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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이질성의 포용> 중 인지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질문드립니다.
하버마스는 인지주의에 관한 입장을 '강한 비인지주의/약한 비인지주의'와 '강한 인지주의/약한 인지주의', 총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찾아보니 이 구분은 하버마스 자신이 처음 제시한 것도 아닌 듯 한데, 정확히 이 네 가지 입장이 표명하는 바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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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이건 부끄러운 질문인데, 유럽철학을 몇년째 공부하고 있음에도 '현상학적으로 접근한다'가 도대체 어떻게 접근한다는 것인지, 일반적인 대상 이해와 뭐가 얼마나 다른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제 눈엔 그냥 멋진 척하는 미사어구 정도로 밖에 안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질성의 포용> 24쪽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물론 도덕규범이 공동체의 소속인들에게 '타당성을 갖는다'는 사실로 부터 그것이 즉각 인지적 내용을 갖는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사회학적 관찰자는 도덕적 언어게임을 사회적 사실로 기술하고 심지어 소속인들이 규칙의 근거와 해석의 납득가능성을 스스로 재현하여 설명 하지 못하면서도 왜 도덕적 규칙을 '확신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자는 이것에 만족할 수 없다. 철학자는 관련된 도덕적 논쟁의 현상학을 심화시켜 소속인들이 어떤 사실을 도덕적으로 논증하는(또는 그런다고 생각하는 경우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것인지를 알아낸다.
여러분들은 'x에 대해 현상학적으로 접근한다' 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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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주의'니 '실재론'이니 하는 용어를 쓸 때 늘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게 무엇에 관한 주제이냐 하는 겁니다. 언제나 'X에 관한 인지주의'라든가 'X에 관한 실재론' 같은 식으로 주제를 명시하는 게 여러 다른 문헌에서 등장하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주장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자들끼리도 서로 어떤 입장을 인지주의라고 할 것이냐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하버마스가 구분한 것을 함께 명시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른 데 올리신 포스트를 참고하니 여기서 말하는 인지주의는 도덕적 진술에 관한 비/인지주의인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도덕적 진술에 대한 인지주의는 도덕적 진술이 어떤 명제를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을 두루 포함합니다.
선생님께서 해당 포스트에 정리해주신 내용을 참고해서 보자면
강한 비인지주의는 도덕적 진술은 명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이고, 논리실증주의시대의 이모티비즘이나 그외 기타 베리에이션들이 포괄될 수 있겠습니다.
약한 비인지주의는 도덕적 진술은 사실 도구적 합리성에 따른 판단의 표현 정도로 보는 것 같네요. 말하자면 도덕적 진술은 여전히 어떤 도덕적 명제를 표현하는 게 아니지만 도구적 합리성에 입각해서 도달한 어떤 판단이 있다는 것을 (명시적이지 않게) 드러내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약한 인지주의는 얼핏 읽기에 R.M.헤어 같은 사람이 제시했던 prescriptivism(번역어가 마뜩찮네요) 같은 입장인 것 같아요. 도덕적 진술은 일종의 명령문으로서 명제를 담지 혹은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참/거짓을 따질 수 있거나 어떤 판단 독립적인 요소에 의해 참/거짓이 결정되는 그런 건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한 인지주의는 도덕적 명제가 참/거짓을 따질 수 있는 명제를 표현한다는 입장으로 보면 될 것 같구요.
(포스팅에는 정의에 관한 얘기도 있는데 하버마스가 얘기해서 적어두셨겠지만, 그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의가 독특한 가치냐 아니냐는 인지주의와는 별개의 논의인 것 같아서요.)
+이건 표준적인 구분이라기 보단 하버마스가 임의로 구분한 범주인 것 같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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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텍스트를 깜빡하고 안올렸네요. 계속 이어지는 글인데, 읽기 편하시라고 구분해서 올립니다. 정의 관련해서는 관련 문장을 볼드체 해두겠습니다.
강한 비(非)인지주의는 도덕적 언어 전체의 인지적 내용을 환상으로 '발가벗기고자 한다. 이 비인지주의는, 참가자들에게 근거를 입증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과 입장표명으로 비치는 언표의 배후에는 한낱 주관에 귀속될수있을뿐인감정, 태도, 또는결단을숨기고있다는것을입증 하려고 시도한다. 가치지향과 의무의 '구속력있는' 의미를 선호로 환원하는 공리주의도 정서주의 (Emotivismus) (Stevenson) 및 결단주의 (Popper 또는 초기 Hare) 와 같은 유사한 수정주의적 기술에 도달한다. 하지만 완고한 비인지주의와 달리 물론 공리주의는 참가자 들의 계몽되지 않은 자기이해를 관찰자 관점에서 선취되는 이익타산으로 대체하고, 이러는 한에서 도덕적 언어게임에 근거있는 도덕이론적 논증을 제공한다.
