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라는 번역에 대해서

한글로 된 철학 페이퍼등을 보게 되면, 명제의 truth를 "진리"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명제가 참이 되게 만들어주는 것을 "truthmaker"이라고 하는데, 이게 한국어로는 "진리제조기"로 번역이 되더군요. 근데 개인적으로는 이 번역이 조금은 misleading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부터 "진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좀 궁극적이고, 정말 모든 앎의 정점에 있는 그런 것을 생각해왔는데, 명제의 truth를 "진리"라고 번역하게 되면, <이 컴퓨터가 존재한다>의 truth 마저도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깐요. 영어 같은 경우는 대문자를 써서 Truth로 표기하거나, 맥락에 따라서는 the truth와 같은 식으로 이런 앎의 정점에 있는 그런 진리를 명제들의 truths와 구분해서 쓰는 것 같은데, 한국어는 이런 문법들이 없지요. 그래서 저는 "참"이란 단어를 선호해왔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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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참이라고 하든 진리라고 하든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문맥을 보면 절대적 참(대문자 참)인지 소문자 참인지 다 드러나서요. 제 경험 상 둘이 혼동되게 적은 한국어 텍스트는 딱히 없었네요.
추가로, 한국 텍스트에서도 명제의 진리치에 대해서는 보통 진리보다는 참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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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truth의 번역어가 진리도 있다는 걸 방금 알았네요. 하핳...어쩐지 가끔 분석철학 내용을 읽다가 뭔가 요상하다고 했더니....

개인적으로 저도 truth를 진리로 번역하는 게 참...거슬리는 사람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진리를 한문 그대로 풀면 fundamental principle 정도의 의미인데, 이건 THE truth의 의미잖아요?

(한문에서는 보통 진, 이거 하나 씁니다. 부사든 명사든이요. 근데 형이상학이 아닌 현상계의 truth라는 것을 가리킬 때는 실, 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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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맥을 보다 보면 사실(즉, 참)을 가리키는 것인지 진리를 가리키는 것인지 구별할 수 있기는 합니다.

다만 진리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가 꽤나 크기에... (특히나 철학에서는 더...) 모든 truth를 진리로 번역하는건 좀 불편한 번역인 것 같네요. 굳이 안해도 되는 "왜 진리를 썼지?"라는 고민을 더 하게 만드는 번역이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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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저번 학기에 Truthmaker 공부하면서 찾아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ㅋㅋ Truthmaker 번역이 "진리제조기"인 걸 보고 충격에 빠졌었지요.

아 그런가요? 제가 Truthmaker을 "진리제조기"라고 번역된 걸 본 게 충격이 컸어서 그렇게 느끼나봅니다 ㅋㅋ

그러게요... 진리가 괜히 또 한자어라서 무게감이 더한 것 같습니다.

진리제조’기’...는 본 적이 없는 듯하고 ‘진리제조자’ 또는 ‘진리확정자’로 옮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참’만을 취할 경우 어감이 어색해지는 맥락이 있고, ‘진’처럼 명사적으로 사용된 것인지 술어적으로 사용된 것인지 애매한 표현들을 피하는 경향이 ‘truth’를 보통 ‘진리’로 옮기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truth-value’ 정도야 ‘참값’이라고 할 수 있다 쳐도, 그렇다면 ’truthmaking’을 ‘참만듦이’로 옮겨야 하는 건지, ’truth condition’을 ‘참 조건’이라고 옮겨야 하는 건지 (이 경우 ’true condition’과 혼동될 수 있을 테고요), … 같은 문제가 남습니다. 여하간 적응되고 나면 아무 생각 안 듭니다 ㅋㅋ. 배식한 교수님의 “진리, 진실, 참”(철학 제84집)에서 관련한 이슈를 다루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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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truth'의 번역어로 '참'을 선호합니다.
'truth'가 등장하는 문맥을 보면 '진리'뉘앙스인지 '참'뉘앙스인지 구별이 된다는 윗분들의 의견에는 물론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맥을 세심하게 살피는게 다들 전공하시는 분들이어서 그렇지... 철학에 가벼운 흥미를 가진 비전공자들은 문맥을 그리 세심하게 살피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이들은 'truth'를 '진리'로 번역할 때 문맥에서 의미하는 바 이상의 의미들을 쉽게 덧붙이는걸 자주 보았어요. 철학을 신비롭고 심오하게 바라보면서 말이에요.

이런 생각으로 저는 'Truth'는 '진리', 'truth'는 '참'으로 번역하는 편입니다.

※ 근데 처음부터 전공자를 독자로 상정하고 쓴 글이라면 둘 다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저도 'truthmaker'나 'truth condition'은 '진리제조자'와 '진리조건'이 입에 착 달라붙거든요

Loux의 <형이상학 강의>에서는 truth maker를 "진리결정자"라고 번역하고 있네요.
공부하다가 발견해서 공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