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모임을 이끌어보신 분들께 여쭙습니다

어쩌다보니 스터디 모임 하나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철학 비전공자들도 모여있는 곳이고 주로 학생들보다는 직장을 다니시면서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당연히 비전공자이거나, 학생이 아니다라는 점이 큰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참여자분들 중 한분께서 책을 너무 피상적으로 이해하시길 원하고 약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풍기시는데 이럴때 진행자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잘 못잡겠네요.

혹시라도 모임이 특정될까봐 조금 다른 비유를 들겠습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기 위한 스터디를 모집하였는데, 참여자분께서 해당 저서를 독해함에 있어서 "헤겔 철학의 정수는 변증법이에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 반, 합 인거죠. 이 구절도 마찬가지로 a라는 정, b라는 반, c라는 합이 있다는겁니다. 이게 바로 헤겔 철학이죠." 이렇게 비유하면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사실 이 정도 수준의 독해를 위해서라면 굳이 스터디 모임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ㅠㅠ 그래서 제 나름의 견해를 제시하면 무언가 엄청 불편해하시더라구요. (저만 그렇게 주관적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책의 모든 내용을 약간 유튜브 3분 카레 같은 느낌으로 이해하시려는 참여자가 있는 스터디 모임, 어떻게 이끌어나가면 좋을까요? 제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서 보다 폭넓은 독해를 유도하는 정석적인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매 문단마다 이런식으로 진행되니 솔직히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큽니다. 조금 더 평화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요?

ps.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 내용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이라 글은 며칠 후에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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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위험을 무릅쓰고 부연하자면, 현재 책의 시작 부분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전체 구상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어를 자꾸 언급하시면서 논증의 빌드업을 모두 스킵하시고 결론으로 귀결시켜버리세요 ㅠㅠ 보통 저서에는 정말 많은 스펙트럼들이 있고, 대가들의 저술방식을 정말 단순화 시키자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a에 대해서 얘기할거야. a라는 거대한 현상은 b, c, d라는 개별적인 현상들을 포함하고 있어. 나는 b c d를 e 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해. 물론 f 라는 관점도 존재하고, 그런 관점은 b c d의 g 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기는 하지만, h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에 균형적이지 않아. 그래서 나는 b c d의 g라는 측면과 h 라는 측면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e 라는 관점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해. 이 b c d가 보여주는 현상들은 결과적으로 i 라는 관념을 형성하게 되는데, 우리는 e라는 관점과 함께 i가 어떠한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살펴보게 될거야....

엄청 피상적으로 적긴했습니다만 책의 구성이 이런식으로 되어있다면, 참여자분께서는 중간 단계의 논의들을 모두 건너 뛰시고 바로 여기서의 a가 곧 헤겔이 말하고 있는 i인거죠. 이해되시죠? ㅇㅋ 굳 다음 장 갈까요?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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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 말을 해보자면, 물론 어떤 책을 읽던 전체 목표와 연결지어서 읽어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지금 세부적인 논증을 보더라도 언제나 궁극적인 목표와 연관지으면서 거시적인 해석을 해야하죠. 하지만 @Dirtytroll 님이 불편하신 이유는 아마 참여자 중 한 분이 미시적인 해석보다는 거시적인 해석에만 너무 많은 비중을 둬서 그런 것 같습니다. 거시적인 이해와 미시적인 이해 둘 다 해가면서 밸런스를 이뤄야하는데, 한쪽에만 치중할 경우 제대로 된 이해가 있을 수 없겠지요.

아마 참여자 중 한 분이 너무 거시적인 목표에만 집중을 한다면, "일단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다음에 전체 목표랑 연결해보는 게 어떨까요?" 와 같은 말로 시선을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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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당시 상황에 대해서 제 주관대로 서술된 부분도 많긴 할겁니다... 말씀하신대로 거시적인 이해도 중요한 부분이고, 또 전체적인 맥락에서 의미가 닿아있는 말씀도 많이 하셔서 섣불리 개입하기가 참 힘드네요.. 개입을 해도 되나? (말씀 중에 개입을 하는게 맞나?) 라는 생각도 종종 들구요.

