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서 헤겔까지 철학사를 잘 설명한 철학사 책 있을까요?

이 흐름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가 필요해서 힐쉬베르거 서양 철학사(하)로 이 부분을 보고 있는데, 번역이 좀 오래되서 그런지 책장이 더디게 넘어가네요.

혹시 추천하실만한 서양철학사 책이 있으실까요? 혹은 힐쉬베르거 책은 충분히 좋으니 계속 읽는 편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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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ser - The Fate of Reason 이 유명하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책보다는 철학사책에 가까워서 조금 지루하긴 했습니다만... 배경지식으로 아주 좋긴 합니다. 철학사가 가미된 철학책을 원하신다면, Bowman - Hegel and the Metaphysics of Absolute Negativity가 괜찮습니다.

+) Bowman은 독일어권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영미권 학자치고 책이 그렇게 읽기 쉽진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 읽었을 때 조금은 난해한 문체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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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국역본 있습니다!

이외에도 바이저의 독일 철학사 책들은 꽤 많이 번역되어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사상, 독일 낭만-민족주의 정치사상, 헤겔에 관한 단독저서, 헤겔 이후의 철학사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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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주문하러 갑니다!!

위에서 추천된 '이성의 운명'이 되게 유명할 뿐더러, 특히 독일 고전철학사에 있어서 한국어로 쉽게 접하기 힘들면서도 중요한 부분들을 짚고 있기 때문에 무척 유익하고도 생산적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 책에서 다뤄지는 시기는 '칸트에서 피히테 직전까지'라서, 질문자께서 원하시는 "칸트에서 헤겔까지의 철학사"를 커버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저 시기의 독일 지성계를 다룬 여러 서적들이 있겠습니다만, 최근 번역출간된 서적으로 Andrew Bowie의 '독일 철학 개론'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책은 헤겔을 넘어서 청년 헤겔주의자들, 맑스, 니체, 이후 비엔나 학파와 현상학까지를 커버하는 개론서이기는 한데, 독일 관념론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이 운동이 독일 지성사에 끼친 전반적인 의의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재밌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도서관에서 잠깐 빌려서 부분적으로만 읽어보았습니다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혹은 영어가 가능하시다면 Eckart Förster의 'The Twenty-Five Years of Philosophy'도 참조하실 만하겠습니다. 교과서적인 철학사 기술에 요구될만한 '중립성' 혹은 '무관점성'을 미덕으로 삼는 책은 아니긴 합니다만.

https://www.hup.harvard.edu/books/9780674975477

2011년 독일에서 출판되었고, 2012년에 Brady Bowman이라는 미국의 철학자에 의해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한국에도 내고 싶은데 왠지 이미 판권이 팔렸을 것만 같네요.......). 이 책은 칸트의 비판철학이라는 유산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히테-셸링뿐만 아니라 야코비-괴테(!)와 같은 인물들까지를 경유해서, 최종적으로 (특히 예나 시기의) 헤겔에게서 어떻게 전유되는지를 다루는데요. 19세기 독일 고전철학사 서술과 관련해서 정말 많이 비판받아 오기도 했던 내러티브인 '칸트에서 헤겔까지'라는 컨셉을 고수하고 있기는 한데, Förster는 이 시대를 '칸트에서 헤겔까지'로 규정한다기보다는 이 시대의 지적 운동에서 가장 강력한 흐름을 그냥 저것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독일에서 출간된 서적이긴 하지만 R. Pippin이나 T. Pinkard와 같은 저명한 영미권 헤겔 연구자들에게서도 엄청난 샤라웃을 받았고, 또 독일 내에서도 나름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이 책에 대한 학자들의 반응들만을 담은 서적이 출간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던 책입니다. 본 책의 챕터마다 한 명씩의 학자들이 붙어서 논의하고 비판하는데, 이 학자들의 면면이 왠만한 앤쏠로지는 후려칠 만큼 무척 화려합니다 (올빼미에 익숙한 영미권의 학자들만 해도 Karl Ameriks, Eric Watkins, Yitzhak Melamed, Terry Pinkard, Michael Rosen 정도가 되네요).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조금 더 쓰고 싶은데 일이 몰려오네요 ㅠㅠ 혹시 더 궁금하신게 있으시다면 나중에 더 쓰던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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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dy Bowman 이 저런 책도 번역했었군요! 그나저나 말씀하신 책들을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제가 논증 위주의 책은 그나마 조금 읽는데 역사 위주의 철학사 책은 너무나도 지루해한다는 것이지요... Beiser - Fate or Reason도 챕터 두 세 개 정도 읽고 손에서 놨습니다 ㅋㅋ 일단 리딩 리스트에 넣어놓고 미래의 제가 읽길 바래야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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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댓글에서 언급하셨던 'Hegel and the Metaphysics of Absolute Negativity'에서도 Bowman은 Förster의 저 책을 주요하게 참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곳곳에서 인용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들춰보니 서론에서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적어두었네요.

