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은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정당화하나요?

제가 이해하기로 흄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수동적으로 느끼는 인상과 과거 느꼈던 인상을 능동적으로 다시 연상하는 관념뿐이라고 주장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흄 자신의 철학에서 쓰이는 ‘인상’과 ‘관념’이라는 개념은 인상과 관념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가령 특정한 인상을 가지더라도 그것에서 ‘인상’ 그 자체라는 개념을 인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좀 혼동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인지한다."라는 작성자님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자면) 눈앞에 주어진 사물을 인지한 직접적 결과가 '인상'이고, 그 인상을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린 결과가 '관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물을 인지하는 것이고, 인상을 떠올리는 것이지, 인상을 인지하거나 관념을 인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눈앞의 빨간색을 보는 순간 우리는 빨강의 '인상'을 획득한 것이에요. 또 그 빨간색을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빨강의 '관념'을 획득한 셈이고요. 흄의 철학은 이 과정이 더 이상 정당화할 필요도 없이 매우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흄이 보기에는 인상과 관념에 대한 별도의 2차적 인지를 통해 저 과정들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인상을 인지한다"라거나 "관념을 인지한다."라는 표현도 일종의 구문론적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물이 인지된 결과가 인상이다 보니, 인상을 다시 인지한다는 것은 다소 어색한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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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법칙적으로 보면 윗 분 말씀처럼 결론을 낼 수 있지만, 현상적으로 보면 순환에 빠질 논증이긴 합니다. 다만 그 순환에 빠짐이 오류이기 때문은 아니죠. 하이데거 등 해석학자들의 해석학적 순환 등의 논의에서 관련 주제가 다뤄질겁니다.

인상과 관념은 인지하는 것 그 자체고 인지의 대상은 사물이라는 거군요

그럼 흄은 버클리와 같이 유아론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인지의 대상인 사물이 존재한다고 주장한건가요?

흄은 자연적 성향에 호소합니다. 철학적으로 유아론이나 회의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사물의 존재를 믿는 자연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건 선생님의 블로그에 있는 글을 첨부합니다.

https://blog.naver.com/sellars/100088558673

엄밀하게 말해, 흄의 이런 대답은 사물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철학적인 문제가 일상적인 삶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였을 뿐이죠.

대부분의 교과서적인 철학사 해설은 흄을 비롯한 영국 경험론 일반이 유아론이나 외부세계 회의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우리가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의 '인상'만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라면, 사물 자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은 근본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가령, 코라 다이아몬드 같은 연구자는 버클리의 철학이 비트겐슈타인과 유사한 일종의 실재론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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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흄은 철학사 책으로 밖에 접해보지 못 했는데 생각보다 나이브한 철학자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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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나이브한(상식 옹호적) 방식 자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미 모종의 정당화를 함축하기도 합니다.

철학적으로(전통적, 근대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 비-철학적(일상적) 정당화만이 가능하다.

즉, 자연주의적 정당화입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당화'의 개념일 것입니다. 보통 팝킨(1951), 최희봉(1987) 등에 의해 이 개념은 인간 지식의 궁극적 근거의 결여 즉 최종적 토대가 주어질 수 없음 등으로 이해됐습니다. 정당화 대신 설명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맥래어서 정당화/설명 사이의 구분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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