이 점에서 공리주의는 약한 비인지주의 형태에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 약한 비인지주의는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의 전통에서와 같은) 도덕적 감정 의 관점에서든 또는 (홉스 유형의 계약론에서와 같은) 타당한 규범에 대한 지향의 관점에서든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주체들의 자기이해를 고려한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들의 자기이해는 불가피하게 수정된다. 사실상 (목적합리적으로 논증될 수 있는) 감정이든 이익상황이든 오직 합리적 동기만이 객관적으로 논증된 입장표명과 판단으로 표현될 뿐인데, 이 판단논증에서 추정되는 객관성은 어디까지나 그릇될 추정이기 때문이다.
약한 인지주의는 '강한' 평가에 인식적 (epistemisch) 지위를 귀속시키는 점에서도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논증행위의 자기이해도 손상 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존한다. 나 (및 우리)에게 전체로 보아 '좋은' 것이거나 나 (및 우리)의 의식적 생활영위에 '표준적인' 것에 대한 반성적 명상은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키에르케고르를 따라) 가치지향에 대한 일종 의 인지적 접근을 열어준다. 경우마다 가치있거나 또는 진정성있는 것 (authentisch)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끈질기게 파고들어, 구속력있는 특질, 즉 욕구와 선호의 주관성을 뛰어넘는 특질에 의해 단순한 선호와 구별된다. 물론 정의의 직관적 이해는 수정된다. 제각기 고유한 선(善)관 념의 관점에서 보면, 간(間)인격적 관계에 배정된 정의는 비편파적 판단에 대한 맥락 독립적 척도가 아니라 한낱 여러 가치들 중 (아무리 강조된 가치일지라도)한 가치에 불과하다.
강한 인지주의는 도덕적 의무의 정언적 타당성 주장도 공정하게 대우하고자 한다. 이 인지주의는 도덕적 언어게임의 인지적 내용을 전 범위에서 재건하려고 시도한다. 칸트의 전통에서 주제는 네오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와 달리 의심없이 인정된 규범의 지평 내부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논증행위의 해명이 아니라, 이러한 규범 자체가 공평하게 판단될 수 있는 도덕적 관점의 논증이다. 여기에서 도덕이론은 탈전통적 (post- traditional) 사회의 구성원들 자신이 문제된 도덕적 기본규범에 직면하여 이성적 근거로만 소급하는 경우 직관적으로 취하는 관점을 재구성함으 로써 도덕적 논증의 가능성을 논증한다. 그러나 계약론의 경험론적 변형태와 달리 이 근거는 행위자와 관련된 동기로 간주되지않고, 따라서 당위적 타당성의 인식적 핵심은 손상되지 않은 채 온전히 남는다.
(여기서 '도덕적 논증 행위의 해명'은 '도덕적 정당화 행위에 대한 해명'으로 고쳐야 할 것 같고, '도덕적 관점의 논증이다'는 '도덕적 관점을 정당화한다'가 잘못 번역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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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coon 님께서 보신 제 글은 <이질성의 포용> 1장 1절에 대한 제 요약문입니다. 논의를 위해 여기에도 옮겨봅니다.
TIO 1: 도덕의 인식적 내용에 관한 계보학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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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명제 또는 언표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 그때 그것들은 인식적 내용을 가진다(Moralische Sätze oder Äußerungen haben, wenn sie begründet werden können, einen kognitiven Gehalt). 따라서 우리가 도덕이 인식적 내용을 가지는지 아닌지 밝히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검토해야 한다(Um uns über den mög lichen kognitiven Gehalt der Moral klarzuwerden, müssen wir also prüfen, was es heißt, etwas »moralisch zu begrü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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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언표는 상이한 행위자들의 행위를 규범적 구속력이 있는 방식으로 조절하는 데 이바지한다.
- 이러한 ‘규범적 구속성’은 행위자들이 무엇을 할 의무가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서로에 대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를 공동체에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정해주는 도덕적 규범이나 주입된 관행의 상호주관적 인정을 전제한다.
- ‘설득력 있는 방식’이란 도덕 공동체에 소속한 자들이 일차적으로 행위 조절에 실패할 때 주장이나 비판적 입장 표명의 설득력 있는 ‘근거’로 이 규범을 내세우며 이 규범에 호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기지시적으로 작동하는 이 도덕 규칙의 행위 조절적 힘은 두 개의 서로 엮여 있는 상호작용 단계에서 확인된다.
- 첫 단계에서 도덕 규칙은 행위자의 의지를 구속하고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정향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사회적 행위를 조절한다.
