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관련 질문 드립니다

프래그머티즘을 공부하던 와중, 루이스를 마주쳐서 그에 관한 질문드립니다. 강조는 저(출처: 김동식, 프래그머티즘: 226-7).

루이스의 사상은 개념적 프래금티즘이라 불린다. ... 그에 의하면 수학, 논리학, 철학 등과 같은 선험적 지식은 개념들의 분석을 기초로 한다. 개념, 논리적 관계, 선험적 진리 등은 정신의 특성이며, 분석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언어의 특성이 아니다. 그것들은 칸트가 주장한 선험적 형식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것들 없이는 대상에 관한 앎도 성립될 수 없다. 대상에 대한 지각이나 분석적 진리에도 개념들 사이의 필연적 연관이 스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루이스는 필연성을 전제로 하는 엄밀 함축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고전적 2치 논리에서의 실질 함축이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상 논리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프래그머티스트로서 루이스의 면모 가운데 하나는 가치판단에 관한 그의 견해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선험적 개념의 틀에 대한 마감 텍스트를 욕구 일반에 대한 궁극적 만족에서 찾는다. ... 더 나아가 그는 가치에 관한 지식이 일종의 경험적 지식이라고 본다. 그에 의하면 가치판단에는 검증이 마감되는 마감판단과 그렇지 않은 판단이 있다. 후자는 내적 주관적 가치 판단이고 전자는 외적 객관적 가치 판단이다. 그리고 가치에 관한 술어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기 검증적인 경우다. ... 둘째는 마감판단이다. ... 셋째는 마감판단이 될 수 없는 개연성의 판단이다. ... 루이스의 견해는 그 이론 자체의 성패를 떠나, 프래그머티즘의 견지를 가치판단으로까지 확대시켜 적용하는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한 점에서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할 것이다.

루이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이 문단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루이스는 <개념, 논리적 관계, 선험적 진리 등은 정신의 특성이며, 분석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언어의 특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는데, 이 주장의 대략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2. 루이스는 <필연성을 전제로 하는 엄밀 함축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고전적 2치 논리에서의 실질 함축이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요약에서, '엄밀 함축', '2치 논리에서의 실질 함축 그리고 실질 함축이 가진 문제'라는 것은 무엇인가?
  3. 루이스는 <선험적 개념의 틀에 대한 마감 텍스트를 욕구 일반에 대한 궁극적 만족에서 찾는다>고 하는데, '선험적 개념의 틀에 대한 마감 텍스트'란 무엇인가?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복잡한 답변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간략하게나마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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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흔히 '루이스'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D. K. Lewis가 아닌, 양상 논리의 선구자 C. I. Lewis에 관한 이야기군요. 1과 3에 대해서 정통하신 분이 있으실지를 모르겠네요… 일단 2에 대해서만 짧게 남겨 봅니다.

엄밀 함축이란 무엇인가?
엄밀 함축은 실질 함축(material implication)과 대비되는 개념들 중 하나입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P가 Q를 엄밀 함축한다(P ⥽ Q) iff “P이면 Q이다”가 필연적이다(☐(P→Q)).

여기에서 ‘실질 함축’이란 초급 논리학에서 조건문을 다룰 때 사용하는 바로 그 함축관 계입니다. 즉, 이치 논리(진리값이 둘 뿐인 논리)에서 ~P∨Q와 동치인 P→Q가 표현하는 함축 관계를 말합니다.

실질 함축이 가진 문제는 워낙 다양한데요, 아마도 여기에서 언급되는 것은 공허한 참값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실질 함축은 위와 같은 동치 관계를 갖는 탓에 전건이 거짓이면 전체가 참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우개를 놓으면 지우개가 떨어진다’는 단지 전건이 거짓이기 때문에 참이 되는 건 아니죠.

왜 그런가? 어떤 경우, 지우개를 놓았지만 지우개가 떨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면 이 문장은 거짓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참이고, 그것은 단지 전건이 거짓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지우개를 놓건 잡건’ 이 문장이 참이 되기 때문임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초기 분석철학자들은 여기에서의 ‘라면’을 엄밀 함축으로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전건이 참이면서 후건이 거짓일 수 있는 모형이 있는 진술은 배제되면서도 위의 지우개 문장의 참은 구출해내는 이론이 완성됩니다.

(다만 이러한 이론화가 조건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고,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게 된 것은 데이빗 루이스와 스톨네이커의 이론화 이후입니다. 이것은 여기에서의 논점은 아니니 이만…)

추가) 댓글을 달고 나니 위키피디아 항목에 더 잘 기술이 되어 있네요.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Strict conditional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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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분석철학에는 잘 알려진 두 명의 루이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앞선 시기의 클레런스 어빙 루이스(C. I. Lewis)이죠. (또 한 명의 루이스를 꼽자면 기독교 저술가인 C. S. Lewis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처음 읽을 때 데이비드 루이스인 줄 알고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건 C. I. Lewis에 대한 설명이네요.

