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이야기 같은가?

“내가 자크 데리다의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란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천둥을 동반한 강력한 폭우를 피해 당시 내 차였던 64년형 시보레 안에 주저앉은 채로 주차장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때는 비평이론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차 안에서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데리다의 글이나 폭우가 드러내는 장대한 자연의 힘에 감동받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무엇을 읽은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제법 똑똑하다고 자부했다. 학교에서 공들여서 철학을 공부했고, 빡빡하고 어려운 글도 훌륭히 ‘해독’해 내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이 왜 이해가 안 되는 거지?’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난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은 걸까?’(본인의 이야기 같은가?)”

​타이슨, 『비평이론의 모든 것』, 윤동구 역, 앨피, 2012. 42p

비평이론에 있어서 세계적인 교과서를 저술한 사람도 이런 경험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이런 상황에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장벽을 뛰어넘도록 하는 것은 끈기와 시간일 것인데, 참 열심히 꾸준하게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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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타이슨 책에서 인용하신 부분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똑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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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해력이 좌절되었을 때 눈물을 흘릴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했거나 또는 어떤 학술적 감정(?)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다시 보이네요... 3년 전에 제가 저 책을 읽었을 때는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었는데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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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는 데리다의 글 중에서는 꽤 체계적으로 쓰인 편에 속해요. 아마 타이슨이 학생 시절이었다면, 저 논문이 나오고 얼마 안 된 70년대 무렵이라서 이해가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연구자들 사이에서 데리다의 전체적인 면모에 대한 논의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글을 곧장 읽느라 그런 거였겠죠.

가령, 이븐 시나는 당대의 천재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40회나 정독했지만,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고 하잖아요. 18세기의 크리스티안 가르베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괴팅겐 학보에 서평을 썼다가 나중에 칸트에게 사과를 했다고 하고요. 그런데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는 (물론, 전문적으로 공부하려면 여전히 어려운 철학자들이긴 하지만) 학부생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철학자가 되었죠. 그동안 쌓인 수많은 연구들이 철학계에 일종의 기초 상식처럼 널리 퍼졌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철학 텍스트 독해에는 배경 지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텍스트는 혼자서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쌓아 놓은 성과 위에서 읽어가는 거라고 말이에요. 아무리 어려운 철학자들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고, 해설이 유통되고, 논의가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다 보면, 후대에는 훨씬 수월하고 정학하게 그 철학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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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논문 읽으면서 울었던 때가 떠오릅니다. 개심()하여 놀던 것도 다 관두고 밤새던 어느 날이었고, 당시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내가 너무 멍청한 것 같아서 울었다... 고 생각했는데, 저런 분도 이런 경험을,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 분은 굉장해지셨는데 나는 가능할까, 이런 생각도 같이 드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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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도 바로 다음 구절에서 문제의 본질은 자신이 데리다의 사상에 익숙지 않다는 데 있었다고 밝히더라고요. 말씀하신 바에 저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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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좀 웃기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