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에 기반한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

혹시 쾌락_만족을 기반으로 한 사회 구조가 이미 존재하거나 이론으로 제시된 적이 있는지 아시는 분이 있나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쾌락의 재화화' , 쾌락을 사회 이념의 기본적 가치로 두고 이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형식의 사회 이념이 존재하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제 얕은 견해로는 사회이론으로 갈 것도 없이 보통 인간 행위가 쾌락이나 만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나요? 인간 행위가 왜 쾌락이나 만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실현되는지, (혹은 왜 그렇게 실현된다고 생각하는지) 를 물어보고 계신걸까요?

제 설명과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쾌락' 을 형상화 할 수 있는 수단_매체 (예를 들어서 프로작이나 세로토닌 수용체에 관여하는 일부 약물) 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였던 시도가 있었는지에 대해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정확하게 대답해드리기에는 다소 폭이 넓은 질문이긴 하지만, 몇 가지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소위 '쾌락 원칙(pleasure principle)'만을 문화와 도덕의 근거나 동기로 삼고 있는 사회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런 사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보는 것이 많은 철학자나, 인류학자나,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나, 생물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습니다. 가령, 쾌락 원칙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비판들 중 하나로는 프로이트의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가 있습니다. 또 프로이트는 문명 사회가 '쾌락 자체만을 위한 쾌락'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성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문명 속의 불만」이라는 글에서 지적하기도 하였죠. 약간 다른 논의이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 제3세대 철학자인 악셀 호네트의 고전적인 저서 『인정투쟁』도 인간의 사회가 '자기보존'과 같은 단순한 욕구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그밖에도, 오늘날 진화심리학자들이 꿀벌이나 개미에게서 나타나는 이타성에 주목하여 수행하는 여러 연구들도, 생물들의 사회가 단순히 '쾌락'이라는 원리만으로 (특별히, 개체의 쾌락이라는 원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죠.

(2) 그럼에도, 굳이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형태의 사회를 찾자면, '선/악'이라는 가치 체계 이전에 '좋음/나쁨'이라는 가치 체계를 지향했던 고대사회를 떠올려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를 비롯한 여러 저서들에서 고대 그리스의 원초적인 전사 문화를 기독교의 노예도덕과 대조하여 긍정적으로 제시하기도 하죠. 물론, 고대 그리스 사회가 정말 니체가 떠올렸던 것과 같은 사회였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학자들이 많지만, (가령, 지라르 같은 인류학자는 고대사회야말로 희생양 메커니즘에 따라 집단 린치가 정당화되었던 폭력적 사회라고 지적하면서 니체를 비판하지만,) 적어도 니체처럼 그런 사회를 일종의 이상향으로 지향하는 철학자들은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그밖에도,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최상의 '쾌락' 혹은 '감각 자극'을 제공하는 사회에 대해 상상하는 몇몇 문학작품이나 철학적 사고 실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격정대용약(VPS, Violent Passion Surogatte)'이라는 약물로 언제나 안락함만을 누리게 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도 비슷한 내용을 다루죠. 다만, 『멋진 신세계』와 <이퀼리브리엄> 모두 약물을 통해 쾌락이 제공되는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로버트 노직이 제시한 '경험 기계' 사고 실험도,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경험을 이루어주는 기계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노직은 쾌락주의 윤리학을 반박하기 위해 이 사고 실험을 사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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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난 김에, 예전에 『멋진 신세계』에서 읽었던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올려봅니다. 아마 이 소설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아닐까 하네요.

“신이라는 문제는 관두고라도 말입니다. 물론 신은 그런 행위를 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겠습니다만, 위험 속에서 삶을 산다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큰 의미가 있는 것이야.” 총통이 대답했다. “남녀들은 때로 아드레날린의 자극이 필요하니까.”

“네?” 야만인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물었다.

“그것은 완전한 건강을 위한 한 가지 조건이야. 그래서 우리는 V.P.S요법을 강제로 시행하고 있는 것일세.”

“V.P.S라고요?”

“격정대용약(Violent Passion Surogatte)란 뜻이야 매월 1회 정규적으로 복용하지. 신체의 모든 조직에 아드레날린을 충만시키는 요법일세. 공포와 분노의 효과를 가져 오는 완전한 생리학적 대용물일세. 데스데모나를 살해하고 오셀로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 같은 강장제적 효과를 얻으면서도 전혀 불편한 일이 일어나지 않거든.”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길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질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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