없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한다. 물론 심리적이고 생리적인 이유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이지만 도덕적이고 미학적 원리에 근거한 관계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행동지향적이며,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은 산만하고 분산적이다. 또한 다양한 면을 다루면서 아주 다채로운 경험과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찾아낸 본질을 받아들일 뿐, 모든 것을 포괄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의 비전에 그들 자신을 맞춰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런 비전은 간혹 자기모순적이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광적인 경향을 띤다.

  • 이사야 벌린, <고슴도치와 여우>, The Hedgehog and The Fox: An essay on Tolstoy's view of history (1953), p.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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