그런데 이 책은 위에서 말씀드렸듯, '이성의 운명'처럼 철학사를 교과서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부터 헤겔의 '정신현상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굉장히 논쟁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합니다 (제목의 "25 Jahre"는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된 1781년에서부터 헤겔이 '정신현상학'을 탈고한 1806년 사이의 25년을 말합니다). 당대 포스트-칸트주의자들에게서 주요한 화두였던 쟁점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설명하고, 또 그것이 맞닥뜨린 한계를 제시하면서 마치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작법으로 이어가더라고요. 다만 그렇게 논의되는 저술들이 무척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은 것처럼, 그렇게 친절하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습니다 (야코비와 범신론 논쟁을 다룬 부분을 읽으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성의 운명'을 참조했던 기억이 나네요). 또한 끝부분이 좀 용두사미........로 느껴졌었습니다. 이건 저만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리고 생각나서 덧붙이자면, 이 시기의 철학에 관한 교과서적인 서술로는 최근에 출간되었던 Walter Jaeschke와 Andreas Arndt의 'Die Klassische Deutsche Philosophie nach Kant'를 꼽을 수도 있겠네요. 2012년에 출간된 책이니 비교적 최근에 나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역본이 나오지 않아서 좀 그렇습니다만, 저같은 토종 한국인 범부도 대학원에서 독일어를 처음 배우면서 강독했었을 만큼 (외국어 학생들을 고려한 것인지) 문장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독일어를 공부하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독일어도 철학도 같이 공부할 만한 좋은 꺼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아, 이 책은 SEP 'Idealism' 엔트리에서도 소개가 되었네요.

그리고 독일 관념론 전반에 관한 비교적 짧은 논문으로는 Sebastian Gardner와 Paul Franks가 쓴 "From Kant to Post-Kantian German Idealism"을 참조해보셔도 되겠습니다. 총 2편으로 되어 있는데요, "독일 관념론"에 관한 전반적인 재평가와 함께 독특한 해석적 관점까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둘 모두 저명한 학자들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어렵게 쓰여지진 않았고 또 이단적인 해석이랄만큼 독특한 것은 아니니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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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를 교과서적으로 다룬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두 가지 해석 방식이 있을 것 같네요. 첫번째로는 철학사에 치중을 하지 않고 논증에 치중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논증에 집중을 하니깐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한 것이었습니다. 바이저의 책 같은 경우에는 철학책보다는 역사책에 가까울 정도로 팩트 나열에 치중을 한 책이고, 보우맨의 책은 헤겔의 주장에 집중을 하니깐요. 그리고 두번째 해석 방식은, 이 책이 중립적인 주장보다는 자신의 해석을 전개시키는 책, 즉 "교과서"보다는 "연구서"에 가까운 책이다라고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Virtuoso 님이 의도하신 바가 이것 같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보우맨은 정말 이 당시에 새로운 해석 방식을 영미권에 제시한 것이니깐요. 하지만 보우맨의 해석이 출판되고 난 후, 영미권에서는 보우맨의 해석과 상당히 비슷한 해석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보우맨의 해석은 한때는 새롭고 낯설었던 해석이지만, 2024년에 와서는 굉장히 표준에 가까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보다는 논증에 치중한 책 중에서 표준에 가까운 책을 꼽자면, 보우맨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훌게이트의 책이 언제나 있긴 합니다만, 이 포스팅에서 원하는 만큼 독일 관념론 전체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지 않죠. 반면 보우맨은 스피노자, 칸트, 야코비 등을 굉장히 비중있게 다룹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이 부분은 정말 동의를 하지 못하겠네요. 이 책은 <대논리학>에 관한 책이에요. 근데 <정신현상학> 얘기를 하니 조금 혼란스럽네요. 혹시 오타가 나신 걸까요?