하여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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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참여자가 말씀을 끝낸 후에 "그러면 혹시 b,c,d에 대해 f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되나요?", "f 관점의 의미는 정확히 뭘까요?" 등의 방식으로 질문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ㅎㅎ...

사실 정말 그런 고충도 있죠... 그런 질문을 안 하자니 너무 겉핡기 식으로 이야기 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많고... 그런 질문을 하자니 까딱 잘못하면 꼭 무슨 가르치는 입장에서 "님들 이거 앎?" 이런 느낌으로 전달되어버리기도 하구요. (실제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더라구요.)

겪고계신 상황이 부탁받아서 강의식으로 본인이 준비하여 꾸리는건지 아님 본인 관심사를 다른 분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꾸리신건진 모르겠지만, 만일 후자라면 쨋든 스터디원들 사이 수준여부가 비대칭적인 모임에서 쩔수없이 발생하는 경향이긴 합니다 ㅠㅜ

보통 스터디를 이끄시는 분이면 이미 그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기에 모임을 꾸리는 것일테니까요. 저도 공부하자고 만들었다가 내 공부안되서 현타온적도 있었고, 물론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해서 모르긴 하지만 누군가의 현타의 대상이 된 때도 있을거라 생각은 해요 ㅋㅋ

근데 그게아니라 전자의 경우라면, 애초에 모임내에서 평등한 입장 아니기에 본인의지 100이면 100대로 꾸릴수 있지 않을까요?

음... 게시물을 직접 삭제 할 수가 없군요 ㅠㅠ

후자의 경우입니다. 사실 지금 진행하는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읽고 싶었는데, 관련된 주제의 다른 책을 원하시는 참여자분들이 많으셔서 어쩔수 없이 결정됐네요

저라면, 전체 진행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세부 논증을 잘 추적하고, 모임 취지에 부합하는 몇몇 참가자분과의 더 적극적 피드백을 진행하여, 좋은 범례를 보이는 식으로 운영하다보면, 본인이 스스로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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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난하면서 자연스러운 방법인 것 같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텍스트가 있을 때는 정확한 쪽수와 행수를 거론하면서 질문하고 답하기가 가장 정확한 공동의 초점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방식으로 발제자에게 질문하고 또 저도 이의제기나 코멘트 필요할 때 그렇게 합니다. 심지어 총론적 논평이나 다른 주장을 할 때에도 그 발판은 언제나 텍스트의 몇 쪽 몇 행.. 이런 식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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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전공자나 다름 없는 오래전에 전공했던 적이 있는 사람인데요. 현재 학생이 아니다보니 스터디를 꾸리게 되면 비전공자와 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종종 겪고, 바로 말씀하신 것 같이 요점정리하듯 내지는 말씀하신것처럼 중간 건너뛰기를 하고 결론으로 가는 스터디를 하시려는 분들을 자주 뵙게 됩니다. 사실 일단 시작이 된 이상 이렇다할 해결책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참여자들도 그분 방식에 호응하는게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분도 스터디 성격을 파악하고 좀 맞춰주시더군요. 제 경험상 자신의 주관이 좀 강하신 분들은 그래도 끝까지 본인 스타일을 시도하시는데요. 결국 스터디를 주관하는 사람이 확고하게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실 그걸 잘 못했지만요. ㅠㅠ
그래서 요즘은 처음 스터디원을 모집할때, 스터디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제시하고, 강조를 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래도 글의 해석은 각자이다보니... 또 그런분들이 오시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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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스터디를 참여했던 기억을 토대로 글을남겨보자면, 모임장님 외에 꽤 공부를 하고 모임장의 노선을 잘 이해할만한 멤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책 한페이지 제대로 읽어오지 않고 오시는분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분들은 모임장님의 생각과 사유을 거의 복사하며 그것이 공부하는것이라 믿을지도 모르고, 어떤분들은 수다인지 스터디인지 모를 태도를 계속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분들은 또 잘 오지도 않는데 올때면 아무렇게나 철학자의 철학적 논증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상비판을 시도하기만 하기도 하더군요. 다른멤버의 수업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에 방해를 주기도 합니다. 아니면 스터디가 아닌 다른것에 관심을 가진분들도 오는데 그것을 감안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것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스터디를 이끄실거라 응원합니다. 스터디를 진행하다 보면 알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이 많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