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외, 『입증』, 3장 요약

이영의 외, 『입증』, 서광사, 2018.

3장 헴펠의 입증 이론

니코 기준

H1: 까마귀는 모두 검다.

위와 같이 ‘모든 A는 B이다’의 형식을 갖춘 가설을 보편 가설이라 부른다. 보편 가설은 동치인 조건문으로 대체될 수 있는데, 이를 보편 조건문이라 부른다. 즉 H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H1*: (x)(Rx→Bx) (Rx: x는 까마귀이다, Bx: x는 검다.)

직관적으로 이 가설을 입증하거나 반입증하는 사례를 정식화한 것이 니코 기준이다.

니코 기준(Nicod’s criterion):
보편 조건문의 전건과 후건을 모두 만족할 경우 입증 사례이고,
전건을 만족하지만 후건을 만족하지 않을 경우 반입증 사례이며,
전건을 만족하지 않는 대상은 후건을 만족하든 그렇지 않든 무관한 사례이다.

헴펠에 의하면, 니코 기준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니코 기준은 보편 가설에만 적용되므로, 보편 가설이 아닌 가설, 예컨대 존재 가설에는 적용될 수 없다.

둘째, 니코 기준은 가설의 내용이 같더라도 가설의 표현 방식이 달라질 경우 서로 다른 결론을 낳는다.

H2: 검지 않은 것은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
H2*: (x)(~Bx→~Rx)

증거 사례 성질 기호화 H1 H2
a 까마귀이고 검다 Ra&Ba 입증 사례 무관한 사례
b 까마귀이고 검지 않다 Rb&~Bb 반입증 사례 반입증 사례
c 까마귀가 아니고 검다 ~Rc&Bc 무관한 사례 무관한 사례
d 까마귀가 아니고 검지 않다 ~Rd&~Bd 무관한 사례 입증 사례

H1과 H2는 동치인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a과 d는 각각 한 가설은 입증하되 다른 하나와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니코 기준은 가설의 표현 방식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헴펠의 역설

니코 기준의 두번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음 조건을 채택해볼 수 있다.

동치 조건:
어떤 사례가 가설 H를 입증한다면, 그 사례는 H와 동치인 가설도 모두 입증한다.

그런데 H3 또한 H1, H2와 동치이다. 니코 기준에 의하여 a, c, d가 H3의 입증 사례이고, b가 H3의 반입증 사례이다. 동치 조건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표를 얻는다.

H3*: (x)((Rx∨~Rx)→(~Rx∨Bx))

증거 사례 H1 H2 H3
a 입증 사례 입증 사례 입증 사례
b 반입증 사례 반입증 사례 반입증 사례
c 입증 사례 입증 사례 입증 사례
d 입증 사례 입증 사례 입증 사례

여기서 세 가지의 역설이 발생한다.

  1. d가 가설을 입증한다는 결론은 까마귀가 아닌 대상들 가운데 일부가 까마귀 가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2. c와 d가 가설을 입증한다는 결론은 까마귀가 아닌 대상들 모두가 까마귀 가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3. 어떤 대상도 까마귀 가설에 무관한 사례가 될 수 없다.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설의 가능한 해결책

헴펠의 역설은 니코 기준, 동치 조건, 그리고 세 가설이 모두 동치라는 세 전제들로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에 다다른 논증이다. 따라서 역설의 세 전제 중 하나를 버림으로써 역설의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1 니코 기준이 틀렸다.

니코 기준이 비록 포괄적인 기준이 못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보편 조건문의 형식을 갖춘 가설에 한해서는 우리의 직관을 잘 반영한다. 따라서 니코 기준을 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2 동치 조건이 틀렸다.

동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우리가 동치 조건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바로 그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 따라서 동치 조건을 버리는 것도 좋지 않다.

3 H1, H2, H3 세 가설이 동치가 아니다.

분명히 H1*, H2*, H3*는 동치이다. 이 세번째 방안은 H1, H2, H3가 동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음 문장을 보라.

(가) S는 모두 P이다.
(나) (x)(Sx→Px)
(다) (x)(Sx→Px)&(∃x)(Sx)

앞서 우리는 (가)를 (나)로 분석했다. 그러나 (가)를 (다)와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즉 (가)가 존재 함축(existential import)을 가진다고 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H1, H2, H3은 동치가 아니게 된다. 따라서 동치 조건을 적용할 수 없게 되고, 역설은 봉쇄된다.

헴펠은 세 측면에서 이러한 해결책을 비판한다. 첫째, 실제 과학에서 우리는 H1과 H2를 동치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존재 함축이 정확히 어떤 대상의 존재를 함축한다는 것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셋째, 실제 과학에서 모든 가설이 존재 함축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역설의 세 전제를 버릴 수 없으므로, 헴펠은 역설의 결론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그는 이러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d의 경우, 우리가 멀리서 어떤 대상을 흐릿하게 보았다고 하자. 이때 그 대상은 검지 않고 예컨대 노란색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니 그 대상은 까마귀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까마귀 가설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관적으로 d가 가설을 입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저 까마귀인 대상보다 까마귀가 아닌 대상의 수가 훨씬 많아서 입증의 정도가 미미하기 때문일 뿐이다.