- 둘째 단계에서 도덕 규칙은 갈등이 일어났을 때 행위자가 채택할 비판적 입장을 규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를 넘어 관련 갈등에 대한 합의적 해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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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언어 게임에는 모든 이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잠재적 정당화에 기초한 설득력 있게 중재될 수 있는 이견이 다루어진다. 그래서 사회학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근거의 설득력과의 연관됐다는 점에서 도덕적 의무는 합의 지향적이지 않은 갈등 해결 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권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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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갈등의 경우엔, 감정적 반응도 도덕적 언표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감정적 반응은 암묵적으로 모종의 판단을 표현하기에 –자기 혐오에 대한 자기 비판적 태도와 같은 것들- 이 감정에는 일정한 평가가 조응한다. 그래서 이 감정과 평가는 합리적으로 소추가능한 의무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주관적 선호, 느낌, 감정, 평가와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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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언어 게임에 대해 사회학적 관찰자는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 기술하고, 공동체 구성원이 그들의 도덕적 규칙들의 근거와 해석에 관한 합리적 재구성을 제공하지 못하면서도 왜 그것들을 ‘확신’하는지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자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이 무언가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때, 대체 무엇을 행하는지 이해하고자 도덕적 이견에 관한 현상학을 추구한다.
- 정당화 실천에 대한 성찰은 비판적 이해를 촉진한다. 이를 통해 철학자는 정당화 과정에 직 접 참여하고 있는 속인의 정립된 관점을 확장하게 된다.
- 도덕적 언어 게임을 성찰하는 철학자들의 노력은 근대에 전개된 도덕 철학 이론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 강한 비인지주의: 도덕적 언어 전체의 내용은 환상이다. 정당화될 수 있는 도덕적 판단과 입장으로 보이는 언표 배후에는 한낱 주관적 감정, 태도, 결단이 숨어있다.
- 약한 비인지주의: 도덕적 언어는 이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단지 그 이성은 목적합리적(도구적) 역할을 할 뿐이다. 도덕적 판단 주체가 가진 추정상 객관적으로 근거 지어진 판단과 입장은 사실 주체의 합리적 동기의 표현일 뿐이다.
- 약한 인지주의: 도덕적 언어와 같이 가치 있거나 진정성 있는 것은 우리에게 강요되고, 필요와 선호를 넘어 구속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단순한 선호와 다르다. 그러나 정의는 불편부당한 판단의 맥락 독립적인 기준이 아니라, 단지 가치 있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 강한 인지주의: 도덕적 의무, 규범, 정언명령은 불편부당하게 판단될 수 있다. 정의는 단지 여러 가치나 좋음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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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1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인지주의, 비인지주의로 구분하는 것은 원래 메타윤리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도덕적 판단이 믿음을 표현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표현한다는 입장은 인지주의가 되고 그렇지 않다는 입장은 비인지주의가 됩니다. 그런데 이를 다시 강/약으로 세분한 것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버마스의 고유한 입장이라고 보입니다.
즉, 도덕적 판단이 믿음을 표현한다고 보지 않는 견해인 비인지주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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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비인지주의는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거나 도덕적 판단에 기한 말을 할 때, 그 판단 혹은 말에 도덕에 관한 어떤 인지적인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는 다만 우리 주관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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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약한 비인지주의는 그러한 판단 혹은 말을 하는데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이성이 도덕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하죠. 이는 아래 자료 중 p.337~338을 참고하시면 더 명확하게 아시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Habermas, Jürgen (1996). XIV*—On the Cognitive Content of Morality.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96 (1):335-358.
그리고 인지주의는 메타윤리학에서 도덕적 판단이 도덕적 믿음을 표현한다는 것인데, 이 자료의 p.342~348을 참고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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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인지주의는 '좋음'과 '올바름'이 구분되고 올바름이 좋음에 우선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덕적 판단은 올바름에 국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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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약한 인지주의에서는 '올바름'은 여러 '좋음'들 중 하나에 불과하죠. 그래서 도덕적 판단에 '좋음'과 '올바름'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무언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행위로 이어질 때, 강한 인지주의에 따르면 사안이 '올바름'과 관계 있는 경우에만 국한되지만, 약한 인지주의에 의할 때는 그렇지 않게 되죠.
하버마스의 위 텍스트는 인터넷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아주 개략적으로만 설명드리고 하버마스의 텍스트를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자 합니다.
- 질문 2에 대해
'현상학적 방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1인칭 시점에서 우리가 겪는 경험을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려고 하는 질적 연구방법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인용문에서,
철학자는 관련된 도덕적 논쟁의 현상학을 심화시켜 소속인들이 어떤 사실을 도덕적으로 논증하는(또는 그런다고 생각하는 경우)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것인지를 알아낸다.
라는 부분은 위의 메타윤리학의 구분과 관련시켜 이해하면...'소속인'들이 도덕적 행위를 할 때 각자 자신의 1인칭 경험을 진술한 것을 바탕으로, 그들이 도덕적 행위를 할 때 과연 어떤 '믿음'을 표현하였는지의 여부, 그리고 믿음을 표현하였다면 '좋음'과 '올바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질적 조사/연구방법을 통하여 규명하겠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히 답변을 적어 보았는데, 선생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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