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연구방법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단일한 방법론은 없을 거예요. 철학자들도 입장에 따라 상이한 방법론을 제시하니까요. 다만, 오늘날 철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몇 가지 대표적인 방법론들을 아주 대략적으로 소개해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1) 현상학적 환원
후설 이후에 대륙철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상 뒤에 다른 형이상학적 실재가 있다고 가정하지 않고서, 우리가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만 주목하여 여러 가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현상학적 환원'은 크게 세 가지 계기로 이루어집니다. 판단 중지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선입견이나 가설을 배제하는 '심리학적 환원', 우리의 지향적 태도를 통해 세계가 성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초월론적 환원', 우리의 지향적 태도 속에 대상이 어떻게 주어지고 있는지를 기술함으로써 그 대상의 본질을 해명하는 '형상적 환원'이 그 계기들입니다.
(2) 해체
특정한 이론적 입장이 지닌 내적 균열 지점을 찾아내어 비판하는 방식의 철학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입장을 무너뜨리는(destruct) 균열 지점이, 그 입장을 성립시키는(construct) 토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전략이 해체(deconstruction)입니다. 가령,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레비스트로스와 루소 등에 대해 수행한 비판들이 해체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것과 '비순수한'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고자 한 레비스트로스와 루소의 작업들은, 사실 순수와 비순수가 뒤섞이는 지점을 은밀하게 상정하고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데리다의 지적입니다.
(3) 계보학
니체로부터 시작하여 푸코 등에게까지 이르는 철학적 방법론입니다. 특정한 이론이나 입장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여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그 이론이나 입장이 결코 고정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니체는 '선/악'이라는 도덕적 구분이 사실 '좋음/나쁨'이라는 더 원초적인 구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하여 우리가 신뢰하는 도덕의 근거를 문제삼고, 푸코는 정신의학이나 형법학이라는 지식이 17세기 이후로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설명하면서 '정상/비정상' 같은 구분들을 문제시합니다.
(4) 언어분석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의 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언어의 남용에서 비롯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해소하고자 하는 방법론입니다. 러셀의 한정기술 이론이 언어 분석의 전형을 잘 보여줍니다. 가령, "프랑스 왕은 대머리이다."와 같은 문장은 겉보기에는 '프랑스 왕'이라는 주어와 '대머리이다'라는 술어로 구성된 하나의 문장 같지만, 러셀은 이 문장이 사실 "어떤 x는 현재 프랑스 왕이다(∃x)Kx.", "x가 현재 프랑스 왕이면 x는 한 명밖에 없다(∀x)(∀y)((Kx & Ky) → x=y).", "x가 현재 프랑스 왕이면 x는 대머리다(∀x)(Kx → Bx)."라는 세 문장의 결합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 '프랑스 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문장이 '거짓'이라는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하죠.
(5) 초월적 논증
특정한 대상이나 입장을 성립시키는 조건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칸트를 따르는 철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철학적 논증이죠. 가령, 대상에 대한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이 선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때 공간과 시간은 대상을 통해 구성된 개념이 아니라 그 개념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조건'이라는 것이 칸트의 초월적 논증의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로 관념론이나 회의주의 등에 대해 초월적 논증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철학자들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관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조차 그 관념이 지향하는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거나, 모든 것을 회의하기 위해서조차 그 회의가 의미를 지닐 수 있기 위해 특정한 지식의 맥락이 존재해야 한다는 식으로요.
(6) 정신분석
정신분석 자체가 철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정신분석이 지닌 철학적 측면이나 정신분석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철학자들 중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드러난 현상이 실제로는 무의식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이나 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새로운 관점들을 제공해 주니까요. 프로이트와 라캉 등 정신분석학자들이 제시한 논의는 초기 하버마스, 마르쿠제, 프롬 같은 비판 이론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지젝이나 바디우 등 급진 정치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7) 가설 연역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가설 연역 방법도 여전히 철학자들에게 자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대표적인 예시이죠. 가령, 종이도 희고, 아이폰도 희고, 컵도 희고, 냉장고도 희다면, 서로 다른 개별 대상들에 '흼'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속성들이 부여되는 '속성 일치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 속성 일치 현상으로부터 '흼'이라는 속성에 대응하는 '하양의 이데아(보편자)'가 존재한다고 가설을 세웠죠. 오늘날에도 암스트롱이나 반 인와겐 등 이러한 방식으로 보편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철학자들이 꽤 있습니다. 보편자 실재론/유명론, 기체 이론/다발 이론, 가능세계 실재론/유명론, 시간에 대한 A-이론/B-이론, 이동 지속 이론/확장 지속 이론 등 수많은 형이상학의 논쟁들이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