헴펠의 입증 이론

헴펠은 역설에 대한 논의로부터 다음 세 교훈을 얻는다. 1) 니코 기준처럼 모든 형태의 가설에 적용될 수 없는 이론은 한계를 가진다. 2) 입증 이론은 동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3) d의 사례도 까마귀 가설의 입증 사례로 간주해야 한다. 헴펠은 이들을 반영하는 입증 이론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헴펠은 입증 이론이 다음 세 가지 ‘입증의 적합성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축 조건(Entailment Condition):
관찰보고 E가 가설 H를 함축한다면, E는 H를 입증한다.
(E⊨H이면, E≅H.)

특수 귀결 조건(Special Consequence Condition):
E가 H를 입증하고 H는 H’를 함축한다면, E는 H’를 입증한다.
(E≅H이고 H⊨H’이면, E≅H’.)

일관성 조건(Consistency Condition):
일관적인 관찰보고들이 H를 입증한다면, 그 관찰보고들은 H와 양립가능하다.

특수 귀결 조건은 동치 조건을 함축하므로, 동치 조건을 독립적인 조건으로 정식화할 필요는 없다.

동치 조건(Equivalence Condition):
E가 H를 입증하고 H와 H’이 동치이면, E는 H’을 입증한다.
(E≅H이고 H⊨H’이고 H’⊨H이면, E≅H’.)

또한 역귀결 조건도 고려해볼 만하다.

역귀결 조건(Converse Consequence Condition):
E가 H를 입증하고 H’이 H를 함축한다면, E는 H’을 입증한다.
(E≅H이고 H’⊨H이면, E≅H’.)

하지만 역귀결 조건은 함축 조건이나 특수 귀결 조건과 함께 쓰일 경우, 임의의 증거가 임의의 가설을 입증한다는 이상한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역귀결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좋다.

(1) E⊨E 논리적 관계
(2) E≅E (1)에서 함축 조건에 의해
(3) E&H⊨E 논리적 관계
(4) E≅E&H (2)와 (3)에서 역귀결 조건에 의해
(5) E&H⊨H 논리적 관계
(6) E≅H (4)와 (5)에서 특수 귀결 조건에 의해

(1) E⊨E∨H 논리적 관계
(2) E≅E∨H (1)에서 함축 조건에 의해
(3) H⊨E∨H 논리적 관계
(4) E≅H (2)와 (3)에서 역귀결 조건에 의해

(1) E≅H 가정
(2) H&H’⊨H 논리적 관계
(3) E≅H&H’ (1)과 (2)에서 역귀결 조건에 의해
(4) H&H’⊨H’ 논리적 관계
(5) E≅H’ (3)과 (4)에서 특수 귀결 조건에 의해

헴펠의 입증 정의를 살펴보기에 앞서, 헴펠의 용어에서 전개(development)와 직접 입증(direct confirmation)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아야 한다.

관찰보고 E에 대한 가설 H의 전개는,
(i) H가 보편 가설이라면, H의 대체예들의 연언이다.
(ii) H가 존재 가설이라면, H의 대체예들의 선언이다.
(iii) H가 단칭 명제라면, 원래의 가설 그대로이다.

형태 가설 관찰보고에 나오는 개별 대상 관찰보고에 대한 가설의 전개
보편 가설 (x)(Px∨Qx) a, b (Pa∨Qa)&(Pb∨Qb)
존재 가설 (∃x)Px a, b Pa∨Pb
단칭 명제 Pc a, b Pc

E가 H를 직접적으로 입증한다(directly confirm) (E≅dH).
=df. E가 E에 대한 H의 전개를 함축한다 (E⊨Ⓓ_E(H)).

이제 입증, 반입증, 중립을 정의해보자.

E가 H를 입증한다 (E≅H).
=df. 어떤 S에 대해, E⊨Ⓓ_E(S)이고 S⊨H.

E가 H를 반입증한다.
=df. E는 H의 부정을 입증한다 (E≅~H).

E가 H에 중립적이다.
=df. E는 H를 입증하지도 않고 반입증하지도 않는다 (E≇H)&(E≇~H)

이 정의에 의하면 다음이 따라나온다.

E가 H를 직접 입증하면, E는 H를 입증한다 (E≅dH)→(E≅H).

헴펠의 이론을 까마귀 가설에 적용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H: (x)(Rx→Bx)
E1: (Ra&Ba)&(~Rc&Bc)&(~Rd&~Bd)
Ⓓ_E1(H): (Ra→Ba)&(~Rc→Bc)&(~Rd→~Bd)
E1→Ⓓ_E1(H)
E1≅dH
∴ E1≅H

E2: Rb&~Bb
~H: (∃x)(Rx&~Bx)
Ⓓ_E2(H): (Rb&~Bb)
E2→Ⓓ_E2(H)
E2≅d~H
∴ E2≅~H

주목할 점은, 헴펠의 이론과 가설연역법의 이론은 모두 정성적 입증 개념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베이즈주의 이론은 정량적 입증 개념을 확보하려 한다. 또 헴펠은 관찰보고와 가설 둘 사이의 관계에만 주목하지만, 2장에서 보았듯 배경지식을 포함한 셋 사이의 관계를 토대로 헴펠의 입증 이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헴펠은 문장들 사이의 연역 논리적 관계를 통해 입증을 정의하려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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