그리고, 제 생각에 논의 자체는 친절한 것 같습니다. 다만 난해한 문체에서 그 논의를 읽어내기가 어려운 것 같네요.

+) 포스팅을 다시 읽어보니, 글쓴이 분이 개략적인 이해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셨군요. 이런 면에서 보우맨의 책은 심도있는 토의를 하기 때문에 개략적인 이해를 위한 책으로 읽기에는 가성비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과서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말씀을 하신 거라면 그에는 동의합니다. 개략적인 이해를 위해서 읽기에는 조금은 어려운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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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말한 "이 책"은 Brady Bowman의 책이 아니라, 첫 번째 댓글에서 언급했었던 Eckart Förster의 책을 가리키는 거였습니다. Bowman의 책이 교과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해석적 입장을 개진하고 논증하는 연구서에 가깝다는 입장에 동의합니다. 제가 말한 "교과서적 서술"이란 정확히 이 반대(를 지향하는 서술)를 의미합니다. 얼마 전에도 YOUN님께서 '관점의 개입'과 관련된 포스팅을 올리신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 무리하게나마 정의해보자면 "교과서적 서술"이란, 자신의 해석적 입장을 개진하기보다는 주제 대상에 가능한 충실하면서도 관점-중립적인 해설을 제공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Copleston이나 본문에 언급되었던 Hirshberger와 같은 이들의 서술을 전형으로 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에 동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Förster의 책 또한 마찬가지로 '연구서'에 가까운 책이고, Beiser의 책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한다, 라는 것이 제 두 번째 댓글의 요지 중 하나였습니다. 지시를 깔끔하게 하지 못했네요. 혼동을 야기한 점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Bowman의 서술이 주제의 복잡함과 난해함에 비해서 무척 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영미권의 독일 고전철학 연구자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구자 중 한 분입니다). 다만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겠지만 사족을 붙이자면, 저는 이 책이 「논리의 학」이라는 저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헤겔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에워싼 보다 폭넓은 쟁점을 겨냥하는 책이라고 보아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헤겔의 (이른바 '형이상학'을 포함하는 광의의) 철학적 입장이란 1807년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와 분리되어서는 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책 전반적으로 Bowman은 계속해서 「정신현상학」을 풀어내고도 있고요. 물론 "「논리의 학」에 관한 책이다"라는 말씀이 "「논리의 학」 만을 주제로 하는 책이다"라는 의미는 아니겠습니다만, 저는 초점을 조금 달리 두어야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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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강올빼미에서 좋은 글을 보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서강올빼미는 깔끔하게 정돈된 논증을 제시하는 저널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기도 하는 토론의 장이니깐요. 그래서 많은 글이 혼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고, 저야 괜찮습니다 (혼동을 야기하는 글은 제가 제일 심할 것 같습니다. 전 오류가 보여도 귀찮아서 수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 어찌됐든 칸트-헤겔의 개략적인 이해를 위해서 보우맨의 책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은 저희 모두 동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전 철학사의 맥락에서 헤겔을 심도있게 이해하고 싶으면 보우맨의 책만한 걸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피핀과 크라이너스 등이 있지만, 이 사람들의 해석이 헤겔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거든요. 보우맨의 책이 철학사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면서 표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보기 드문 책인 것 같습니다.

사족에 관해서는,

이 두 개의 다른 점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헤겔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왜 회의주의가 실패하는지에 대한 것을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은 철저하게 부정적인 저작입니다. 예전에 <정신현상학> 수업을 들을 때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우리는 한 학기 동안 <정신현상학>에 하루종일 매달리면서 정작 헤겔에 대해 배우는 건 하나도 없어!" 였으니깐요. 그리고 보우맨의 책이 헤겔의 Realphilosophie에 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거법에 의해 보우맨의 책은 <대논리학>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보우맨의 책을 읽으면 헤겔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니 <정신현상학>을 읽기가 수월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우맨의 책이 <정신현상학>에 관한 것이라고 보긴 힘든 것 같습니다. 훌게이트의 Hegel on Being을 읽으면 <정신현상학>을 읽기 수월해지지만, 그렇다고 그 책이 <정신현상학>에 관한 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으니깐요. 또,

