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리뷰]무장한 예언자란 무엇인가

무장한 예언자란 무엇인가
-리더는 힘(자본)과 비전(이상)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무장한 예언자에 대해서 말했다. 나에게 <군주론>을 단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성공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무장한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할 것이다. 무장한 예언자는 무력과 설득력을 동시에 갖춘 존재이다.

조선을 세운 것은 이성계와 정도전이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없었다면 조선은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론적 기틀을 잡아주는 청사진을 그렸고 이성계는 군대라는 강제적인 힘으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사자와 여우. 무력과 설득력. 무장한 예언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용되는 마키아벨리의 탁월한 통찰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주는 더 이상 없다. 리더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과 설득력을 직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무력과 설득력은 각각 자본과 이론으로 변용되어서 이해되어야 한다.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세시대의 군대(무력)와도 같이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다. 이론은 강제된 사람들을 이끌고 갈 목적지를 제시해준다. 올바른 목적지를 제시해주는 이론은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청사진과도 같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힘도 이론적 정합성과 지식에서 나온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현대 사회에서 지식은 곧 파워이다.

성공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 내지는 자본에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자본이라는 강제력에 이론적인 것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학벌과 스펙과 돈과 외제차 등등은 ‘좋음’과는 관계가 없다.

학벌은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돈은 덕이나 선과는 관계가 없을 때가 많다. 요새는 국산차가 외제차보다 성능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이런 것은 덕이나 선도 아니고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을 규율하는 실제적인 힘은 학력과 스펙과 돈과 외제차 등등이다. 사람들은 좋은 대학교에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려고 스펙을 쌓는다. 생활비를 줄이면서까지 좋은 차를 끌고 다니려고 하는 것은 외제차의 브랜드가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돈의 논리 vs 윤리의 영역

리더 어쩌고 했지만, 사실 내가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결국에는 이론적인 것과 현실에서 사람들을 규율하는 실제적인 힘은 다르다는 것이다. 책으로만 세상을 접한 사람이 이래서 한계가 있다. 책으로 이론적인 것을 익히는 것과 삶으로 얻은 지혜를 통해 현실 돌아가는 이치를 익히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지식이 이론적인 것과 완벽하게 대응되는 것도 아니며, 자본이 현실에서 사람들을 규율하는 실제적인 힘과 완벽하게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말한 이 두 극단은 섞이지는 않지만, 항상 시대에 따라 각각 그 모습을 달리한다.

현대인들은 이 이론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에서 분열 상태에 빠져있다. 하나는 ‘돈의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전통적, 도덕적 삶의 세계 내지는 윤리의 영역’이다. 이 두 간극은 메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지향점은 현실에서 사람들을 규율하는 실제적인 힘과 이론적인 것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고,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며 조화를 모색하는 방향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 이러한 균형을 모색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균형을 적절하게 모색한 사람이 리더로 추앙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은 당연히 리더가 될 사람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며 분열을 겪고 있는 모든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람이 주권자인 민주 사회에서는 더욱 더 필요한 가치이다.

이것은 유교에서 말한 무항산 무항심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중용으로도 통한다. 역사는 왜 배우는가? 시대적 상황에 맞춰, 때로는 두 극단 사이를 오가며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 적절한 처방을 내리기 위함이다.

어떤 때는 이상적인 이론이 중시되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자본(성장)이 중요시되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떤 시기이냐 상황이냐를 고려한 처방이 중요하다. 그 적절한 처방이 균형이고 중용이기에 인문학은 결국에 균형을 배양하는 학문인 셈이다.

특히나 사람들이 분열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의 의미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분열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소외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론적인 것이 잘못된다면 배는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질주의나 인종 차별, 사이비 과학이나 사회진화론, 나치즘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들은 어떠한 이상도 설정하지 못한 채 단지 경쟁을 위한 경쟁만을 하거나 물질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니라 승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 될 것이다.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과 이론적인 것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 지도자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결국에 미움을 사게 된다.

반대로, 현실에서 실제로 사람들을 규율하는 힘에 대해 지도자가 무지하다면,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아무런 힘도, 권력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나에게 있어 이론적인 방향이 뭐냐고 묻는다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을 모색할 것이다. 그 사회는 나의 개별성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인 동시에 타인의 개별성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가 더 열려있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다양한 면을 존중하고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는 내겐 아직 너무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있어 현실에서 사람들을 규율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본인 것 같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만 내가 살아온 경험에 따르면 그게 제일 나은 선택지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업을 할 것이다. 출판업이라는 직종을 선택한 것도 사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매우 낮기 때문이었다. 내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존중받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현재 나의 꿈이다.

결국 어찌되었든 리더는, 민주사회의 주체인 우리 모두는 이 두 가지 수단을 얻기 위해 치열하고 처절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모순되는 두 가지를 적절하게 갖추고,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조화를 모색하는 게 리더가 할 일이다.

결국 리더는 두 가지 모순된 것을 양손에 쥔 자이자 이 두 가지로 인해 분열된 존재이다. 이 때문에 고통과 소외를 항상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리더의 운명이다.

군주론에 대한 논의를 보게 되어 반가움이 느껴집니다. 러프한 생각이라 제 논의에 jump가 난무하고 근거가 보이지 않을 것이 우려되지만, 일단 써 봅니다.

이를 군주론 (Mansfield 번역본 p. 61.)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었죠.

저는 무장한 예언자를 사람뿐 아니라 하나의 국가에 대입해서 생각해 왔습니다. 즉 무장한 예언자는 "forzare" (6장), 즉 자신의 우방과 군대와 금전으로, "자기 것으로 자신을" 세우는 사람인데, 이것은 국가에도 적용되어, 국가 자체도 그것의 우방과 군대와 금전에 기대어야 한다 -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식의 유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의 가치관이 반영된 듯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심지어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때면, 힘으로 믿도록 해야 한다고까지 할 때, 그리고 이를 국가 수장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리더로 적용할 때, 힘(물리)으로 믿게 하는 쪽은 현대에 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앞서 나온 'Forzare(힘)'의 단수형 'Forza'는 예전에 검색했을 때, force와 power뿐 아니라 삶의 어려움을 직면하는 능력까지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에 적용한다면, 물리력, 강제력, 억지력으로서의 force보다는 카리스마로서의 force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에 다소간 동의하는데 (그것이 없이는 살 수조차 없으므로, 별달리 선택지가 없도록 만드는 점에서), 그래서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는 데도 동의합니다. 그때에야 카리스마로서의 forza가 hold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쪽수는 기억나지 않으나, 군주가 선할 수 있으면 선해야 한다던 마키아벨리의 말을, 저는 반사실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1개의 좋아요

제 글에 동의를 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마키아벨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저만의 해석을 끄적여본 건데 구체적인 문장으로 근거를 들면서 Forzare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니 감사하고 저보다 훨씬 깊게 생각하신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라는 말은 지금 봐도 명언이고 제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한 줄로 압축하고 있네요. 글을 보충할 때 넣어도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네요.)
저도 억지력으로서의 force라기보다는 카리스마로서의 force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동감하고 자본과 이론이 그런 점에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