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lte ich die Resultate meiner Philosophie zum Maaßstabe der Wahrheit nehmen, so
müßte ich dem Buddhaismus den Vorzug vor den andern [Religionen] zugestehn. Jeden Falls muß es mich freuen, meine Lehre in so großer Übereinstimmung mit einer Religion zu sehen, welche die Majorität auf Erden für sich hat [...] Diese Übereinstimmung muß mir aber um so
erfreulicher seyn, als ich, bei meinem Philosophiren, gewiß nicht unter ihrem Einfluß
gestanden habe. Denn bis 1818, da mein Werk erschien, waren über den Buddhismus
nur sehr wenige, höchst unvollkommene und dürftige Berichte in Europa zu finden, [...]
만약 나의 철학의 결과들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면, 나는 다른 종교들에 대한 불교의 우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의 이론이 불교처럼 위대한 종교와 이렇게 큰 일치를 보인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이 일치가 나에게 더욱 기쁜 것은, 나의 철학함에 있어서 불교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의 저작이 출판되었던 1818년까지 유럽에서는, 불교에 대해서 매우 소수의, 그것도 기껏해야 불완전하고 빈약한 정보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의역]
대부분의 쇼펜하우어 학자들은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고백을 바탕으로, "쇼펜하우어가 1818년 이전에도 불교를 알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라고 결론짓는 듯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Urs App이라는 학자가 1997년에 쇼펜하우어 아카이브를 뒤져, 1811년 경 학생이었던 쇼펜하우어가 불교에 대해 썼던 50페이지 정도의 강의록 노트를 발견했고, 이런저런 문헌학적 근거를 취합해 본 결과 1811-1818년 사이의 기간에서도 쇼펜하우어가 중국 및 인도 불교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지식에 기반해서 자신의 의지-형이상학을 개진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p. 37f.; 53)
요약해본다면
쇼펜하우어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출판 이전에도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불교-지식이 얼마나 세부적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적이다.
그러나 정황상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불교에 대한 관심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저술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