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찢남' 오타니와 '축구의 신' 메시, 『성과 속』 읽기

엘리아데는 성과 속의 변증법을 “대립하는 것(逆)의 일치” 내지 “대립하는 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신비神祕”라고 말한다. 여기서 『성과 속』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엘리아데의 핵심 개념인 ‘성현’이 등장하게 된다. 성현聖顯, hierophany이란 문자 그대로 ‘성스러움hiero이 빛 속에서 나타난다phan’는 뜻이다. 그러니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사물·장소·인물 등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범속한 것을 경험할 때, 거기서 돌연 ‘존재론적 단절斷折’이 일어나면서 의식의 빛 안으로 성스러운 의미가 들어서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

존재론적 단절 내지 ‘존재론적 파열破裂’이라는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미지의 도움을 받기로 하자. 요즈음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로 “만화를 찢고 나온”이라는 관용어가있다. 가령 메이저리그 출범 이후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발전을 거듭하여 선수의 역할이 고도로 분업화·전문화된 현대 야구에서, 무려 투·타 겸업으로 모든 지표에서 전대미문 최상위 실력을 뽐내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를 일컬어 “만화를 찢고 나온” 선수라는 부른다.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는데, 왜냐하면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탁월하게 현실을 초월한 것을 가리키면서, 물리적 지면을 ‘찢는다’라는 시각화를 통해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현실 세계와 초현실적 영역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실에서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것은 비록 한낱 인간에 불과한 리오넬 메시L. Messi의 드리블이지만, 우리는 그가 공을 다루는 발놀림에서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만한 탁월함과 초월성을 본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인 메시를 일컬어 “축구의 신” 또는 “축구 자체”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상적인 축구 또는 축구 자체의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선수의 발재간에서다. 그런 점에서 현실이 비록 불완전하고 부분적이며 결함이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 평가절하되어야만 할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초현실적인 것은 불완전하고 하자투성이의 현실적인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완전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읽기》 中

세창출판사는 명저산책 시리즈를 통해서 난해하거나 방대한 인문학 서적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의 주 목표는, 원텍스트가 되는 책을 소개하고,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이 원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책의 쓸모에 대해서 많은 연구자분들의 갑론을박이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린 내용은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 읽기》의 내용입니다. 이 책의 저자 신호재 교수님은 종교학자가 아닌 현상학자의 입장에서 엘리아데의 『성과 속』을 해설합니다. 개인적으로 뜻깊게 읽은 『성과 속』으로 인해 재미있게 작업을 했는데, 위에 내용 꼭 한번 알리고 싶어 이렇게 글 남깁니다.

가벼운 책이니만큼 재미있는 철학적 담화의 창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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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엘리아데가 제시한 고대인들의 원형적 사고 방식이 어떻게 오늘날의 대중문화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굉장히 좋은 예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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