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프래그머티즘』 - 5장

5장.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의 영향과 그 쇠퇴(220-268)

1. 듀이 이후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의 흐름과 쇠퇴

프래그머티즘의 핵심은 무엇보다 경험 개념을 새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성적 경험이 아닌 의식을 지닌 자아와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서의 경험을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개인은 항상 사회와 역사, 문화적 맥락 속에 위치하고, 그 개인의 경험이란 문화가 실천을 통해 가치를 텍스트화하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이런 점에서 프래그머티즘을 단순히 편의성, 신기함, 도구성을 강조한 사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오도된 비판이다.

듀이 이후의 프래그머티즘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됐다. 예컨대 미드는 사회적 행동주의를 발전시킨 프래그머티스트이다. 미드는 사회를 개인의 집합으로 보는 환원주의 방법론을 비판하고, 사회적 과정 속에 놓인 개인과 그 행동의 연구에서 언제나 전체가 부분에 선행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개인은 항상 사회적 전체의 일부로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자극-반응 도식에만 머무르는 행동주의를 비판하며 내면의 심리를 중시한다. 왜냐하면 자극-반응이란 의사소통의 과정으로 이해될 때만 의미를 지니는데, 개인은 의도를 가지고 외부와 의사소통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프래그머티스트가 등장했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분석철학에 사상적 주도권을 넘겨주고 쇠퇴했다.

2.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의 영향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의 사회와 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의 사상적 독립이라는 자긍심을 제공했다. 그것은 과학적 세계관을 옹호하고 과학적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산업사회에 걸맞은 사고 방식의 기초를 제공했다. 이러한 경향 형성은 미국에서 분석철학이라는 과학 중심 담론의 수용으로 이어졌다.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은 사회과학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자아와 정신의 능동성 및 사회성을 강조한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고전적 프래그머티스트의 대표격인 제임스와 듀이는 인간 정신을 외부 조건에 피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는 고전적 경험론의 견해를 비판하고 정신의 능동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들에 의하면 정신은 결코 피동적으로 감각 소여를 받아들이는 창구가 아니다.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은 법이론과 경제학 등의 사회과학을 넘어 역사학의 발전에도 깊은 영향을 끼쳐 신역사학을 태동시켰다. 이전의 역사학은 사실의 충실한 서술, 즉 완전한 객관성의 확보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프래그머티즘에 영향을 받은 신역사학은 완전한 객관성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과정 자체를 부정한다. 그들에 따르면 역사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의 추적이나 서술이 아니라, 미래에의 비전과 현재의 관심에 의해 과거를 읽고 서술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역사 서술은 역사상의 사실과 역사가의 상대적인 지적 교류의 산물이지, 역사적 사실의 절대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3. 전환기: 초기 분석철학의 발전과 프래그머티즘

과학, 과학적 방법, 경험론, 의미, 검증가능성 그리고 협동 작업 등을 강조한 프래그머티즘은 논리실증주의와 여타 분석철학이 융성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프래그머티즘과 분석철학은 형이상학으로 대표되는 전통 철학을 비판하며 과학적인 태도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초기 분석철학과 프래그머티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두 사조는 과학의 본질이나 과학적 태도에 대한 해석에서 견해를 달리한다.

분석철학자들이 보기에 프래그머티즘은 심리주의에 빠져있었다. 프래그머티스트들은 논리를 인간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귀납 혹은 귀추를 통해 축적 및 발전시키는 도구라고 보았다. 반면 분석철학자들은 수학과 같은 엄밀한 연역적 체계를 지식의 모델로 삼으며 프래그머티즘의 탐구 방법을 거부했다.

(이하 초기 분석철학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

4. 후기 분석철학과 프래그머티즘

초기 분석철학은 콰인, 데이비슨, 쿤을 통해 공박됐는데, 공박 과정에서 등장한 논리들이 네오프래그머티즘의 태동에 영향을 준다.

콰인은 논리실증주의의 기반을 이루는 분석/종합 명제 구분과 환원주의를 도그마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콰인 비판의 핵심 근거는 전체론이다. 전체론에 따르면 낱말이나 문장의 의미는 언어 체계에서 고립되어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체계 전체가 세계와 맞닿게 되는 맥락에서 결정된다. 과학 이론이나 언어는 문장의 논리적 결합이 아니라 신념이 조직된 그물이다. 그렇기에 관찰 문장을 고립시켜 하나씩 검증, 확증, 검사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데이비슨은 언어란 체계적이고, 공유되며, 학습된 규약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고 여긴 규약주의를 비판하며, 규약의 요소 없이 비유를 통한 의사소통도 많은 경우 성공한다는 점을 밝힌다. 이는 언어사용능력으로서 체계적이며 공유된 규약의 힘이나 그 존재를 부인한 것이다. 이는 콰인이 선보인 전체론을 철저하게 하여 언어에서 형식과 내용의 구분의 엄격한 수립을 폐기하는 시도였다.

쿤도 마찬가지로 전체론의 영향을 받아 과학철학을 전개한다. 핵심은 세 이론가에 의해 전체론적 관점이 부상하며, 실천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를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는 점이다. 네오프래그머티즘은 이 과정에서 부흥한다.

5. 프래그머티즘의 재등장과 분석철학 비판

네오프래그머티즘의 대표주자는 로티다. 로티는 지금까지 진행된 분석철학 논의를 기반으로 반표상주의를 강하게 내세우며 문예비평으로서의 철학을 논한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반표상주의, 메타포 강조, 자문화중심주의이다.

반표상주의는 우리의 지식이나 언어 혹은 이성 등이 자연이나 실재의 표상이라고 보는 견해를 반대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인식 주관이 실재나 대상을 파악하는 거울처럼 투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해석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에 더해, 로티는 표상주의적 접근법이 인식 주관으로 전제하는 인간의 이성이란 관념 자체가 근대철학이 지어낸 형이상학적 허구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토대로 로티는 진리나 지식 따위는 단지 인간 목적을 위해 좋은 것 혹은 더 나은 것에 대한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반표상주의는 네오프래그머티즘으로 귀결된다. 메타포에 대한 강조와 자문화중심주의 또한 반표상주의의 귀결이다.

로티의 주장에 대해 분석철학자들은 세 가지 종류의 반응을 보였다. 무시, 반박, 수용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은 로티 주장을 그냥 무가치한 것이라고 무시했다. 반면, 해킹과 김재권은 로티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해킹 비판의 핵심은 로티가 인식론의 종말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재권 비판의 핵심 첫째는 로티가 철학에 대한 포기를 주장한 것 같으나, 로티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철학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체계적 철학의 포기를 강조한 로티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담론이나 언어의 포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로티 입장을 수용한 대표적인 인물은 퍼트넘이다. 그러나 퍼트넘이 로티의 입장 모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로티가 상대주의 혹은 비합리주의라고 비판한다. 특히 그는 로티는 과학을 세상사에 대처해 가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자신이 보기에 과학은 비록 자연이나 실재의 거울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합리적인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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