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P 이다.
(예시):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범주에 의한 종합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P에 해당하는 것들은 대부분 순수이성비판 감성론이나 연역론에서 "선험적&종합적"인 것으로 증명되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질문하신 것처럼), P의 "선험성&종합성"을 증명하는 명제 X 자체는 어떤 성격을 가지느냐 입니다. 칸트는 모든 명제를 분석적/종합적 2가지로 구분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2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X는 분석명제이다.
X는 선험적 종합명제이다. (경험적 종합명제가 아닌 것은 자명하기에 배제했습니다.)
만약 1번이라면, P라는 선험적 종합명제가 X라는 분석명제에 의해 정당화되는 꼴이므로, 자기모순이 됩니다. X가 분석명제라면, X에서 선험적으로 도출된 P역시 분석명제여야 하죠.
만약 2번이라면, 무한퇴행이 의심됩니다. P의 (선험적) 종합성을 정당화한 것이 X였는데, X 역시 (선험적) 종합적이라면, X의 종합성 역시 어딘가로부터 정당화되어야 합니다. 만약 X가 X2로부터 도출된다면, 이번에는 X2가 분석적인지 종합적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X2는 X3에서 도출되고 ... 이렇게 무한히 퇴행하는 것이죠.
즉 역설적이게도 칸트의 분석/종합의 구별에 따르면 칸트가 제시하는 X꼴의 논변들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논리적 필연성을 가진 것인지가 불확실해 보입니다. (지금도 합의가 되지 않은 열려 있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X 역시 선험적 종합명제라는 쪽을 방어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물론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가 쟁점이겠죠.)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 역시 이미 잘 지적하셨듯이 "선험적&종합적"입니다. 즉 이것 역시 연역론에서의 증명대상으로서 등장하고, 이러한 연역론의 증명이 없다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인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이후 논쟁이 계속되었듯이요.) 따라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 역시 P 자리에 위치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X자리에 오는 것은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을 증명하는 논변(가령 B판 연역론 16절의 논의)입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의 "선험성&종합성"을 증명하는) X의 종합성이 어디에서 오는지가 불분명합니다. 단순히 X가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에 의해 정당화된다 라고 하는 것은, X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P)이 X를 정당화하는 순환오류를 저지르는 것처럼 의심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칸트는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을 모든 지성의 사용에서의 "최상의 원리 (das oberste Prinzip)"라고 부르고 있으니, X의 종합성의 근원이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과 연관되어 있음이 또한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저 역시 통각 원리가 위 난점에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단순히 통각이 X를 정당화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세련된 논변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