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유럽 학문의 표준적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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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자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저는 의외로 내용뿐 아니라 주변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상사라 할 만한, 책이 출간된 학문적 배경, 출판된 형식, 언어, 매체 등등 말이죠.

특히 제가 오래전부터 꽂혀있던 주제 중 하나는 바로 '대화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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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대화록에서부터 시작된 유럽의 "대화록" 형식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르네상스 시기는 물론 근대 철학 시기에도 꽤 많은 대화력 형태의 저술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하더라도, 데이비드 흄의 <자연 종교에 대한 대화>, 라이프니츠의 <신인간지성론> 정도가 생각나네요.
나아가, 철학 외의 학문 분야에서도 대화록이라는 형식은 꽤 많이 쓰인 듯합니다. 요근래 봤던 책으로는 니콜라 마키아벨리의 <전술론>(전쟁 전략과 병참 등에 관한 내용),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당연히 천문학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니엘 디포(최초의 novel로 불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입니다)의 <가정 교육>(Family Instruction)/<종교적으로 교제하는 법>(Religious Courtship)이라는 가정 교육에 대한 대화록도 찾았습니다 (....)

그 외에도 소설인지 아닌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장 자크 루소의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라는 형태의 자전적 - 대화록 형태의 내용도 있습니다.

또한 마르키 드 사드의 <규방 철학>도 대화록의 형식이고, 성교육 메뉴얼이자, 포르노그래피이자, 포르노를 옹호하면서 유물론이 튀어나오는 (...) 기이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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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궁금한 건, 도대체 인접 장르들과 이 대화록이 무슨 관계인지입니다.

(a) 왜 어떤 학자들은 어떤 장르의 내용은 대화록이라는 형태로 기술한 것일까요?

예컨대, 흄의 주저는 그냥 평범한 아리스토텔레스 형식의 논문입니다. 그리고 로크의 <관용론>도 그렇고, 제 기억으로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유클리드 공리의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논문 형식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장르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되었다는 뜻인데, 굳이 왜 대화록이라는 장르를 골랐을까요?

대화록은 일종의, 대중을 향한 교양서로 계획된걸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록 저술은 모두 대중을 위한 것이었고, 남아있는 논문 형식의 내용은 실제 강연이었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기억이 납니다.)

(b) 대화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희곡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희곡이 기본적으로 무대 공연을 위한 대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무대 공연을 애당초 전제하지 않는 희곡 형태의 대본은 꽤 있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괴테의 <파우스트>입니다. (결국 나중에는 연극으로 공연되었지만) (제 기억으로는) 서문에서부터 일종의 closet drama라고, 그냥 집 안에서 읽고 낭송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 궁금하지만, 딱 맞는 책이 있는지는 구글 검색으로는 알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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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 읽지는 않았고, 저의 추정일 뿐이므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셔도 됩니다. (심지어 모든 대화록에 관한 내용도 아니고 전술론(Dell'arte della guerra)을 약간 읽었을 때 든 생각입니다!)

《전술론》은, 《군주론》, 《피렌체사》, 《로마사 논고(티투스 리비우스의 처음 10권에 대한 논고)》 등과 달리, 말씀하신 것처럼 대화록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보다 군주론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군주론을 중심으로 비교할까 합니다.

《군주론》은 (실제로 헌정이 되었는가,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등은 베일에 싸인 채로) 데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어떻게 얻는가, 또 군주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가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군주론》에서 나오는 그의 생각들은, 대화 형식으로 기술되기에는 부적절한(또는 그렇다고 생각된 것)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술론》은 타인의 (전술이나 이를 포함한 전쟁 일반에 대한) 권위에 기댈 때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반면 《군주론》의 아이디어들 (신군주 개념이라든가, 군주가 조국을 위해서 신의성실을 저버릴 수 있다든가)을 대화록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긴 합니다. 그러나 '누구의 입을 빌릴 것인가?'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신군주가 실제 있었다 해도, 그가 자기 입으로 '나를 닮아야 한다'는 식으로 책을 구성한다면, 독자(줄리아노/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설득적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독자를 설득하는 데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고, 심지어 독자가 그 신군주를 (개인적으로든 어떻게든) 별로 존경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디면, 설득력은 더 떨어졌을 것입니다.

또 제가 기억하기에, 《전술론》은 마키아벨리 생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사후에 출간되어서 출간을 의도했는지 (대중에 공개할 의도였는지) 알 수 없는 《군주론》과 다른 지점입니다.

