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데카르트가 감각에 의해 지각된 사물들을 악마가 비실재적인 사물을 환영의 형태로 속인거라고 하는데, cogito ergo sum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악마도 그를 속일 수 없기에 자신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라는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갑니다.. 악마의 존재는 어떻게 확신해서 확실성의 근거로 세울 수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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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철학이 정말 편집증이 지적으로 승화된 형태의 정신적 활동이라고 가정한다면, 악마는 그 편집증자에게 있어 자기 자신만큼 리얼한 존재로 느껴질 겁니다. 아무리 진실/개념에 대해 절대적 확신을 갖고 싶어도 나를 넘어선 무언가가 항시적으로 나를 방해할 수 있다고 느낄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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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존재는 확실성의 근거라기 보단 데카르트의 목표, 즉, 인식의 토대가 될만한 것을 찾아나서는 과정 속에서 감각을 그 토대로 삼을만한 한지, 혹은 수학적 지식과 같은 것들은 그 토대로 삼을만 한지에 대한 회의 과정에서 도입된 가정입니다. 따라서 그것의 존재는 보증될 필요가 없습니다. 핵심은 저 가정이 수학적 지식마저도 회의할 수 있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따라서 그것이 확실성을 보장할 수 있을만한 토대로서의 지식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데카르트의 논증은 성찰을 직접 읽으시면서 따라가 보시는 게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나시면 한 번 천천히 그 맥락을 이해하면서 이해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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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아니하다는게 중요한듯 합니다.

제가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방법적회의는 그러한걸 전부 제거하는 방법론으로 이해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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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악마의 존재를 확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이죠. 세번째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전능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The whole force of the argument lies in this: I recognize that it would be impossible for me to exist with the kind of nature I have - that is, having within me the idea of God - were it not the case that God really existed. By 'God' mean the very being the idea of whom is within me, that is, the possessor of ail the perfections which I cannot grasp, but can somehow reach in my thought, who is subject to no defects whatsoever. lt is clear enough from this that he cannot be a deceiver, since it is manifest by the natural light that all fraud and deception depend on some defect (CSM II 35, AT 51-52, my emphasis).

저는 신이 아니었다면 지금 제가 존재하는대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은, 데카르트의 용어를 쓰자면, 무한한 실체고, 속이는 것은 결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속이는 전능한 악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1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왜 우리를 속이는 악마에 대해서 논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데카르트는 우리가 철학을 할 때 의심할 수 있는 전제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통이나 경험들에 의해 자주 의존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이나 경험들은 의심할 수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My habitual opinions keep coming back, and, despite my wishes, they capture my belief, which is as it were bound over to them as a result of long occupation and the law of custom. I shall never get out of the habit of confidently assenting to these opinions, so long as I suppose them to be what in fact they are, namely highly probable opinions - opinions which, despite the fact that they are in a sense doubtful, as has just been shown, it is still much more reasonable to believe than to deny (CSM II 14, AT 22).

결국 데카르트에 의하면 우리는 경험이나 전통에 계속 영향을 받고, 그것들이 꼭 진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의심가능한 전제로부터 무언가를 유도한다면 그것 역시 의심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경험이나 전통으로부터 유도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그것이 전능한 악마 가설인 것입니다:

In view of this, I think it will be a good plan to turn my will in com­pletely the opposite direction and deceive myself, by pretending for a time that these former opinions are utterly false and imaginary... I will suppose therefore that not God, who is supremely good and the source of truth, but rather some malicious demon of the utmost power and cunning has employed ail his energies in order to deceive me (CSM II 15, AT 22).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속이는 악마가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가정 속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경험이나 전통으로부터 나온 의심가능한 전제가 아닌, 말 그대로 진리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1성찰에서 데카르트가 악마에 대해서 논할 때, 데카르트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전통에 의존하지 않는 진리를 알고 싶은 것이고, 악마는 그것을 알기 위한 장치 혹은 가설인 것 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코기토 역시 이해돼야합니다. 물론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을 쓰진 않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저를 속이더라도 저는 저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존재는 경험이나 전통과 관계없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철학의 토대로 삼고 그로부터 다른 것들을 유도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했듯이, 데카르트는 코기토,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신의 관념에서 기반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코기토와 제가 갖고 있는 신념은, 데카르트에 의하면, 경험이나 전통과 관계없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제에서 무언가가 유도됐다면, 그것 역시 경험이나 전통에 관계없이 사실인 것이고, 그것이 전능한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전능한 악마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폐기돼야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결국 데카르트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외적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등등을 유도해나가고, 이런 것들을 유도한 후 데카르트는 철학의 토대를 구축했다면서 <성찰>을 마무리 짓습니다.

물론 제가 말한 것들이 정확히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과 여러 논쟁들이 있지만, 최대한 중립적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 @car_nap 님이 제 답변을 해결책으로 해주셨는데, 잘못 눌러서 취소됐네요. 제가 다시 눌렀습니다. 근데 제가 제 답변을 해결책으로 뒀다고 뜨는군요. 뭔가 민망해서 이렇게 써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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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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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함을 가시게 하기 위해 다시 눌러드렸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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