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외, 『입증』, 서광사, 2018.
4장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
증거, 가설, 믿음
증거와 가설은 우리의 믿음을 매개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다음의 경우 증거가 가설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a) 증거 E가 가설 H에 대한 믿음을 강화한다.
그런데 믿음은 항상 행위자의 믿음이다. 따라서 다음이 더 정확하다.
(4b) 증거 E가 가설 H에 대한 행위자 S의 믿음을 강화한다.
‘믿음을 강화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아마도 ‘현재 믿음의 정도가 과거 믿음의 정도보다 커졌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는 증거 E의 획득 여부에 의하여 구분될 것이다.
(4c) 증거 E를 획득한 이후 가설 H에 대한 행위자 S의 믿음의 정도는 증거 E를 획득하기 전 가설 H에 대한 행위자 S의 믿음의 정도보다 커진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를 해명해야 한다. 1) 믿음의 정도가 무엇인가? 2) 믿음의 정도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믿음의 정도: 확률
한 명제 A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A의 확률로써 파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믿음의 정도가 확률이라는 말은, 해당 명제에 믿음의 정도를 할당하는 방식이 확률 공리들을 모두 만족한다는 것이다.
확률 공리(Probability Axioms):
공리 1: 모든 명제 X에 대해서, P(X)≥0.
공리 2: 모든 필연적인 명제 T에 대해서, P(T)=1.
공리 3: 서로 양립불가능한 두 명제 A와 B에 대해서, P(A∨B)=P(A)+P(B).
(확률 공리를 만족하는 함수를 확률 함수라고 부른다.)
확률 공리를 만족하는 방식으로 할당된 명제 A에 대한 행위자 S의 믿음의 정도를 S의 A에 대한 신념도(credence)라고 부르자. S의 A에 대한 신념도를 ‘Cr(A)’라는 기호로 나타내고, 이 Cr을 신념도 함수라고 부르자. 신념도는 확률 공리를 만족하므로, 신념도 함수는 확률 함수이다.
모든 명제 X에 대해서, Cr(X)≥0.
모든 필연적인 명제 T에 대해서, Cr(T)=1.
서로 양립불가능한 두 명제 A와 B에 대해서, Cr(A∨B)=Cr(A)+Cr(B).
(4c)를 신념도 함수를 통해 표현해보자. 증거 E를 획득하기 전 행위자 S의 신념도 함수를 사전 함수 Cr_old라고 하자. 그리고 증거 E를 획득한 이후 행위자 S의 신념도 함수를 사후 함수 Cr_new라고 하자.
(4d) Cr_old(H)<Cr_new(H).
믿음의 정도의 변화: 조건화
아직 사전 함수와 사후 함수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먼저 조건부 확률이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해당 명제에 할당된 확률이다. 비조건부 확률은 조건이 포함되지 않은 확률을 말한다. B라는 조건 아래에서 명제 A에 할당된 조건부 확률을 P(A|B)라고 나타내고, 다음과 같이 비조건부 확률로 정의된다.
P(A|B)=P(A&B)/P(B)
신념도 또한 확률이므로, 신념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논할 수 있다. 즉 조건부 신념도는 다음과 같다.
Cr(A|B)=Cr(A&B)/Cr(B)
베이즈주의자들은 사전 함수와 사후 함수에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증거를 획득한 이후의 신념도가, 그 증거를 조건으로 하는 증거 획득 이전의 조건부 신념도와 같다.
조건화:
Cr_new(H)=Cr_old(H|E)
조건화의 원리에 의하여 (4d)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4e) Cr_old(H|E)>Cr_old(H)
이제는 시점을 언급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4f) Cr(H|E)>Cr(H)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
위와 같이 1) 믿음의 정도(신념도)가 확률 공리를 만족하고, 2) 그러한 신념도가 조건화라는 원칙을 통해서 수정된다는 입장을 베이즈주의(Bayesianism)라고 한다.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
Cr(H|E)>Cr(H)이면 E는 H를 입증한다.
Cr(H|E)<Cr(H)이면 E는 H를 반입증한다.
Cr(H|E)=Cr(H)이면 E는 H에 중립적이다.
베이즈 정리
(1) Cr(H|E)=Cr(H)Cr(E|H)/Cr(E)
(2) Cr(H|E)=Cr(H)Cr(E|H)/{Cr(H)Cr(E|H)+(1-Cr(H))Cr(E|~H)}
사전/사후 신념도는 주관적인 반면, Cr(E|H)는 우도(likelihood)라고 불리며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사후 신념도는 사전 신념도와 우도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증거가 가설을 입증하는지 여부는 사전 신념도를 구하여야 얻어질 수 있다. 그런데 사전 신념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1) 어떻게 그 값을 구할 것이며 2) 어떻게 그 구한 값을 정당화할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5장에서 더 자세히 다룸)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을 까마귀 역설에 적용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이 까마귀 가설을 입증한다는 것이 까마귀 역설의 결론이다. 헴펠과 마찬가지로 베이즈주의자들은 역설적 결론을 받아들인다. (B1, B2) 하지만 베이즈주의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이 까마귀 가설을 입증하는 정도가 매우 작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직관과 역설의 결론을 조화시킨다. (B3, B4)
B1: Ra&Ba는 (x)(Rx→Bx)(이하 H)를 입증한다.
