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15

GT §15

주요 내용

니체는 “나에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불합리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어쩌면 논리가를 추방해 버린 지혜의 왕국이 있지 않을까? 예술은 학문에 없어서는 안되는 상관물이자 보완물이 아닌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의문에 이어 논의를 진행한다(GT, KSA 1: 96). 니체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유산이자 그가 창조한 예술의 한 방식인 학문은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또 그것의 한계 없는 추동은 결국 예술의 무한성까지 보장하는 희한한 결과를 빚는다(GT, KSA 1: 96).

니체는 자신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우선 이론적 유형의 인간(e,g, 소크라테스)에 대해 재차 설명한다. 이론적 인간의 주된 특징은 예술가적 인간과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지만, 그와 달리 “베일 속에 여전히 숨겨진 것”이 아닌 “내던져진 베일” 혹은 “성공적인 베일 벗기기의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GT, KSA 1: 98). 만일 이렇지 아니하고, 즉 ‘베일 벗기기’의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이상, 학문은 존속될 수도 없고 시도되지도 않는다(땅굴 파기의 비유 참고).

니체는 이론적 인간의 특징에 하나의 망상이 전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베일 벗기기의 과정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는 정당화되지 않은 믿음을, 즉 언젠가 합리적 사유를 통해 세계의 진리를 밝혀내고 심지어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학문은 사유와 인과율에서 시작하지만 자기 자신 고유의 방법은 정당화하지 못한 탓에 자기를 ‘신화’로, ‘새로운 예술’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GT, KSA 1: 99). “신화는 학문의 필연적인 귀결이며, 아니 오히려 학문의 목적이다(Ibid.).”

니체는 이론적 인간의 탄생, 그리고 그것이 이룬 문화의 장점에 대해 논한다. 그것은 힘을 “개인과 민족의 실천적 목표인 이기적인 목표”를 위해 사용하지 않아서 “파괴적인 전투”를 막고 “삶에 대한 본능적 욕구의 약화”를 막았다(GT, KSA 1: 100). 달리 말해, 실천적 염세주의에 대항했다. 그러나 니체는 계속 암시적으로 말한 것처럼 소크라테스를 ‘이론적 낙천주의’의 원형이라며, 그 이후의 서구 문명 특성을 이론적 낙천주의로 규정한다(Ibid.). 그 유산을 이어받은 자들은 윤리적 행위와 영혼의 고유함마저 이성을 통해 인식되고 획득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론적 낙천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완전한 진리 벗기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점차 느끼게 된다. 즉, 학문의 한계를 직감한다. 비극에 대항하여 등장한 학문이, 바로 그 자신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학문은 비극(예술)을 요구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달리 말해, 학문에 대한 욕구가 예술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욕구의 전환을 보고 니체는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형성을 기대하고, 자신과 독자가 이 과정의 방관자가 되어 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우리는 방관자일 수 없고 가담할 수밖에 없다며 글을 맺는다.

짚고 넘어갈 점

  1. 니체는 “모든 예술이 그리스인들에게 내적으로 의존한다”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들과 그리스인들의 관계가 마치 아테네 시민과 소크라테스의 관계 같은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하며 논의를 이끌어간다(GT, KSA 1: 97). 그러면서 니체는 우리가 그리스 문화 앞에서 두려워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하기에, 아테네 시민과 소크라테스의 관계 또한 그러한 관계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관계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것이 니체의 의도이기에, 학문이라는 예술 또한 소크라테스라는 그리스 태생 인간에서 시작됐음을 논하는 것이다.

  2. 소크라테스·플라톤은 변증술을 통해 신화적 이야기를 극복하고 학문을 하고자 했으나, 니체의 분석에 따르면 학문은 결국 신화로 돌아간다. “신화는 학문의 필연적인 귀결이며, 아니 오히려 학문의 목적”이라는 니체의 언명을 그대로 아도르노가 이어받는다(GT, KSA 1: 99). “신화는 이미 계몽이었다. 그리고 계몽은 신화로 돌아간다(DA, 계몽의 개념: 28).”

  3. 니체는 그물의 비유를 통해 소크라테스적 문화의 특성을 설명한다. 그물은 ‘붙잡고 쥐는(greifen, fassen)’ 역할을 하기에 ‘이해 혹은 이성(begreifen, auffassen, 나아가 begriff)’을 연상시키게 한다. 이성에 대한 이러한 비유적 표현 또한 이성의 동일성 원리를 논하는 아도르노도 사용한다.

  4. 소크라테스 때와 달리, 이미 니체 (칸트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당대에는 학문의 한계는 인식되었다. 그렇기에 니체는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라는 문화 변혁을 논하는 것이다.


출처: KSA 1: 9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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