양상 논리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고 엄밀함축 개념이나 양상 논리학의 역사 같은 부분을 다룰 때 말고는 요즘은 딱히 많이 언급되는 학자는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사람에 대해서는 몇 가지 입장만 주워들어 알고 있었는데 막상 말로 표현하려니 어려워서 도움될만한 구절 몇 가지를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에서 긁어왔습니다. SEP에도 해당 철학자의 별도 항목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1. C. I. Lewis는 개념적 실용주의(conceptual pragmatism)라는 입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In his first major work, Mind and the World Order (MWO) , published in 1929, Lewis put forward a position he called “conceptualistic pragmatism” according to which empirical knowledge depends upon a sensuous ‘given’, the constructive activity of a mind and a set of a priori concepts which the agent brings to, and thereby interprets, the given. These concepts are the product of the agent’s social heritage and cognitive interests, so they are not a priori in the sense of being given absolutely: they are pragmatically a priori . They admit of alternatives and the choice among them rests on pragmatic considerations pertaining to cognitive success.

선험성 개념에 관해서는 대략 이런 이해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1. 엄밀 함축 개념을 고안하고 양상논리학의 선구적인 작업을 한 건 루이스의 대표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Lewis’s work in logic was also guided in part by concerns about Russell’s choice of material implication as a paradigm of logical deduction. Lewis constructed his own logical calculus based on relations in intention and strict implication, which he saw as a more adequate model of actual inference. Material implication has the property that a false proposition implies everything and so argued Lewis it is useless as a model of real inference. What we want to know is what would follow from a proposition if it were true and for Lewis this amounts to saying that the real basis of the inference is the strict implication where ‘A strictly implies B’ means that ‘The truth of A is inconsistent with the falsity of B.’ Lewis saw his account of strict implication to have important consequences for metaphysics and for the normative in general.

실질 함축(material implication)은 명제논리나 술어논리에서 '→'로 표현되는 조건문 기호로 표현되는 관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저 논리 기호의 의미상 후건이 참이기만하면 전건에 무엇이 오든 상관 없이 함축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루이스는 이런 의미로는 제대로된 함축 개념을 포착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좀 더 강한 의미의 함축, 오늘날 기초 논리학에서 배우는 논리적 함축(logical implication)의 개념, p가 참이면 q는 반드시 참이다 혹은 p와 ~q는 비일관적이다(동시에 참인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개념을 도입하게 됩니다.

  1. "마감 판단"은 아마도 "terminating judgment"의 번역어 인 것 같은데요, 아래를 참고하시면 도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Lewis distinguishes between three classes of empirical statements. First, there are what he calls expressive statements which attempt to express what is presently given in experience. (...) Secondly, there are statements which formulate predictions. The judgment that if I do action A the outcome will include E, where E indicates an aspect of experience expressively characterized, is one which can be completely verified by putting it to the test. Upon acting the content E will either be given or it will not. Lewis calls empirical judgments of this sort terminating judgments. Finally, there are judgments which assert the actuality of some state of affairs. Although they can be rendered increasingly probable by tests, no set of eventualities envisioned can exhaust their significance. Lewis calls these judgments non-terminating because there are indefinitely many further tests which could, theoretically speaking, falsify the prediction and any actual verification can be no more than partial.

Since valuation is a species of empirical knowledge Lewis distinguishes between three kinds of value-predications. First, there are expressive statements of found value quality as directly experienced. Such predications require no verification as they make no claim which could be subjected to test. Secondly, there are terminating evaluations which predict the success of an action aimed at some value experience as result. These can be put to test by so acting and thus are directly verifiable. Finally there are non-terminating evaluations which ascribe an objective value property to an object or state of affairs. Like any other judgment of objective empirical fact such claims are always fallible though some may attain practical certainty.

"마감 텍스트를 욕구 일반에 대한 궁극적 만족에서 찾는다"가 정확히 뭘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인용해주신 문헌에서는 마감판단이 객관적 가치 판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찾은 텍스트에서는 "terminating evaluations which predict the success of an action aimed at some value experience as result", "non-terminating evaluations which ascribe an objective value property to an object or state of affairs"라고 쓰는 걸로 봐서 뭔가 반대로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유추해서 생각해보자면 terminating evaluation은 말하자면 주관적 가치 판단인데 그것은 욕구의 충족 여부에 따른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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