다시 말해, 《전술론》은 좀 더 "본인이 쓰고 싶은" 형식대로 쓸 수 있었겠고, "효과적인" 방식, "수사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종류의 원고였을 것입니다. 희곡("만드라골라" 등)이나 소네트를 쓴 사람으로서의 니콜로 마키아벨리에게, 대화록은 쓰기에도 편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말씀하신 "대중을 위한" 것이어서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이해한다면, 해명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전술론》이 Hanno, Lorenzo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즉 헌정받는 사람이 있는 양 글이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에 공개"할 정도의 의도까지 있었는가 하는 점이 설명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군주론》만큼 헌정이 긴요한 작품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헌사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대중에 공개하길 원치 않거나 오직 그 사람에게만 주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통해서, 다소간 해명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짧은 지식을 갖고 사견 달아봅니다 :slight_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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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 왜 어떤 학자들은 어떤 장르의 내용은 대화록이라는 형태로 기술한 것일까요?

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답변은 '자신의 입장임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위에서 언급해주신, 흄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입니다. <대화>는 그의 사후(1780년 이후)에 출판된 것이지만, 이미 그는 1750년대 저작인 <탐구(Enquiry ~)>를 작성하던 시기에 기독교의 신학적 교리들(신비주의, 이신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비판적 입장이, 중세만큼 심하진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표명되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에 흄의 지인들은 그에게 그러한 입장의 공표를 만류했죠. 기독교 비판을 담은 <대화>는 이미 60년 전후에 완성되었으나 흄은 이것을 그의 사후에 출판해줄 것을 그의 친구 아담 스미스에게 부탁했습니다(물론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명성 때문에 다른 이에게 맡겼습니다).

<대화>에는 세 명의 인물들(필로, 데미아, 클레안테스)이 등장합니다. 통상, 필로는 데미아(신비주의자, 신인동형론자)와 클레안테스(이신론자, 합리주의자)에게 비판적인 논변을 제시하는 인물로서 흄의 아바타라고 해석됩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논변을 제시한 필로(흄)가 마지막 장(12장)에 가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제시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흄 종교론 연구에서 다뤄야 할 한 가지 문제가 되었지요. 2000년대 들어 흄을 불가지론자, 심지어는 유신론자로 해석하는 입장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통상적인 해석(무신론)은 필로의 신앙 고백을 당시의 종교적 분위기로부터 비난을 면제받기 위한 것, 즉 흄 자신의 무신론적 입장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결론적으로, 흄의 <대화>는 (학술적 형식의 글쓰기와 에세이에도 능통했던 그가 대화록 형식을 쓴 것은) 자신의 무신론적 입장을 숨기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흄 자신이 아니라 '필로'라는 가상의 인물을 세워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그 인물이 (일관되지 않게) 끝에 가서는 신앙고백을 한 것이 그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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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가설이지만, 대화록이 논문보다도 글쓰기의 본래적(?) 형태에 훨씬 가까운 장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실, 논문 형식의 글쓰기는 굉장히 부자연스럽잖아요. 단일한 주제를 선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체계를 구상해야 하고, 내용 배치나 문장 표현도 아주 많이 정제해야 하니까요. 그에 비해 대화록은 좀 더 자유롭고 산만한 이야기들이 가능한 것 같아요. 또 그 대화가 실제로 벌어진 대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내용 구상의 부담도 덜하고요. 플라톤의 대화록들뿐만 아니라 『논어』와 『맹자』 같은 유교 경전들이나, 『우파니샤드』 같은 힌두교 경전들이나, 복음서를 비롯한 유대-그리스도교 성경의 대다수 책들이 대화록 형식으로 쓰여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해요. (그 밖에도, 스승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고대인들일수록, 스승이 말했던 내용을 가급적 왜곡 없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일어났던 대화를 그대로 옮기는 방식을 선호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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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사상사라 할 만한, 책이 출간된 학문적 배경, 출판된 형식, 언어, 매체 등등 말이죠.

저도 정말 좋아하는 주제라 만나서 참 반갑습니다. 본문 주제랑 큰 관련은 없지만, 저는 이것을 '지성사'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인물관계를 재밌게 읽고 있는데, 특히 융이 엘리아데와 만나고 종교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후 융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라거나 프랑스에서 현상학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레비나스의 역할, 후설의 성찰 강연에 참여자 목록을 정리해보는 것도 재밌는 작업이었습니다.

앞으로 관련된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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