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주신 영상은 미드라쉬 중 하나인 창세기 랍바를 소개하고 있네요. 사실 미드라쉬까지 들어가면 정말 전문적인 논의라, 저도 이런 문헌들에 대해서까지는 그다지 자세히 알지 못해요.
개략적으로만 말하자면, 유대교는 우리가 흔히 '구약성서'라고 부르는 텍스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전승, 논쟁, 신화, 주석이 담긴 책들을 권위 있는 텍스트로 받아들여요. 구약성서에 대해 구전으로 전해지는 해석을 정리한 '미쉬나'라는 텍스트와 그 미쉬나에 대한 랍비들의 추가적인 해석을 모은 '게마라'라는 텍스트가 거의 성서에 맞먹는 권위를 지니고 있거든요. (우리가 '탈무드'라고 알고 있는 텍스트가 바로 이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한 텍스트인 거죠.) 그리고 미쉬나의 자매문서로 '토세프타'라는 또 다른 텍스트가 있기도 하고, 성경 각 권에 대한 랍비들의 주석서인 '미드라쉬'가 있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이 텍스트들에는 구약성서만으로는 알 수 없는 유대인들의 전통이나 신화가 포함되어 있어요. 가령, 미드라쉬에는 하나님이 사탄을 6일째 되는 날에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기도 하죠. 그래서 성서 연구와는 별개로, 이 텍스트들도 유대교의 독특한 사고 방식을 보여주는 문헌으로 아주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기도 해요. 유대교에서는 당연히 구약성서를 해석할 때 이 문서들을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하고요.
그런데 아도르노가 과연 『계몽의 변증법』 위 단락에서 랍비 문헌들만의 고유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지는 다소 의문스러워요. 물론, 아도르노는 유대인이었으니 유대교 해석 전통에 당연히 친숙했겠지만, 적어도 저 단락에서는 구약성서를 넘어서는 주석 전통들까지 고려되면 강조점이 많이 어긋날 것 같아요. 몇 가지 이유를 꼽자면,
(1) 랍비 문헌들이 단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미쉬나, 게마라, 토세프타, 미드라쉬 같은 주석 전통들은 너무나 다양한 기원을 가져요. 같은 창세기 해석에서도 입장들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거죠. 미쉬나만 하더라도 온갖 구전 전승들이 기원후 70-200년대 사이에 모여서 만들어진 집합체에요. 구전 전승의 기원은 아주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완성물은 그리스도교의 신약성서보다도 늦게서야 나왔으니, 미쉬나 자체가 단일한 해석적 입장이 있다 하기 어려운 거죠. 더욱이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수많은 미드라쉬를 만들어 내었지만 바빌론 유대교는 그렇지 않았다는 지역적 차이도 있고요.
그래서 아도르노가 '유대교적 창세기'의 특징을 말하기 위해 랍비 문헌의 이런 복잡한 차이들까지 염두에 두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 랍비 문헌을 염두에 두고 저 구절을 쓴 것이었다면, 아도르노가 (a) 다른 창세 신화와 유대교 창세기의 차이도 고려하고, (b) 유대교 창세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과 랍비적 해석의 차이도 고려하고, (c) 랍비적 해석들 사이에 내재하는 차이도 고려하고, (d) 그럼에도 랍비적 해석에서 본질적 요소를 뽑아내어 다른 창세 신화와 대조하였다는 말이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저 짧은 단락 안에 너무 많은 종교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셈이 될 것 같아서요.
(2) 랍비 문헌이 과연 구약성경에 대한 주석으로서 얼마나 정당할까?
게다가 랍비 문헌이 반드시 구약성경을 본래 맥락대로 주석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에요. 역사비평적 방법이 적용된 성경 해석은 19세기에나 등장하거든요. 그 이전까지 성경 해석은 (물론, 본문의 맥락이나 언어학적 요소 등을 어느 정도 정당하게 고려하면서 진행되었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비유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해석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당장 미드라쉬의 창세기 랍바만 보더라도, 구약성경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악마의 창조에 대한 신화가 랍비들이 악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등장하기도 하는 것처럼요. 또 (위의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왜 창세기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 '알레프'부터가 아니라 '베트'부터 시작되는지 같은 다소 맥락에서 어긋난 질문들이 제기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구약성서에 대한 연구와 랍비 문헌에서 제시된 주석에 대한 연구는 다소 분리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물론, 랍비 문헌이 구약성서를 계승한 중요한 문헌인 것은 맞지만, 이 문헌이 반드시 구약성서의 적법한 계승자인지는 다소 의문스러운 거죠. (그리고 이 논의가 사실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긴 해요.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신약성서가 구약성서의 적법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니까요. 당장 예수는 마가복음 7:1-13에서 랍비들이 추앙하는 '미쉬나(장로들의 전통)'를 비판하기도 했죠.) 오히려 구약성서 자체에 대한 연구는 역사비평이 발달한 오늘날에 훨씬 더 정확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