B2: ~Ra&~Ba는 H를 입증한다.
B3: ~Ra&~Ba가 H를 입증하는 정도는 Ra&Ba가 H를 입증하는 정도보다 훨씬 작다.
B4: ~Ra&~Ba가 H를 입증하지만 그 정도는 매우 작다.
B1*: Cr(H|Ra&Ba)>Cr(H)
B2*: Cr(H|~Ra&~Ba)>Cr(H)
B3*: Cr(H|Ra&Ba)≫Cr(H|~Ra&~Ba)
B4*: Cr(H|~Ra&~Ba)/Cr(H)≒1
어떻게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이 각각의 주장을 도출하는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이 신념도 값을 표기하자. 가령 Cr(Ra&Ba)=p이고 Cr(~Ra&Ba)=q_H이다.
표1. Cr(•)의 값
Ra | ~Ra | |
---|---|---|
Ba | p | q |
~Ba | r | s |
표2. Cr(•|H)의 값
Ra | ~Ra | |
---|---|---|
Ba | p_H | q_H |
~Ba | 0 | s_H |
p+q+r+s=1
p_H+q_H+s_H=1
또한 베이즈주의는 다음 두 가지의 독립성 가정을 채택한다. (P(A|B)=P(A)일 때, A와 B가 확률적으로 독립이라고 한다.) 이는 Ra와 ~Ba가 각각 H에 독립적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H에 중립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A1: Cr(H|Ra)=Cr(H) (⇔ Cr(Ra|H)=Cr(Ra))
A2: Cr(H|~Ba)=Cr(H) (⇔ Cr(~Ba|H)=Cr(~Ba))
이제 B1, B2를 보이자.
p_H=Cr(Ra|H)=Cr(Ra)=p+r
s_H=Cr(~Ba|H)=Cr(~Ba)=r+s
∴ q_H=1-(p_H+s_H)=1-(p+2r+s)=q-r
Cr(Ra&Ba|H)=Cr(Ra|H)=p+r>p=Cr(Ra&Ba)
∴ Cr(H|Ra&Ba)>Cr(H) (■ B1)
Cr(~Ra&~Ba|H)=Cr(~Ba|H)=r+s>s=Cr(~Ra&~Ba)
∴ Cr(H|~Ra&~Ba)>Cr(H) (■ B2)
B3와 B4를 보이기 위해 베이즈주의자들은 다음 가정도 받아들인다. 우리 세계의 대부분은 까마귀도 아니고 검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선택했을 때, 그 대상이 까마귀도 아니고 검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는 신념도는 1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까마귀도 아니고 검지도 않은 대상이 검은 까마귀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선택했을 때, 그 대상이 검은 까마귀라기보다는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니라는 것에 훨씬 더 큰 신념도를 부여할 것이다.
A3: Cr(~Ra&~Ba)=s≒1
A4: Cr(~Ra&~Ba)=s≫p=Cr(Ra&Ba)
이제 B3, B4를 보이자.
Cr(Ra&Ba|H)/Cr(Ra&Ba)=Cr(Ra|H)/Cr(Ra&Ba)=(p+r)/p=1+r/p≫1+r/s=(s+r)/s=Cr(~Ba|H)/Cr(~Ra&~Ba)=Cr(~Ra&~Ba|H)/Cr(~Ra&~Ba)
∴ Cr(H|Ra&Ba)≫Cr(H|~Ra&~Ba) (■ B3)
Cr(~Ra&~Ba|H)/Cr(~Ra&~Ba)=Cr(~Ba|H)/Cr(~Ra&~Ba)=(s+r)/s≒1
∴ Cr(H|~Ra&~Ba)/Cr(H)≒1 (■ B4)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을 까마귀 역설에 적용할 때의 문제점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의 분석에 따르면 다음이 성립하게 되고, 이것은 이상하다.
B5: ~Ra&Ba는 H를 반입증한다.
(pf) Cr(~Ra&Ba|H)=qH=q-r<q=Cr(~Ra&Ba)
∴ Cr(H|~Ra&Ba)<Cr(H) ■
베이즈주의자들은 B5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반입증의 정도가 매우 작아서 그렇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입증의 정도가 매우 작음을 보이기 위해 그들은 다음 가정을 덧붙인다. 즉 우리 세계에서 까마귀인 대상보다 검은 대상의 비율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A5: Cr(Ba)=p+q≫p+r=Cr(Ra)
A5에 의해 r/q≒0임이 따라나온다. 따라서 다음이 성립하고, 이는 ~Ra&Ba가 H를 반입증하는 정도가 매우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Cr(~Ra&Ba|H)/Cr(~Ra&Ba)=(q-r)/q=1-r/q≒1
그런데 지금까지 베이즈주의자들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보면, 그들은 특정한 신념도 분포에 대한 가정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정들은 일견 자연스럽지만, 다음 장에서 이에 관한 문제를 포함하여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의 난점들을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