이 부분은 여전히 동의하기 힘듭니다. 보우맨의 책에서 <정신현상학>이 나온 부분이 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봤던 모든 부분들은 철학사적 배경에서 <대논리학>의 일부 개념들이 어떤 의의를 갖고 있는지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주의깊게 봤던 챕터는 챕터 6인데, 거기서 보우맨이 주장하는 것은 (1) 칸트의 통각과 스피노자의 모니즘은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2) 헤겔의 die Sache selbst란 개념이 이 문제들을 풀어줄 수 있다입니다. 그리고 (2)에서 거론된 die Sache selbst란 헤겔의 개념의 개념, 즉 <대논리학>의 개념론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논의에서 <정신현상학>이 어떤 식으로 거론될 수 있는지 감이 안 잡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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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이랄 것이 사실 아직 존재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한테는 아직 수많은 입장들이 경합하고 있는 장으로 보입니다. 만약 예전에 작성하셨던 "3세대 헤겔"과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저는 소위 '수정적 형이상학적 헤겔'과 같은, 특정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바운더리가 하나 서있을 뿐이지 그 진영 내부에서도 Bowman이 "표준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특권적인 입지를 인정받았느냐에 대해서는 사실 동의를 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아마도 지금 말씀하시는 이 "표준"이 놓여 있는 영미권의 학계에 몸을 담고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저 Owl of Minerva나 Hegel Bulletin 등의 몇몇 학술지들에 실린 논문들을 조금 읽고서 확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요. Bowman의 입장이 "표준적"일 정도로 탄탄하다는 판단을 내리셨다면 저는 선생님의 입장을 존중합니다만, 실제로 그렇게 "표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Bowman의 책을 무척 설득력 있게 읽었고 또 좋아합니다). 저는 헤겔의 형이상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관련된 논쟁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지 않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전장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Karen Ng의 책을 읽었는데, 현지에서 이 분의 입지는 또 어떤지 궁금하기는 하네요.

「논리의 학」이라는 저술과 제가 "헤겔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에워싼 보다 폭넓은 쟁점"이라고 일렀던 것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일단 "헤겔의 형이상학적 입장"에 관한 논의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텍스트들은 「논리의 학」 외에도 「엔치클로페디」, 그 중에서도 '서론'과, '소논리학'에만 포함되어 있고 「논리의 학」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소위 '예비개념'이라는 것 또한 꼽을 수 있겠습니다 (§19-83). 그리고 제가 읽기로 Bowman 2013은 책 전반에 걸쳐 분명히 이 모든 텍스트들을 다 아우르면서 (이 외에도 「정신현상학」, 「철학사 강의」와 같이, 단순히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주요하게 인용되고 해석되는 텍스트들은 더 있습니다), "헤겔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에 가담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적인 견해를 적극 논증하고 있습니다. 「논리의 학」은 그의 주요한 무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위의 두 번째 댓글에서 "「논리의 학」이라는 저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라고 적었던 이유는, 예컨대 Beatrice Longuenesse의 "Hegel's Critique of Metaphysics"나 언급하신 Stephen Houlgate의 "Hegel on Being"처럼 아예 「논리의 학」에 대한 연구를 표방하는 저술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말씀하신 6장에서도 「정신현상학」, 특히 "서문"(Vorrede)이 주요하게 다뤄집니다. 한 구절만을 인용해 두자면, "객관적 실재성이 contentfulness(Inhaltlichkeit)으로 또 형상적 실재성이 substantiality(Sachhaltigkeit)으로 가장 적절하게 묘사된다고 한다면, 두 용어들 그리고 양자 간의 구별의 기저에 놓여 있는 이 구조는 바로 헤겔이 die Sache Selbst라고 부르는 것일 터이다. // 이 개념에 대한 헤겔의 서술 중에서도 가장 간결하면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정신현상학」의 '서문'에서 발견된다. (…) '서문'은 실체가 곧 주체라는 하나의 이념과 또 그 이념의 방법론적 귀결들에 대한 설명에 전념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Bowman 2013, 215ff.). 그리고 그 아래부터 6.5절, 6.6절, 6.7절, 계속해서 「정신현상학」 서문의 관련된 구절들에 대한 해설이 이어집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6절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길지만) 인용해 두겠습니다: "[「정신현상학」 '서문'의] 이 긴 구절을 거의 전부 인용한 이유는, 이 구절이 객관적인 통찰을 존재하는 것의 형상적 실재성이나 본질과 동일시하는 실재론을 헤겔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알려진 것의 유한한 형식과 내용을 사변적 진리의 생성에 있어서 하나의 단순한 계기로 격하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 헤겔이 언급한 '단순한 사상'들은 실체의 절대적 부정성, 즉 실체가 주체 혹은 객관적 실재성으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전개에 있어서의 계기들이다. 이제 주체로서의 자기-정립의 핵심은 위의 [서문의] §53-54에 대한 첫 번째 논의에서 개괄적으로 설명되었던 변증법에 있다. 주체의 형상적 실재성이나 실체성은 오직 주체의 객관적 실재성, 즉 주체의 자기 자신에 대한 현상 혹은 현전을 통해서 또 그 안에서만 정립된다. 최종적인 분석에서, 이 운동은 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실재성 일체이자 사태 자체(die Sache Selbst)이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객관적 실재성의 완전한 질료적-형상적 규정성을 파악하는 열쇠가 되는 반면 (McDowell이 초월론적 관념론에 맞서 정당하게 주장했던 요지), 다른 한편으로는 형상적 실재성 즉 우리가 정당하게 안다고 간주하는 물 자체들이 단순한 현상, 한갓된 객관적 실재성이라는 점을 수반한다. 그리고 헤겔에 따르면 우리가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변증법을 통해서, 그들의 이행과 가현함(Scheinen), 해체를 통해서다. 실제로 헤겔의 학문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또 그것의 구조를 '개념' 혹은 '이념'으로서 나타내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Bowman 2013: 237).

