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키의 인식 논증이 공동체 언어 이론으로 제안되는 기술 이론을 논박하지 못하나요?

맥긴의 언어철학(2019) 2장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크립키의 인식 반론은 다음과 같이 이름의 기술 이론을 논박합니다:

기술 이론에 의하면, 이름 'a'은 그에 대응하는 한정기술구 'the F'와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 그렇다면 'a is the F'라는 진술은 분석적이고, 따라서 선험적으로 참이다.

그런데 이름에 대응하는 한정기술구는 선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파인만이 그저 미국의 물리학자라는 사실만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파인만의 의미에 파인만에 대응하는, 다시 말해 오직 파인만만이 만족하는 한정기술구를 마음 속에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정기술구는 선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진술 'a is the F'는 경험적이고, 비분석적이며, 따라서 기술 이론은 틀렸다.

그리고 맥긴은 이름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과 이름의 지칭체를 결정하는 것을 구분하여, 전자는 기술구, 후자는 인과 사슬이라는 수정된 형태의 기술주의를 제시합니다.

이후 인식 반론이 개인 차원의 기술 이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차원의 기술 이론을 제시한다면 효력을 잃는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언어적 따름(linguistic deference)이라는 생각을 통해 공동체 언어 이론을 게시합니다. 충분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지시체를 지칭하기 위해 권위자들의 이름 사용을 따르고, 권위자들은 올바른 한정기술구를 통하여 기시체를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제 의문점은 이러합니다. 언어적 따름 이론은 이름의 지칭체를 결정하는 요소에 대한 이론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이름의 사용을 통하여 어떻게 지칭체를 지칭하는지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식 반론이 최초에 제기된 것은, 위 블록인용에 따르면, 이름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반론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언어적 따름이라는 생각이 크립키의 인식 반론을 무력화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크립키가 제시한 괴델-슈미트 사례나 파인만의 사례가 '한정기술구가 지시체를 지칭하지 않음'을 보인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긴이 수정된 형태의 기술주의를 제시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인식 반론은 이름의 의미가 한정기술구와 동등하지 않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적 따름 이론이 이를 어떻게 무력화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앞서 맥긴이 이름의 의미를 구성하는 한정기술구는 본질기술구라고 했기에, 본질기술구가 포함된 진술,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 O를 갖는다'가 선험적으로 참인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단순히 '인식 반론은 개인의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언어 이론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하여 거부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제가 어떤 부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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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B를 가진 사람'이라는 기술구는 그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 인식 논증에 대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해당 주제의 권위자들 — 인격 동일성을 연구하는 형이상학자들 — 을 따르면 되는 선택지가 언제든지 열려있다. 이를 위의 사례에 적용해보면, 두뇌 B를 가진 그 사람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은 그를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을 따를 수 있겠다. (p85-86)

이 부분을 읽고 맥긴이 의도한 바를 나름대로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이름 'a'의 의미를 한정기술구 'the F'가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양립가능하다. 이들은 이름을 이해하지 않고 사용했을 뿐이다. 이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사람들이 'a is the F'를 선험적으로 참인 문장으로 판단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인식 반론은 효력을 잃는다.

아마 이것을 의도한 것 같습니다. 발화자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여 인식 반론을 재고한다면, 언어적 따름 이론이 인식 반론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소위 '권위자'들은 이름의 의미를 구성하는 한정기술구를 압니다. 그렇다면 권위자들에게 있어서는 'a is the F'가 선험적으로 참인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책에서 따로 언급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한 바가 책을 적절히 이해한 게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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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키가 러셀-프레게의 기술이론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기술구가 고유명의 뜻(Sinn)이다. 즉 고유명과 한정기술구는 동의어이다.
  2. 기술구는 고유명의 뜻은 아니지만 (따라서 고유명과 한정기술구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지시체를 (선험적/분석적으로) 유일하게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1번 버전의 기술이론에 대한 비판은 크립키가 양상반론을 통해 제시합니다. 크립키의 인식반론은 주로 2번 버전의 기술이론을 비판합니다. 즉 2번 버전이 제시하는 그림이 고유명의 지시체에 대한 우리의 실천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맥긴의 재반론은 언어적 따름을 통해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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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애초에 크립키의 주요 논지가 2번 버전의 기술이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군요… 저는 1번과 2번 모두 겨냥한줄로 알았습니다. 제가 인식 반론을 잘못 재구성했나봅니다.

그래도 제가 재구성한 반론이 여전히 유효하진 않을까 싶긴 합니다. 공부를 더 하고 나중에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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