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의 해석

안녕하세요. 저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서강올빼미 회원분들의 글을 종종 읽어왔으나 직접 올려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이 글은 순수이성비판 [B판] 서론에 언급된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류가 결정적이거나 많을 수도 있고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B판 서론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 이때, 인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백종현 선생님은 순수이성비판 번역본의 각주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인식'이란 '실재적 인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논리적 인식을 포함해서 모든 형식적 인식조차도 그러한 인식이 선험적으로 우리의 의식의 기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경험을 계기로 해서 자각된다는 뜻으로 이 구절을 해석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 하겠다."

나 역시 인식은 (1) 실재적 (2) 인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실재적'이란 '사물의 질을 이루는 것의 성질을 갖춘'을 의미하는 것 같다.

초월적 감성학 편에서 언급된 '경험적 실재성'에서의 실재성과 마찬가지다. 경험적 실재성이 동어반복적 표현이 아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경험적인 것은 실재적이지만 모든 실재적인 것이 경험적인 것은 아니다.

(2) '인식'이란 직관과 사고가 통일됨으로써 비로소 생길 수 있다.

칸트는 초월적 논리학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할 수 없으며, 감관들은 아무것도 사고할 수 없다. 이 양자가 통일됨으로써만, 인식은 생길 수 있다." 이는 직관되지 않는다면 인식이 불가능함을 함축한다. 어떤 것이 직관됨은 결국 그것이 순수 직관으로서 공간 형식과 시간 형식에 수용됨을 의미한다. 직관은 순수 직관과 경험적 직관으로 나뉘는데, 경험적 직관은 순수 직관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간 형식과 시간 형식은 실재성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인식은 직관을 필요로 하고 직관의 한 측면이 실재성인 한, 실재적이지 않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식은 있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인식을 말할 때, '인식'은 언제나 실재적이다. (이런 면에서, 칸트가 모든 인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할 때 인식 앞에 굳이 '실재적'이라는 표현을 추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표현은 잉여적이다.)

​2. 그렇다면,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할 때, 인식의 유형은 어디까지 포함되는가? 나는 그 대상에 (a) 경험적 종합판단과 (b) 선험적 종합판단이 포함되고, (c) 선험적 분석판단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후험적 분석판단은 칸트의 구분에서 성립하지 않는 것이므로 다루지 않겠다.)

(a) 경험적 종합판단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말은 자연스럽다.

(b) 선험적 종합판단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는 B판 서론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시간상으로는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도 경험에 선행하는 것은 없고, 경험과 함께 모든 인식은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인식이 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식 모두가 바로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선험적 종합판단에서 '선험적'은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함축할 뿐, 경험과 함께 시작되는, 즉 알려지는 것이 아님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선험적 종합판단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말은 모순이 아니다. 이는 칸트가 볼드 처리를 통해 강조한 '시간상으로는'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보다 분명해진다. 모든 인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말은 인식의 시간 순서에서 경험이 앞선다는 것이지 경험이 선험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의미에서 앞선다는 것이 아니다. 선험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의미에서 앞선다는 것이 아님은 곧 선험적 판단이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가 아님을 뜻한다.
칸트가 선험적 종합명제가 경험과 함께, 즉 경험을 계기로 인식된다고 주장한 근거는 B판 서론Ⅴ.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칸트는 수학적 명제가 선험적 종합판단의 사례라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동시에 경험적 방식으로 수학적 판단을 하는 경우를 언급한다. 가령, '5 + 7 = 12'에 관해 우리는 손가락을 활용해 혹은 종이에 점을 찍어가며 수를 센다는 것이다. 칸트가 수학적 명제를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명시하면서 동시에 이런 경험적 방법을 언급한 것에 관하여, 단순하게 그의 서술 전반이 비일관적이라거나 (경험적 방법을 언급한) 서술 일부가 불필요했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오히려, 선험적 종합판단조차 경험으로부터는 아니나 경험과 함께 알려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정교한 서술로 읽는 것이 보다 일관적이고 호의적인 해석이라 본다.

(c) 왜 선험적 종합판단과 달리 선험적 분석판단은 인식의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가?
선험적 분석판단에는 직관이 결여되어 있다. 주어 부분에서 술어 부분을 도출하는 분석판단이나 형식논리학(칸트의 용어로는 '일반논리학')은 직관 없는 추론이다. 칸트에 따르면, 분석판단이나 형식논리학은 인식의 유형 혹은 대상이 아니라 이념의 대상일 뿐이다. 나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백종현 선생님은 상술한 각주에서 '실재적 인식'과 '모든 형식적 인식'을 대립 지으며, 모든 형식적 인식조차도 경험을 계기로 자각된다는 견해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 기술한 것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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