지금 이 얘기가 Bowman의 책으로 시작되었습니다만, 위 Bowman의 서술을 따라서도 「정신현상학」은 철저하게 부정적인 저작일 수 없습니다. 당장 「논리의 학」 서론에서만 해도 헤겔은 「정신현상학」에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합니다: "「정신현상학」에서 나는 의식과 대상이 빚는 최초의 직접적인 대립으로부터 절대지로 전진하는 운동 속에 있는 의식을 서술했었다. 이 도정은 의식-대상 관계의 모든 형식들을 거쳐서 나아가, 학문의 개념을 결과로 산출한다" (TW 5: 42). 저는 헤겔이 말하는 이 "학문의 개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과 "절대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을 이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할 정도의 내공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냥 정리해서 저의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정신현상학」이 단순히 "회의주의를 물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헤겔의 철학이 출발하기 위한 모든 지반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혹은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 붙이고 있는 "의식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나 "학문의 개념을 산출하는 것"과 같은 조금은 불투명한 표현들은 결국 폭넓게 "정당화"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신현상학」이 단순히 회의주의를 물리치고 말 뿐이라면, 당장 '서문'에서 보이는 표현들, 예컨대 "참된 것은 실체로서가 아니라 또한 주체로서도 파악되고 표현되어야 한다"거나 "참된 것은 전체적인 것"이라거나 "절대자는 본질적으로 결과이며, 종착점에서야 비로소 참으로 그것인 바대로 존재한다"와 같은 헤겔의 주장들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절대지' 장에서 헤겔은 이 책의 모든 운동들을 정돈하면서 이 모든 논의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절대지' 장의 마지막 다섯 문단은 이와 관련해서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데요. 저는 실로 이 모든 진술들이 "헤겔의 형이상학적 입장"과 깊고도 적극적인 연관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인용문을 보아하니 Bowman도 그러한 듯합니다). 아, 물론 이게 제가 소위 '전통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지지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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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uote="Virtuoso, post:11, topic:4911"]
만약 예전에 작성하셨던 "3세대 헤겔"과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quote]
일단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 사이트에 써놓은 똥글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말씀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 글에 뭐라고 썼는지 보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겠습니다.

(2)
표준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전 항상 훌게이트/보우먼/마틴 등의 해석이 표준적이라고 생각해왔어서, 조금 당황스럽긴 합니다. 물론 제가 영미권의 많은 학교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설문조사를 한 것은 아니긴 하다만, 적어도 제가 받은 인상은 그랬습니다. 물론 그냥 우연히 제가 그렇기 느낀 것일 수도 있고요. 카렌 앵 같은 경우에는 상까지 받고 되게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펼쳐보면 너무 난해한 문장들로 가득 차있어서 펴면 금방 닫게 되더라고요.

(3)

<엔치클로페디>에 대해서는 제가 엄밀하게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항상 <대논리학>과 <엔치클로페디>를 동의어로 쓰는 안 좋은 습관이 있네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대논리학>과 <엔치클로페디>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그 둘을 동일선상에서 봐도 되는지에 대한 프로젝트를 한 번 하고 나면 고쳐지는 습관인데, 아직 그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네요.

(4)
보우먼과 <정신현상학>에 대해서는, <정신현상학>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틀리긴 했네요. 하지만 결국 보우먼은 <정신현상학>과 연관을 짓는다기보단, 보우먼이 논리학에 기반해서 주장하던 것과 비슷한 내용을 가진 부분을 인용한 것 뿐이지요. 그리고

전 보우맨이 <정신현상학>을 풀어낸다는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저 말을 꺼냈기 때문에, 아직 제 말은 유효한 것 같습니다 (예외는 있겠습니다. 전 "<정신현상학>을 풀어낸다"라는 말을, <정신현상학>에 대한 해석을 전개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일 저 말이 <정신현상학>에서 나온 일부 인용구들을 해석한다라고 쓰여진 것이면, 제가 잘못 이해한 겁니다.).

(5)

회의주의를 물리치는 것과 헤겔의 철학이 출발하기 위한 모든 지반을 정당화하는 것의 차이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헤겔의 논리학을 시작하려면 존재와 생각의 통일을 전제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 전제하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선 이런저런 논쟁이 있긴 하지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존재가 생각과 다르다는 입장이 칸트때부터 인기가 있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에 빠진 사람들은 헤겔의 논리학을 진지하게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이는 곳이 <정신현상학>이지요. 즉, 헤겔은 존재와 생각의 차이를 믿는 것이 애초에 잘못된 전제고, 그걸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존재와 생각이 다르다는 전제를 폐기하면, 혹은 회의주의를 물리친다면, <대논리학>은 준비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 두 구절의 의미는 제게 같아보이네요.

(6)

마지막 단락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글쎄요. 이런 부분들은 항상 해석의 여지가 많지요. 이런 부분들은 특정 해석과 상응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해석들과 상응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정신현상학>에서 회의주의를 물리치면서 나온 주장들에서 얻어낸 통찰일 수도 있고, <정신현상학>의 결과가 순수 존재인데, 그 순수존재가 절대적 관념이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의 결과가 진리를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고, 등등이 있겠네요. 물론 이 구절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봐야 더 심도있는 해석이 가능하겠다만...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보는 순간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생겨버리죠. 저 단락은 아니지만, 예전에 헤겔 교수님과 "자의식"을 논할 때, 교수님은 한 단락을 헤르더에 대한 조롱이라고 생각하셨고, 저는 그 단락이 헤겔이 현재 의식이 도달한 단계를 진지하게 서술하는 단계라고 해석했었습니다. 둘 다 어느 정도는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교수님과 제 <정신현상학> 전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죠. 요점은 헤겔, 특히 <정신현상학>을 읽게 되면 단락 하나하나에 너무나도 많은 해석이 가능하고, 특히 위 구절같은 경우는 이런 다양성을 부추기는 구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이 부분은 정말 공감을 못하겠습니다.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단락들은 정말 하나도 명료하지 않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단락 중에 가장 어려운 단락 중 하나인걸요. 정말 그 부분이야말로 모든 헤겔 학자마다 다른 해석이 있을 것 같네요.

어찌됐든, 잊고 있었던 단락들을 다시 보게 돼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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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질문과 조금 동떨어진 논의를 댓글로 이어 나가는게 불편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말을 마칠까 했는데, 출근길에 글을 읽어보니 오해가 조금 있는 듯해, 생각을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서 남겨두는게 좋을 것 같아 댓글을 다시 답니다. 본 글의 질문자분이나 또 커뮤니티의 다른 분들께서 피로감을 느끼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또한 전합니다.

(1) (2): 저도 Bowman의 해석이 설득력 있고 영향력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Karen Ng의 글에 대한 평은 좀 의외네요. 저는 읽는 내내 문장도 그렇고 논지 자체도 엄청나게 깔끔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헤겔 연구자들이 이렇게만 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3) 그렇다면 <대논리학>이나 <엔치클로페디 논리학>이 아니라 그냥 "Logik/Logic", 즉 헤겔의 논리학을 통틀어서 말씀하셨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보통 단행본을 표기할 때 쓰는 꺽쇠가 들어가 있어서 저는 당연히 특정한 책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네요.

(4)

Bowman은 논리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을 그저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신현상학>의 해당 구절들을 끌어들이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냥 유사한 내용의 구절들을 단순히 인용하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뭔가 설명하려고 6장에 관해서 잔뜩 적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그냥 삭제했습니다. <정신현상학>은 이 책에서 Bowman의 핵심적인 전거 중 하나로 <논리의 학>과 사용되고 있다는게 제 요지입니다 (정확하게는 두 저작들이 역할을 달리한다고 봅니다). 이 "연관관계"에 대해서 의견이 갈리는건 결국 <정신현상학>이 순전히 부정적인 저작일 뿐이라는 선생님의 평가에 의한 것으로 보이네요.

요컨대 그냥 제 의견은 처음부터 요런거였습니다. 'Hegel on Being'은 읽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애초부터 헤겔 <논리의 학> 1권 '존재론'에 대한 해설서를 표방하고 있지요. 제가 언급한 Longuenesse의 책은 약간 논쟁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여하간 <논리의 학> 2권 '본질론'을 전체적으로 따라가며 자신의 고유한 해석적 입장을 통해서 해석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영역본에서 덧붙은 2부는 관련된 주제에 대한 자신의 논문 몇 권을 부록격으로 수록해 놓은 것이고요). 그러나 Bowman의 책은 전자처럼 전면적으로 <논리의 학>의 전반적인 논증에 주목하거나, 후자처럼 아예 논리학에만 초점을 맞춰서 헤겔의 형이상학을 풀이하고도 있지 않습니다. 그냥 제목 그대로 "절대적 부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헤겔의 형이상학"을 풀어내는 저작이며, 물론 여기에서 논리학이 중요한 전거로 다뤄지기는 합니다. 저는 Bowman 2013의 '서론'에 이런 책의 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Dean Moyar의 입장 역시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https://ndpr.nd.edu/reviews/hegel-and-the-metaphysics-of-absolute-negativity/

따라서 이건 저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Houlgate의 저작과 Bowman의 저작은 "<논리의 학>에 관한 책인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성격을 달리한다는게 처음부터 제가 하고자 한 말이었습니다.

(5)

말씀하셨다시피 헤겔의 논리학을 시작하려면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게 <정신현상학>을 통해서 정당화된다는 점에서는 별 의견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그러나 이 문구는 자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정신현상학>이 "회의주의를 물리치는 순전히 부정적인 기획"이라면, 이를 통해서 "사유와 존재의 통일 혹은 동일성"이란게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예컨대 칸트 비판철학의 방식으로도 사유와 존재가 동일하기는 할겁니다 (칸트의 시도로 초월론적 연역을 들 수 있겠네요). 헤겔이 보기에는, 거칠게 말하자면 존재를 사유에 포섭시켜버린다고도 보겠죠. 헤겔은 그런 방식에 동의할 수가 없고, 그게 진정한 통일일 수 없다고 말할 겁니다. <엔치클로페디 논리학> '예비개념'에서 다뤄지는 "객관성에 대한 사유의 세 가지 태도들" 또한 거칠게는, 이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에 관하여 대척점에 서 있는 여러 입장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챕터가 시작되는 바로 앞부분에서 헤겔은 "객관적 사유"(objektives Denken? Gedanke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사유(와 존재)가 정확히 어떻게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인지를 다루고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현상학>이 이 "객관적 사유"의 필연성을 제시하는 정당화의 과제를 취하고 있다고도 말합니다 (§24 참조).

제 입장은 존재와 사유가 어떻게 동일하다는 것인지, 어떻게 통일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헤겔의 고유한 입장이 있고 (보통 '객관적 관념론' 혹은 '절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는), <정신현상학>에서는 순전히 부정적으로 회의주의를 물리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저 입장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는 겁니다. 회의주의를 물리치는 것만으로 헤겔의 출발점이 정당화된다면, 헤겔은 "학문의 개념을 산출하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저는 "논리학"에서 헤겔이 주장하는 무전제성이 훼손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무전제성이 "정말 아무런 전제도 하지 않는다"와는 다르다고 풀이합니다. 예컨대 <논리의 학> (서론이 아닌) 서문에서도 "이게 전제가 아니란 말이야?" 싶은 그야말로 전제스러운 적극적인 입론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헤겔이 무전제성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정신현상학>에서 저것들이 부당한 "전제"가 아닌 것으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Bowman의 글을 한번 같이 봐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특히 결론부분과 직전에 Michael Forster와 Hans Friedrich Fulda의 논의를 다루는 구절입니다: (PDF) Zum Verhältnis von Hegels Wissenschaft der Logik zur Phänomenologie des Geistes in der Gestalt von 1807. Ein Überblick | Brady Bowman - Academia.edu

(6) 저는 제가 언급했던 "참된 것은 실체로서가 아니라 (…)"와 같은 헤겔의 주장들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문제가 후대에 큰 비극을 가져다 주었다고 보는 편이지요. 이 주장들을 언급했던 것은 이들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바로 아래 선생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이러저러한 해석적 여지가 있는 헤겔의 "적극적인" 주장들이 분명 개진됩니다. 설령 위의 (5)에서 제가 펼친 주장들(가령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에 대한 헤겔의 고유한 주장이 <정신현상학>에서 개진된다)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씀하신 바처럼 이건 텍스트 자체에서도 보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서설'과 '절대지' 장 뿐만 아니라, 사실 '절대지' 장 앞에서 의식의 전체 운동을 조감하는 부분만을 간단히 보아도, "결과만이 아니라 운동 혹은 체계 전체가 진리를 이룬다"는 '서설'의 반복되는 주장이 이해될 수 있게 됩니다. <정신현상학> 전체를 관통하는 의식의 운동을 통해서도, 단순히 이런저런 입장들이 "부정"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지양" 속에서 수많은 계기들이 보존되어 '절대지'를 다 함께 형성합니다.

십분 공감합니다. 제가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적었던 것은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말은 아니었고요. 음... 그냥 "정확하게"라는 문구를 취소하겠습니다. 그냥 거기에서 헤겔이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헤겔이 이렇게 "보여주려 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저걸 뭐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를 풀어내는게 해석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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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글쎄요. 앵의 책은 서론을 읽으면 전체 구조를 알겠다만, 그 상세 주장을 읽어내기가 너무 어렵던데요. 특히 Kreines, Pippin 같은 사람들의 저작과 비교하면 명료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 같습니다. 근데 이건 소감이니 충분히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제 영어 실력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앵의 영어는 아주 어려우니깐요.

(3) 그건 제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4) 글쎄요.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특히 챕터 6의 thesis, 즉 die Sache selbst가 스피노자와 칸트의 문제를 풀어준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정신현상학>을 위한 자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보우맨에 대해서 하는 논의가 도움되는 논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책이 헤겔의 논리학에 관한 것인지 <정신현상학>에 관한 것인지는 이 책의 깊이가 부끄러울 정도로 얕은 논의인 것 같습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저인 것 같긴 합니다만), 시간과 에너지를 쓸 가치가 없을 것 같네요.

(5) 부정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해석을 못하겠네요. 그리고

이 부분은 <정신현상학>을 부정적으로 읽는 해석과도 상응 가능한 이상, 부정적이지 않은 해석과 상응가능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인용하시는 부분들의 문제는 너무 많은 해석과 상응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또, @Virtuoso 님이 제게 반박을 하신다고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결국 semantic dispute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제 주장이나 해석에 반대하신다는 느낌보다는 제가 쓴 단어들, 예를 들어 "관하다", "철저하게 부정적이다" 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는 느낌밖에 받을 수가 없네요. 전 제가 쓴 단어들에 크게 문제점을 느끼지 않을 뿐더러, 어떤 단어선택이 최고의 단어선택인지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네요. 물론 @Virtuoso 님의 잘못이라기보단, 논문처럼 단어 하나하나 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세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논의가 도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진 않습니다.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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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자료 안내 감사드립니다. 두 분 토론하시는데 갑자기 인사드리면 대화가 끊길까봐 답글이 늦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원래 질문과는 조금 멀어졌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토론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내용면에서도 방법면에서도 배운 점이 많아, 그 점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젠가 더 청해들을 기회가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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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a F. Bykova님이 쓰신 The German Idealism Reader: Ideas, Responses, and Legacy 책을 추천합니다. 칸트부터 헤겔까지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신 책입니다. 페이퍼북보단 킨들로 읽으시는 쪽이 인용구 찾기에 편하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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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독서리스트에 추가해두겠습니다 ㅎㅎ

셸링의 1827년 뮌헨 강의<근대철학사>가 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어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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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kant and hegel -Dieter Hen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